마테오스의 재임 당시 멕시코는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룩하고 있었다.
정책적으로 좌클릭을 하여 1959년에는 철도 노동자들의 봉급을 올려주고,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였다. 그러나 파업은 용납하지 않아서 파업이 일어나자 수천 명을 해고했다. 그 외에도 교사나 전화교환원의 노동운동을 군대로 무력진압한 적이 있다.
농업 정책에서는 무려 1600만 헥타르의 토지를 농민들에게 분배했다. 이는
라사로 카르데나스 이래 유례없는 규모였다. 또한 농작물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국영 식량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공공사업을 추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국가공무원 사회서비스국과 국립아동보호국을 설립했고, 1960년에는 전력 산업을 국영화했다. 또한 초등학교 교과서를 무상화하여 사실상 초등교육을 무상으로 전환했고, 차플테펙 공원에
톨텍,
올멕,
아스텍 문명 등의 유물을 모아놓은 국립인류학박물관을 세웠다.
공업 생산 역시도 증가하여 자동차, 화학, 석유과학, 기계, 제지산업 등이 눈에 뜨게 발전했다.
외교적으로는
쿠바 혁명 이후 미국이 라틴아메리카에 쿠바와 단교할 것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하고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와도 계속 외교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는 계속 중시하여, 1962년
존 F. 케네디의 방문 때
리오그란데 강의 흐름 변화로 생긴 국경선 분쟁을 100년만에 해결하였다.
이듬해 1963년 라틴아메리카 비핵화 선언을 발표하여 다음 대통령인
구스타보 디아스 오르다스에 의해
틀라텔롤코 조약이 발효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 외의 국가를 순방한 첫
멕시코 대통령이었다.
1964년 같은 당의 구스타보 디아스 오르다스가 당선되면서 퇴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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