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인라디오 (신항식) 병쉰색희 ㅋㅋ 지식인 흉내내기엔 배포도 작고 지능도 부족하군; 하여간 음모론자들은 프리메이슨이 뭔지도 모르면서 개나소나 다 프리메이슨이라고 갖다붙히고, 연방준비은행을 지배한다고 하니 - 이런 넘이 외대에서 강사였던 게 말이 되냐?

https://www.youtube.com/watch?v=rp1wlvQpIjA

 

 

  ​10:31 이 영상은 기본적인 사실관계 자체가 엉망진창입니다. 우선 영상에서 프리메이슨의 지시를 받았다고 나오는 벤자민 디즈레일리는 프리메이슨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프리메이슨이었다는 관련된 어떤 기록도 없습니다. 디즈레일리는 유태인이었고, 공직활동을 했는데, 당시 유태인들이 드러내놓고 프리메이슨 활동을 할 수 없었다는 반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디즈레일리가 역사적으로 유명한 건 로스차일드 가문과의 친분 관계입니다. 영국 로스차일드 (로스차일드-사순-봄베이, 상하이 마약 네트워크)와 영국 프리메이슨 (스코틀랜드 프리메이슨-베어링-덴트-HSBC-자딘매디슨)은 중국, 인도에서 마약산업으로 경쟁관계였고, 직접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디즈레일리는 오히려 프리메이슨에 비판적이었습니다. (In 1852, Prime Minister Benjamin Disraeli of England warned that secret societies, in the guise of Freemasonry, were "ever prepared to ravage Europe.") 세실 로즈가 전재산을 로스차일드에게 맡기고, 이후에도 프리메이슨 멤버가 많았던 로즈장학금-밀너의 아이들-라운드테이블-채텀하우스가 로스차일드와 협조적인 관계를 맺기는 했지만, 서로 완전히 동일한 목적을 지니지는 않았습니다. 콧대높은 영국 귀족들은 유태계인 로스차일드의 귀족 작위를 최대한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고, 유태자본의 영향력이 강성해지는 것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 한해서는 목적이 비슷했던 것 같지만. 미국 연방준비은행과 프리메이슨 사이에도 어떤 관계도 없습니다. 1877년에 죽은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와 1891년에 죽은 레오나드 제롬이 1913년 12월에 창설된 미국 연방준비은행에 로스차일드와 록펠러를 끌어들였다는건 무슨 황당무계한 설명인지? 미국연방준비은행의 설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1910년 조지아주의 지킬섬에서 시작된 모임이 그 시초입니다. 레오나드 제롬이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의 친구이자 파트너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존 D. 록펠러의 절친이였다는 이야기도 사실무근 같네요. 당최 어디서 읽으신 자료이신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등 이후 언급한 인물들도 프리메이슨과는 0.1%도 관련이 없습니다. 데이비드 록펠러 꼬붕이었던 브레진스키가 살아서 이런 이야기 들었다면 코웃음치겠네요. 이렇게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영상을 만들면 자주인님이 계속 비판하시는 그 서구 앵글로색슨 기득권이 코웃음을 칠 뿐입니다. 프리메이슨은 어디까지나 18~19세기 유럽 정치경제계에서 암약했던 구시대적 산물 (넓게 잡아도 20세기 초반까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결론부터 치고들어가는 이런 말버릇은 남의 꼬투리나 잡는 유아적 정신세계에서 나옵니다. 19세가 중반 프리메이슨의 전반적인 영향하에 있던 디즈레일리의 영국정치계를 마치 1920년 이후 미국 CFR 정치계와 혼동하면 안됍니다. 디즈레일리는 프리메이슨의 네트워크를 고발했지만 그 고발은 "대 의회 협박용"이었습니다. 디즈레일리의 보수 행보에 속으면 안됍니다. [로스차일드와 프리메이슨이 중국, 인도에서 마약산업으로 경쟁관계였고]? 자딘매디슨과 HSBC의 추후 네트워크를 보더라도 경쟁관계를 가장한 한 몸입니다. 이 모든 사실은 이미 퀴글리와 하물려 서튼 교수도 지적했던 겁니다. [겉으로 나뉘면 속으로도 나뉜거다?] 세상을 좀 순진하게 보시는 것 같네요. 우리 영상 이전 것 보기나 했나요? 영상에서 이미 모두 했던 말을 마치 새로운 듯 끄집어와서 누가 코웃음을 친다니? 자료는 참고란에, 화면에 올려 놓았잖아요? 어디서 배워먹은 두괄식 정서인가요? 매우 불쾌합니다. 말투도 불쾌하지만, 기전의 정보를 이리 빼고 저리 붙여서 마치 자기가 뭘 더 아는 듯, 비이냥을 지식인듯 그 삐뚤어진 정서가 참으로 보기 좋지 않습니다. 젊은이이라면 자세부터 고치고, 나이가 좀 있다면 입을 좀 다무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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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곳을 찔렀는지 논리적 반박은 못하고 인신공격만 난무하는군요. 정당한 근거로 정당한 비판을 해도 고마워하기는 커녕 욕설만 하니, 본인 그릇이 작은게 훤히 보입니다. 그러니 유튜브에서 지식인 흉내나 내면서 어설픈 인생을 사는 거겠지요. 러시아가 초대해줬다고 감사해서 푸틴 거기나 빠는 딱 그정도 그릇인 거였던 게지요, 하하. 불쌍해서 조금 더 계몽시켜주기 위해 정보를 몇개 더 던져주지요. 읽고 팩트체크 하는 능력을 기르길 바랍니다. 신항식씨가 교수를 했든 뭐든, 파리 무슨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든 뭐든 그런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직까지 기본적인 팩트체크를 못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1. 결론부터 치고 들어갔다? 결론부터 치고 들어간게 아니라, 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했습니다. 디즈레일리가 프리메이슨이 아니라는 점, 로스차일드와 프리메이슨 세력은 경쟁관계였다는 점, 레오나드 제롬이 미국 연방준비은행에 로스차일드와 록펠러를 끌여들인 것은 기본적인 시기조차 맞지 않은 궤변이라는 점, 록펠러와 제롬이 친구였다는 기록이 전무하다는 점 등 결론만 말한 게 아니라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했죠. 2. 남의 꼬투리나 잡는다는 유아적 정신세계다? 꼬투리를 잡은 게 아니라, 팩트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본인의 그릇이 작아서 그것을 꼬투리로 해석하며 인신공격을 할 뿐인 게죠. 3. 디즈레일리의 행보는 "대의회 협박용"이다 백번 양보해 디즈레일리의 프리메이슨에 대한 비판이 대의회 협박용이었다 한들, 디즈레일리가 프리메이슨이었다는 증거는 신항식의 머리 외에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본인이 정확하지 않은 말을 했으면 그 근거를 밝혀야지, 허수아비 논증 오류를 통해 초월적인 결론을 끌어내면 안 됩니다. 그래서 디즈레일리가 프리메이슨이었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나요? 4. 자딘매디슨과 HSBC의 추후 네트워크를 보더라도 경쟁관계를 가장한 한 몸이다 이 부분은 님이 베어링과 로스차일드 가문 역사, 그리고 영국의 귀족사회에 무지해서 그렇게 생각할 뿐입니다. 로스차일드 가문 전기로 유명한 하버드대 니얼 퍼거슨의 책에도 여러번 나오듯, 19세기 내내 로스차일드 가문의 대표적인 경쟁 세력이 베어링 가문이었고, 이 두 가문이 영국 시티 오브 런던 지구를 좌우로 양분했습니다. 그 베어링이 대주주였던 것이 바로 자딘매디슨과 HSBC였습니다 (HSBC는 로스차일드도 일부 지분 참여했으나 과반수는 아님). 원래 영국의 대인도, 대중국 아편무역은 동인도회사를 통해 이루어졌고, 동인도회사 의장이었던 프랜시스 베어링의 프리메이슨 인맥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여 동인도회사의 하청 회사 격이었던 베어링의 덴트 사가 19세기 초중반에는 아편무역을 독점을 했으나, 경쟁관계였던 로스차일드와 사순 가문이 점차 치고 올라와서 1860년대에 가서는 로스차일드와 인척 관계인 사순 가문이 중국과 인도의 아편무역을 장악하게 됩니다. 결코 동일한 세력이 아니에요. 또 다른 예를 들어줄까요? 1855-65년까지 영국 총리를 역임했고, 아편전쟁의 주범인 파머스턴 총리의 후원자가 바로 베어링 가문이었고, 파머스턴에게 중국을 침략하라고 요청한 윌리엄 자딘이 바로 자딘매디슨의 창립자입니다. 파머스턴은 디즈레일리의 경쟁자로 신랄하게 그를 비판하기도 했는데, 디즈레일리가 로스차일드 가문 가신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로스차일드하고는 결이 다른 세력입니다. 1865년 미국 남북전쟁 때도 파머스턴은 로스차일드와 다르게 남부만 지지했고, 연방이 해체되는 쪽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1885년에 가서야 라이오넬 로스차일드의 아들인 나다니엘 로스차일드가 글래드스턴 총리의 도움으로 귀족 작위 중 가장 낮은 남작 작위를 간신히 받게 되고, 귀족원 의원, 즉 상원의원이 됨으로써 영국 주류 사회에 완전히 편입된 겁니다. 그 전까지는 로스차일드도 영국 귀족들 눈치를 봐야했고 혼자서 무대뽀로 행동할 수 없었습니다. 님이 이런 역사를 모르고 음모론에 빠지니 무식하게 '프리메이슨=로스차일드=HSBC=자딘매디슨' 이렇게 일반화를 하게 된 겁니다. 로스차일드가 아편무역을 하느라 너무 바뻐서 영국 귀족들은 1870년대부터 일본 채권에 투자하고, 일본의 근대화 작업도 HSBC가 다 했던 겁니다. 5. 이 모든 사실은 이미 퀴글리와 서튼 교수도 지적했던 겁니다? 미안하지만, 서튼 교수는 신항식처럼 논리가 엉성하지 않았습니다. 서튼 교수의 책을 모두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는 아무나 막 프리메이슨이라고 몰아가진 않았습니다. 1971년에 출간된 "월스트리트와 볼셰비키"라는 책에서는 근거자료를 하나하나 제시하며, 어떻게 모건, 록펠러가 1917년의 볼셰비키 혁명에 후원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런 서튼 교수가 도대체 무슨 지적을 했다는 겁니까? 퀴글리의 경우는 밀너의 아이들과 라운드테이블 음모론으로 유명한데, 그 사람이 디즈레일리나 브레진스키가 프리메이슨이라는 무책임한 궤변을 늘어놓았던가요? 퀴글리와 서튼 교수가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했다는 건지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길 바랍니다. 6. 자료는 참고란에, 화면에 올려 놓았잖아요? 본인 자료의 어떤 부분이 디즈레일리와 브레진스키 등의 인물들이 프리메이슨이고, 미국 연방준비은행을 프리메이슨이 만들었고, 레오나드 제롬이 미국 연방준비은행에 로스차일드와 록펠러를 끌여들였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건가요? LaVergne D.(2007. ed.)의 글은 한국 프리메이슨의 역사에 대한 것 같고, Anderson J. (1723)의 글은 18세기 초반의 프리메이슨에 대한 이야기 같으며, Durham M. E.(1925)의 글은 사라예보 사건의 범인들에 대한 이야기고, 퀴글리의 글은 세실 로즈와 라운드테이블에 대한 이야기고, Durham M. E.(1925)의 글은 크로아티아에 대한 이야기인데, 도대체 본인 주장을 입증할 자료가 어디에 있다는 건가요? 아무 관련도 없는 출처를 대뜸 인용하면서 본인 주장이 맞다고 우기는 건가요? 결론: 세상을 음모론으로 보니, 이미 죽어도 한참 전에 죽은 프리메이슨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헛소리나 지껄이지요. (물론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라는 사라예보 사건의 주범들이 프리메이슨이었던 것은 맞습니다.) 그 삐뚤어진 정서가 참으로 보기 좋지 않습니다. 말투도 불쾌하지만, 남이 써놓은 정보를 이리 빼고 저리 붙여서 마치 자기가 뭘 더 아는 듯, 비아냥을 지식인듯 그 삐뚤어진 정서가 참으로 보기 좋지 않습니다. 젊은이는 아니고, 나이가 많은 사람이시니 입을 좀 다무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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