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스콜라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준 기독교 신비가 위 디오니시우스의 부정신학과 힌두교 우파니샤드 신비가인 야즈냐 발키야의 가르침(아트만은 '~가 아니다’(neti neti,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 부처를 죽이라했던 임제 선사, 그리고 도는 말할 수 없다 했던 노자의 사상은 놀랄만큼 유사한 불립문자의 진리를 드러내고 있다; 불교 무아론은 에고를 죄악시하는 측면이 있으나, 힌두교는 브라흐만(아트만)의 완전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

3.1. 불교 무아론의 존재론적 해석[편집]

그러면 영원하지 않으며 무상하고, 고통스러운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며, 이것이 자아며, 이것이야말로 나 자신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따라서, 물질이 과거나 미래, 현재의 것이든, 거칠든 미묘하든, 내재적이든 외재적이든, 열등하든 훌륭하든, 멀든 가깝든, 물질은 나의 것이 아니며, 자아가 아니며, 나 자신이 아닌 것입니다. 느낌과 지각과 형성작용과 식(오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불변의 아트만이 오온 중의 하나라면 우리들은 영원히 살 것이다. 그렇다면 인생무상이라는 것도 없고, 거기에서 오는 슬픔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슬픔과 괴로움은 끊임없이 따라다닌다는 것은 만인이 인정하는 엄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오온 중의 어떤 것도 아트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논의는 다소 형이상학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역시 경험적인 사실을 출발점으로 한 논의이다. 부처는 여기에서도 경험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도 아트만이 아니다, 저것도 아트만이 아니다’라는 표현은 사실 우파니샤드의 철학자 야즈냐발키야의 가르침과 매우 유사하다. 그에 따르면 참된 아트만을 언어적,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기껏해야 ‘~가 아니다, ~가 아니다’(neti neti,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라고 부정하는 말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부처와 달리 언어적, 개념적으로는 파악되지 않는 참된 아트만의 탐구에 대단히 정열을 불태웠지만.
‘불교는 무아입니다’라고 옛날부터 일컬어지고 있으나, 최초기의 불교에서는 무아설이 아니라 비아설이 설해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무아설은 애초에 아트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고도로 형이상학적인 논의를 골자로 하는 것으로 부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미야모토 케이이치, <불교의 탄생> 190~191[11]
조사선은 자아가 실재한다는 존재론적인 착각을 무아론을 통해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무아를 처음으로 말한 것이 부처였으며 모든 과학적 증거가 이를 지지한다는 말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석가모니가 부정하고자 했던 것은 '통제가 불가능한 괴로움의 원천으로서의 자아'지 실존적 착각이나 이데아가 아니다. 초기불교의 맥락에서 무아론은 말그대로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완전하지 않고 괴로운 특성을 가진 자아을 자신과 동일시하지 말라는 인식전환의 촉구였다.[12]

여러 경전상의 기록을 보면 부처의 자아에 대한 인식은 제프 포스터의 '경이로운 부재'가 아니라 쇼펜하우어의 '이로울 것이 없는 사건'[13]과 같은 염세적 관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14] 부처는 자아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념적 환상을 해체하기 위해 시체를 관찰하는 부정관 수행을 주도했는데, 이 수행을 거친 제자들 중 60명이 극도의 허무감에 자살을 한 사건이 있을 정도였다.[15] 조사선의 무아론은 매우 세련된 현대과학적 관점임은 분명하나 그것이 불교 무아론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12]
 당시 힌두교의 철학에서의 자아를 포함한 모든 존재는 완벽하고 아름다운 신적 브라흐만(아트만)의 표현이였다. 부처는 자아의 근본적 특성을 근거로 이에 정면으로 반하는 주장을 한 것이다.
[13] Man kann auch unser Leben auffassen als eine unnützerweise störende Episode in der seeligen Ruhe des Nichts. 삶은 비존재의 축복받은 고요를 방해하는, 이로울 것이 없는 사건으로 여길 수 있다. (출전: Nachträge zur Lehre vom Leiden der Welt.)[14] 부처 생존 당시에도 주류종교였던 힌두교는 완벽하고 순수한 자아의 관념인 '브라흐만'에 기초했는데, 부처는 이 지점에서 힌두교와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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