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와 '플랫폼'의 중요성을 간파했던 세실 로즈: 로스차일드와 함께 남아프리카의 광산업 독점한 뒤 공급을 인위적으로 조절해 가격을 폭등시킴; 세실 로즈의 로디지아에서 출발한 짐바브웨의 역사; 로버트 무가베의 독재와 토지개혁, 리디노미네이션으로 망했지만, 한 때는 자원부국이자 풍부한 농업을 자랑했던 국가였다

 

 


 

 



식민통치 시절부터 짐바브웨는 가난한 후진국이었어도 자원 부국이자 풍부한 농업을 자랑했던 국가로, '아프리카의 빵 바구니'라는 별명까지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무가베는 그런 기반을 가진 고국을 37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통치하면서 국민들의 실질소득을 오히려 저하시킨 것은 물론, 최전성기(?)에는 그 어떠한 전란도 없이 취약국가지수소말리아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만들어놨다.

 

식민통치 시절부터 짐바브웨는 가난한 후진국이었어도 자원 부국이자 풍부한 농업을 자랑했던 국가로, '아프리카의 빵 바구니'라는 별명까지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무가베는 그런 기반을 가진 고국을 37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통치하면서 국민들의 실질소득을 오히려 저하시킨 것은 물론, 최전성기(?)에는 그 어떠한 전란도 없이 취약국가지수소말리아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만들어놨다.

대통령이 된 후 1980년대와 1990년대 초까지는 그럭저럭 경제를 운용해왔다지만 원자재에 국가경제를 많이 의존했던 경제구조 탓에 1인당 GDP는 600–1000달러대의 박스권에 머물고 있었고 80년대 성장률 추세도 1984년에 -1.9% 성장을 기록하는 등 그렇게 안정적이지는 않았으며, 특히 국가가 물가와 환율, 수출입을 전면 통제하는 통제경제 노선을 택한 탓에 변변한 경제성장 같은 건 이룩하지 못했다. 결국 1992년에는 -9%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90년대 후반에 외환보유고가 바닥나서 1990년대 말에 한국처럼 IMF에 구제금융을 받게 되고 50%에 육박하는 실업률, 가뭄으로 인한 농업 생산량 저하, 정부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터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집권 초 20여 년 동안 대다수의 짐바브웨인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무가베의 인기는 바닥으로 떨어질 상황에 처했다.

이 상황에서 무가베는 국민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 2000년에 토지개혁으로 소수인 백인 지주들의 농지를 몰수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본래 짐바브웨의 토지 개혁은 1980년 독립 당시부터 무상몰수 무상분배로 계획되었으나 영국이 돈을 대주는 조건으로 매입 후 분배 방식으로 해줄 것을 요청해서 바뀌었는데, 그 영국이 태도를 바꿔 돈 못 대준다고 나선 통해 개혁이 지지부진했다. 그 상황에서 2000년에 무가베가 무상몰수 카드를 다시 뽑아든 것이다. 이 일로 인해 영국의 분노를 샀으며, 당시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가 직접 유감을 표했다. 그러나 무가베는 내정간섭이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이는 짐바브웨 국민들의 무가베에 대한 지지율을 더 높여주게 되었다.

영국 정부는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1960년대에 영국인들이 짐바브웨로 이민가서 농장을 사서 합법적으로 정착한 것까지 압수하고 폭도들이 이러한 농장주를 살해했다고 반론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민자들은 그전의 식민지 시절에 거져얻은 그 땅을 산 것이었다. 땅 뺏은 뒤 뺏은 땅을 합법적으로 구매한다고 해도 흑인들 입장에서는 뺏긴 땅인 건 여전하다. 따라서 짐바브웨 정부는 콧방귀도 안 뀌았다. 결국 (일부 백인 이민자는 빚까지 져가면서) 비싼 돈주고 산 농장은 죄다 거덜났다. 문제는 이렇게 강탈한 농장들이 농사를 모르는 흑인들에게 돌아갔다는 점이다. 그나마 농부에게 분배된 경우는 좀 나았지만, 대부분은 농장의 장비조차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할 정도로 농업에 무지하여 짐바브웨의 농업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이런 핸디캡을 생각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토지 분배를 추진한 점에선 무가베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아예 소련처럼 강제로 트랙터 교육이라도 시켰으면 모를까 그마저도 안 했던 것이다. 특히 무가베의 큰 잘못은 토지개혁 자체가 아니라 대책 없이 즉흥적으로 시행했다는 점과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고 자기 인기를 위해서라는 점이다.

다음으로 무가베 정권은 2008년에 외국 자본이 소유한 짐바브웨 기업들 중 50만 달러 이상의 자산을 소유한 기업은 주식 절반을 내국인(정확히는 토착 흑인 짐바브웨인)에게 양도하라고 지시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IEEA라고 부르는 법안을 발의한 것인데, 사실 짐바브웨가 아니더라도 FDI(외국인 직접 투자) 제한 자체는 많은 국가들이 시행하고 있으며 당연히 그 적용 업종 범위 및 제한율은 국가마다 천차만별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규제를 완화하거나 강화하는 등 변화해가는 부분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당장 우리나라도 옛날보다 훨씬 개방되긴 했으나 지금도 일부 업종에 대해 외국인 투자비율 50% 제한 등의 규제를 두고 있다. # 이러한 법을 만든 이유는 위의 백인 농장주 축출과 동일한 취지인데, 원래 짐바브웨에서 외국 자본이 크게 차지하는 부분은 사실상 농업과 광업 뿐이었다. 따라서 위에서 서술한 토지개혁으로 농업에서 외국 자본(백인 농장주)을 쫓아낸 다음, 이 법안으로 광업에서의 외국 자본들을 축출하려고 한 것이다. 이는 당연히 짐바브웨 경제애 대한 불확실성을 크게 증가시켰다.

다만 이는 짐바브웨 경제 몰락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긴 어렵다. 이미 2002년부터 쭉 이어진 서방의 제재로 인해 외국 자본의 비율이 높지 않았을 뿐더러 위에서 말했다시피 사실상 광업을 타겟팅한 법안인데 대부분의 외국 광산 기업들은 이것으로 인해 철수하거나 하지는 않았고 결국 토착민에게 지분을 양도했다. 물론 이를 따른 기업들도 외국 자본을 가져와서 신규 투자를 하기가 어렵게 되고 짐바브웨 자회사의 자산을 통한 재투자밖에 할 수 없게 되어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나 광업같은 업종은 일시적으로 많은 신규 투자(장비 구입 등)가 필요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여담으로 이 법의 시행도 개판이어서 법을 일관성 없이 적용하고, 주식 양도에 따른 보상금도 적절한 가치로 지불되지 않는 등 많은 문제가 있었다.

위의 막장 정책들 중 짐바브웨 경제를 몰락시킨 가장 큰 원인은 토지개혁이다. 광업과 비슷하게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농업이 망해버렸기 때문에 농업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아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예 2000년엔 2백만 톤에 이르던 옥수수 수확량이 8년 만에 고작 45만 톤으로 감소했다. 당연히 외환보유고는 거덜났고 서방의 제재로 인해 지원도 끊겨 경제는 파탄이 났다.

그 결과 짐바브웨는 1999년부터 2008년까지 2001년(1.4%) 한 해를 제외하면 9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했는데,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짐바브웨의 GDP는 68.58억 달러에서 44.16억 달러로 바뀌어 이전의 약 64.3% 수준으로 폭락했으며, 평균 경제성장률은 -4.3%에 달했다. 심지어 2003년에는 -17%, 2008년에는 -17.7%의 성장을 기록했다. 1인당 GDP도 동시기 기준으로 585달러(1999)에서 352달러 미만(2008)으로 떨어졌다.

당시 탄자니아, 부르키나파소, 동티모르, 말리가 600$대였고 기니비사우, 니제르, 토고, 르완다, 마다가스카르가 500$대, 라이베리아, 에리트레아, 미얀마, 네팔, 우간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시에라리온이 400$대였다. 심지어 383$를 기록한 말라위보다도 낮았다! 이 시기 짐바브웨보다 가난한 나라는 에티오피아(321$), 콩고민주공화국(318$), 부룬디(195$) 정도밖에 없었다. 소말리아는 1991~2012년 세계은행 통계가 없지만 통계가 잡혔으면 짐바브웨보다도 낮았을 것이다. 비공식적 추계로 2008년 소말리아의 1인당 GDP는 227$라고 한다.

사회도 파탄나 2004년에 짐바브웨 인구의 1/4인 300만 명이 삶의 개선을 위해 외국으로 이민했고, 2005년 기준으로 실업률은 80%에 육박하게 되었으며, 2009년에는 실업률이 무려 95%였다. 쉽게 말해 취업률이 고작 5% 미만이라는 말.

2007년 기준으로 빈곤율은 80%에 육박했다. 이 중 외국 이민은 심각해서 2007년 기준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수학교사 80%가 짐바브웨인이었다. 또한 2008년엔 어린이들의 취학률은 겨우 20%에 불과하게 되었으며, 2008년 8월부터 1년간은 콜레라가 창궐해 98,000명 이상의 콜레라 환자가 발생하는가 하면 1997년에 63세/54세였던 남성/여성 평균수명은 단 10년 만에 34세/36세로 줄어들었고, 관광 산업도 파탄났는데 밀렵은 더 늘어나서 환경까지 파괴되었다. 게다가 콜레라 사태 땐 무가베는 콜레라를 '영국이 개발한 생물무기'란 부적절한 말을 했고, 인권 탄압·경제 실책을 영국 및 미국 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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