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사농공상 제도 탓에 사무라이에게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했던 일본의 상인들은 '가부나카마'라는 상인조합을 설립해 '룰'에 기반한 자기구속적 검열시스템을 만들었다; 이것이 메이지유신 시기에 '룰'에 기반한 자본주의의 제도화와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서양 선교사의 기록에서 보듯 일본인은 조선인처럼 본디 게을렀으나, 근대 이후에 갑자기 근면해졌다; 그러나 이것도 역사적으로 보면, 한정된 개량지에 최대한 많은 일손을 투입해 장시간 농사를 하던 농경사회 특징이 맞물려 시너지를 낸 것 (반면, 영국은 토지가 넓은 반면 사람은 귀해 가축을 통해 주로 농사를 했다; 일본에서는 가축은 비용이 많이 든다 여겨져 농사보다는 교통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즉, 역사 발전이라고 하는 것은 대체로 시대흐름이나 운에 좌우되지만, 기존의 환경이나 조건도 큰 영향을 끼친다; 17세기 이후 에도의 농업생산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은 나카고메라는 쌀을 보급하게 되면서 2번이나 농사를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 그러나 유일한 단점은 이 쌀이 백미에 비해 맛이 없었다는 것

 

훌륭한 분석이긴 하지만, 일본의 근대화에서 프리메이슨과 로스차일드 이야기 빼면 뭐다?

앙꼬없는 찐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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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학 명예 교수 다케다 하루히토武田晴人는 그의 저서《일본인의 경제관념日本人の???念》에서 공업화 사회에서 보이는 일본인의 근면함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획득한 노동의 에토스ethos라고 설명한다. … 다케다 교수의 설명대로라면 ‘근면한 일본인 상’이라는 것은 겨우 80년의 역사를 가진 셈이다. 1882년 요코하마에서 발간된 영자신문에는 당시 서양인에 비친 일본인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게으르고 향락을 즐기는 이 나라 사람들의 성정은 문명사회로의 진보를 방해하는 요소이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게으른 일본인을 질타하는 서양인의 견문록적 성격의 글은 이 외에도 다수 존재한다. 일본인 스스로도 인정하는 ‘근면=일본인의 DNA’라는 뿌리 깊은 믿음은 어쩌면 심각한 오해일지도 모른다.
---「1부 4장 일본인들은 진짜 근면한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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