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혼자 덩그러니 사는 집. 대화 상대가 없는 공간에서 무심코 혼잣말을 중얼거린 적은 없는가. 텔레비전을 보며 맞장구를 치는 정도라면 괜찮다. 하지만 지나치게 혼잣말을 많이 내뱉는 사람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마음이 보내는 ‘SOS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일본 매체 ‘주간포스트’는 “특히 비관적인 혼잣말의 경우, 정신건강은 물론 신체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전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혼잣말이 위험한지’ 하나씩 짚어보자.
혼잣말은 마음이 보내는 SOS신호일 수도 있다.
독신생활을 하면 왜 혼잣말이 늘까. 정신과의사 이와세 도시오 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평소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가 감소하면 혼잣말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을 때 생각이나 감정을 머릿속에 쌓아두게 되는데, 계속되면 불안한 감정이 증폭된다. 하지만 언어화, 즉 목소리로 내뱉을 경우 불안과 외로움 같은 심리적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이와세 씨에 의하면 “타인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외로움과 고립감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사람은 무의식 중에 마음의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덧붙여 혼잣말은 사고를 명확하게 만든다. 가령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언어화함으로써 스스로 납득하고 답을 찾아내는 경우도 있다. 요컨대 혼잣말을 통해 자신의 뇌와 대화를 나누는 셈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함으로써 확신을 얻는다. 주로 혼자 묵묵히 작업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많다. 드라마에서 연구자들이 ‘아, OO를 XX하면 되겠구나’라며 중얼거리는 모습도 자주 등장한다. 이런 혼잣말은 사고를 정리하는 데 있어 좋다.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위험한 혼잣말이다. 특히 “조현병이나 발달장애, 자폐증(자폐스펙트럼 장애), 우울증 등의 질환을 앓는 사람이 혼잣말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망상이나 환청, 환각에 대한 반응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그래서 갑자기 화를 낸다든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말투가 특징이다. 또 “죽여 버리겠다” 등 폭력적인 단어를 사용한다거나 혼잣말은 아니지만 이유 없이 갑자기 웃는 것도 의심스러운 징후다.
내용에 따라서도 ‘좋은 혼잣말’과 ‘위험한 혼잣말’을 구분 지을 수 있다. 나도 모르게 내뱉는 혼잣말은 크게,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는 ‘다음엔 이렇게 해야지’하며 스스로 바꿀 수 있는 미래의 행동을 말로 꺼내는 것이다. 반면 후자는 ‘그때 이렇게 했어야 했다’며 바꿀 수 없는 과거에 관한 내용들이다.
과거 회상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문제는 혼잣말로 튀어나오는 말들이 대부분 자책과 후회로 연결된다는 데 있다. 전문가들은 “비관적인 혼잣말을 계속하다 보면 모든 일에 부정적인 생각이 자동적으로 떠오를 수 있다”며 “이러한 늪에 빠지면 결국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부정적인 혼잣말이 심신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가 적지 않다. 소극적인 발언을 반복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분비돼 면역력을 저하시키는 탓이다. 똑같은 부정적인 사고라 해도 머릿속에 생각만 하고 있는 것과 말로 꺼내는 것은 다르다. 자신의 목소리가 귀로 들어와 각인되면서 영향력은 더 커진다. 예를 들어 “저 사람 탓이야. 싫어”와 같이 타인에 대한 증오나 “실패야. 나는 안 돼” 등 비관적인 혼잣말은 불면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치매 전문가 마나베 유타 교수는 “혼잣말의 내용을 통해 질환을 알 수도 있다”고 전했다. 가령 “너는 누구니?” “무슨 일이야?” 등 누구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혼잣말은 신종치매로 불리는 ‘레비 소체형 인지증’이 의심된다. 또 집에 있는데도 마치 직장에 있는 것처럼 말을 한다든지 본인이 놓인 상황과 맞지 않는 혼잣말의 경우 ‘섬망(의식장애)’ 증상일 수도 있다.
참고로 “어라, 지갑이 어딨지?” “운전면허증을 어디에 뒀더라?” 같은 혼잣말은 내용보다는 빈도가 문제다. 마나베 교수는 “하루에 한두 번 정도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 이상 많을 경우 치매 전단계인 ‘경도인지장애’를 의심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언급했듯 모든 혼잣말이 ‘나쁜 징조’는 아니다. 혼잣말에는 뇌 기능을 활발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연락이 1시쯤 온다고 했지” “오늘은 이것과 이것을 하지 않으면 안 돼” 등 머리에 떠오른 것들을 소리 내어 말하면 사고가 훨씬 선명해진다.
마나베 교수는 “중요한 내용이나 꼭 기억해야 할 예정은 입에 올리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머리로만 생각하면 뇌의 특정 영역(사고)만을 활성화시킨다. 그것을 소리 내어 말하면 뇌의 언어 영역을 사용하게 되고, 귀로 들어갈 경우 청각 영역에도 작용한다. 흔히 “영어단어를 암기할 때 소리 내어 암송하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다만, 지나치게 많은 혼잣말은 마음의 병이 원인일 수 있다. 먼저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근본 원인을 찾아 바로 잡아보자. 부정적인 감정들이 혹시 내 안에 과도하게 쌓여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는 계기가 되면 좋을 것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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