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투기자본과 허버트 후버, 해리 트루먼 커넥션: 트루먼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것은 록펠러계 석유회사 중역 에드윈 풀리; 트루먼은 허버트 후버를 서울에 특사로 파견하여 한반도의 광산회사를 록펠러에게 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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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문건에는 종전 후 트루먼 대통령이 즉시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을 서울에 파견했으며, 또 에드윈 폴리라는 인물에게 특별조사원이라는 명목하에 현지 조사를 명했다고 기록한 대목도 있다. 그런데 이 폴리라는 이름은 이미 우리 머릿속에 들어와 있다. 다름아닌 트루먼을 대통령으로 만든 캘리포니아시민은행의 창립자이며 캘리포니아 스탠더드오일과 석유 이권을 분할한 석유왕의 정체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트루먼이라는 허수아비의 명령이 아니었다. 후버와 폴리가 스스로 현지로 달려가 탐욕스럽게 이권을 챙긴 상황이었던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한국에서 대유전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대신에 한국 최대의 금광을 미국의 오리엔탈콘솔리데이티드 광업이 장악한다. 이 역시 체이스내셔널은행과 US스틸이 주식을 지배하는 회사이다. 마침내 이 후버가 "태평양에 반공의 방벽을 쌓아야 한다"고 국제정치 무대에 호소하고, 이에 따라 1950년 1월10일 대만의 장개석 군대에게 탱크 200대, 장갑차 100대 등 산더미 같은 병기가 매각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이 병기들은 오하이오 군수창고에서 필라델피아로 수송되었고, 그 대금은 중국국제통상이 조달했으며, 융자를 한 곳은 체이스내셔널은행이다. 트루먼 대통령이 이러한 병기를 수출하지 않겠다고 선언한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그 선언을 완전히 뒤엎은 것이다."
이번에도 체이스내셔널은행이었다! 그로부터 16일 뒤 미국은 한국과 군사협정을 조정하고 그 보름 뒤엔 수폭 제조를 시작하였으며, 마침내 5개월 뒤에 공격을 개시했다. 개전 날짜를 록펠러가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휴전 날짜는 어떤가? 그들은 전쟁을 통해 한국 민중을 지배하려고 한 게 아니었다. 한반도 남부에 대한 지배를 굳힌 뒤 "38도선을 확정함으로써 일단 승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투기꾼다운 발언이 휴전 직전에 정부 수뇌들의 입에서 일제히 흘러나왔던 것도 이러한 사정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 대통령인 리승만에게 100만 달러를 주고 이권을 자유롭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이 우려한 것은 군수경기가 침해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는 무기 수출로 스스로 불을 지른 내셔널시티은행이 휴전 후의 경기를 분석하며 그렇지 않다고 장담했다. 이 은행의 월보(한국전쟁 중간기에 해당하는 1952년 10월호)에는 다음과 같은 견해가 실렸다.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나면 군비 계획이 축소될 거라고 예상하는건 국방정책에 대한 오해이다." 즉 모건의 이 월보는 국방정책이란 축소될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의견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더불어 앞으로도 축소될 리 없다는 경제예측을 투기꾼들에게 넌지시 알려주고 있었다. 288쪽 - 2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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