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운명에 반기를 든다", 그리고 "미래는 나의 손에 달려있다"는 관념의 중요성
나는 "정해진 운명에 반기를 든다"는 개념을 좋아하고, 또 그런 신념을 가진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을 좋아한다.
이를테면 만년 꼴찌들이 괴짜 변호사를 만나 도쿄대에 기적적으로 합격하게 되는 <드래곤 사쿠라>나,
백수 한량이 우연히 재벌 노인을 만나 투자를 배우고, 큰손으로 성장하게 되는 <빅머니>,
돈없고 힘없는 가출소녀에서 전설적인 연극인 홍천녀의 주연을 따내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유리가면>,
빈곤한 집안배경을 가진 청년이 이를 악물고 요식업으로 성공하는 스토리인 <이태원 클라쓰>,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 회사의 후계자가 되어 망해가는 회사를 개편하는 이야기인 <아키라와 아키라>,
비참한 재벌가의 노예에서 재벌3세로 환생하여 수많은 기업들의 대주주로 군림하게 되는 이야기인 <재벌집 막내아들> 등이 그렇다.
이렇게 "밑바닥에서부터 최고의 위치로 올라선다"는 모티브를 가진 콘텐츠들이 시장에서 끊임없이 소비되는 이유는, 비루하고 소박한 삶을 사는 대다수 대중들이 인생역전에 성공한 드라마 주인공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짜릿한 대리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픽션 뿐 아니라 대중들은 현실세계에서 자수성가한 인물들의 이야기에 열광하곤 한다. 찢어지게 가난한 판잣집에서 태어났고, 재일교포로 차별을 받으며 성장했지만, (자신이 천재라는 강력한 자기최면 하에) 자수성가하여 일본 제일의 부자가 된 손정의의 성공담은 대중들의 구미를 자극하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손정의의 성공은 실로 인간승리의 표본이라 할만하다. "모든 인간은 같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19살 손정의의 자기 운명에 대한 치열한 와신상담은 그 옛날 중국의 역사서에 나오는 숱한 영웅들 (특히 한신)의 일화들을 상기시키며, "다른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독일에서 영국으로 이민을 와서 역사적인 대성공을 거둔 네이선 로스차일드의 일화도 떠올리게 한다.
칼 뱅의 예정설이나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설, 또는 동양인들이 신봉하는 사주명리학이 맞는지의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만약 운명이 정해져있다면, 그것을 극복하려는 '오기의 정신'을 갖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오기의 정신조차 정해진 운명의 일부라고 한들, 상관은 없다. "미래는 우리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역경무뢰 카이지>의 오프닝 가사처럼, 19세기 후반 유럽의 벨 에포크적인,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버블경제 같은, 한없는 낙관주의와 자기확신의 믿음은, 하늘과 땅을 가로지르고, 시공간의 장벽을 넘어, 통상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조차 가능케 만들 것이다. 현실왜곡장(reality-distortion field)은 현실이 왜곡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지한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또 다른 현실이다.
1980년대 버블시기에 일본인들이 미국영화의 상징인 콜롬비아 픽쳐스를 인수하고, 또 뉴욕의 심장과 같은 록펠러 센터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인수했듯이, 이 글을 쓰는 나도 언젠가는 록펠러 센터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인수할 수 있을 것이고, 도쿄의 상징인 치요다구의 황궁이나 마루노우치의 미쓰비시 본사를 인수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런 가능성을 언제나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한다.
삼극위원회를 통해 左 독일 프랑크푸르트, 右 일본 도쿄, 中央의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세계를 지배했던 데이비드 록펠러처럼, 바로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어 다가올 22세기의 세계질서를 개편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나의 생각 한알이 씨앗이 되어 새로운 문명이, 새로운 세계가 탄생할 수 있다고 진지하게 믿어야 한다.
1945년 광복 이후 한국의 떠들석한 분위기와 건국준비위원회의 짧은 활약, 1961년 군사정변 이후의 어수선한 사회적 분위기와 국가재건최고회의의 활동은 과도기에 새로운 시대를 만들기 위해 어떤 활동들이 선행되어야 하는지 일종의 사례연구로서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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