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정치의 중심축은 네루-간디 가문; 자와할랄 네루와 그 딸 인디라 간디, 손자 라지브 간디 모두 빅터 로스차일드의 소련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KGB와 협력했으며, 스위스에 비밀계좌를 개설했다

 
인디라 간디: 외교적으로 보면 한창 냉전이 진행되고 있던 시절에 미국과 소련 그어디에도 붙지 않고 중립적인 외교 정책을 펼쳤다. 아버지 자와할랄 네루의 기본 외교기조를 그대로 계승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인도는 제3세계의 수장국으로서 중립적인 외교정책을 보이려 노력했는데, 그와중에 인디라 간디 시절에는 유난히 소련과의 관계가 좋았다. 특히 소련이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에서 방글라데시에게 군수물자를 제공하고 인도의 편을 들어 유엔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그때 이래로 대소련 관계는 급속도로 호전된다. 인디라 간디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껄끄럽게 여겼지만 소련과의 관계를 생각해 일부러 비판을 자제하기도 했다. 소련은 인도와의 밀월관계를 이어가면서 경제적, 관세적 혜택을 줬고 1980년대 초에는 인도의 최대 교역국으로 떠오르기까지 했다. 여러모로 소련과 인도가 서로의 편의를 봐주면서 괜찮은 관계를 이어갔던 시절이었던 것.

반대로 미국과의 관계는 소련만큼 매끄럽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수장을 자처하던 미국으로서는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따로노는 인도가 예뻐보일 수가 없었고, 인도가 비동맹운동을 창설해 제3세계 국가들을 규합하려 시도하자 이 시도도 딱히 좋게 보진 않았다. 특히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인디라 간디 총리를 엄청 싫어했는데, 그녀를 '암캐' 혹은 '교활한 여우'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다. 다만 1980년대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대 들어서는 관계가 상당히 개선된다. 미국 외에 서유럽 국가들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일단 그녀가 유년 시절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인맥이 많았기도 했고,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나 마가렛 대처 총리와 친구를 먹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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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지브 간디는 총리직 사임 이후에도 끝없이 부정부패 스캔들에 시달렸다. 비록 자나티당과 인도인민당, 인도공산당 등과의 연립정권이 혼란에 휩싸였고, 국민회의도 어부지리로 1991년에 정권에 복귀할수있었지만 그 해 스위스 언론에서 이멜다 마르코스를 포함한 제3세계 정치인들이 스위스 비밀계좌에 은닉금을 보관해두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폭로했는데, 이 정치인들 가운데 라지브 간디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 이 기사에 따르면 라지브 간디는 스위스 계좌에 약 25억 스위스 프랑에 달하는 거금을 꿍쳐두고 있었다. 당연히 야당 세력들로부터 집중포화가 쏟아졌고 그해 12월에는 의회 안건으로까지 상정된다. 하지만 라지브 간디가 속한 네루-간디 가문의 권력이 지나치게 컸던 탓에 제대로 파헤쳐지지는 못했고, 불과 3년 후에 라지브 간디가 암살되며 거의 불가침의 영역으로 지정되면서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스캔들이 되어버렸다. (뇌물현??????) 2011년에 의회에서 야당이 이 사건을 재조사해야한다고 주장하자 인도 국민회의 의원들의 야유를 받고 사과하기까지 했다고.


불과 1년 후인 1992년에는 '타임스 오브 인디아'에서 라지브 간디 전 총리가 소련 KGB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폭로했다. 소련 정부 역시 이 사실을 인정했고, 이후 라지브 간디가 소련 산하 국영기업들로부터 받은 혜택을 감사하는 내용을 쓴 편지가 발견되면서 거의 확정적인 분위기로 흘러갔다. 이 소련 기업들로부터 받은 자금들 대부분은 인도 국민회의 운영자금으로 쓰였다고 한다. 1971년부터 꾸준하게 소련 정부로부터 보조금과 각종 혜택을 받으면서 상당히 많은 돈을 중간에 헤쳐먹었던 것이다. 다만 이 KGB 스캔들 역시 라지브 간디의 암살 이후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고 묻혔고, 2002년에 재조사를 시도했지만 러시아가 워낙 민감한 문제라 자료 공개를 거부하면서 이루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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