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파불교의 현학성 (아비달마), 교리화 (사선정, 팔선정), 엘리트주의에 질려 등장한 대승불교는 대중포교와 체험실습에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대승불교도 경전의 이론화로 고인물이 되자, 중국에서 선불교가 등장했다; 마치 고전주의 예술이 타파되고 낭만주의 예술이 등장하는 식으로 예술사가 끊임없이 변천을 거듭해온 것처럼, 종교의 역사 역시 그러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n2POAISwr88

대승불교는 20여개의 부파불교의 이론주의, 현학주의 거부하고 부처님 초기 가르침으로 가르치자는 취지로 만들어짐.


부파불교에서는 사선정, 팔선정 순서대로 닦아나가야 한다고 말함. 깨달음의 방편일 뿐인데, 방편 자체를 단계화하여 너무 강조했던 것.


대승불교 모토
- 파사헌정: 삿된걸 깨뜨린다
- 불이중도: 중도는 불이법을 드러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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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승(Mahāyāna)불교와 소승(Hinayana, (Theravada))불교는 크다·작다라는 단어의 의미 때문에 상대적이거나 우열적 개념으로 인식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대승은 그 자체로서 절대적인, 불교발달사의 측면에서 어쩌면 필연적으로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새로운 불교운동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파불교, 아비달마 불교(소승)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 열반 후 불교 교단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 오다가 서력 기원을 전후하여, 기원전 3세기 무렵 아쇼카왕이 재분배했던 전국의 8만4000 부처님 사리탑을 거점으로 점점 정착됩니다. 이 중 지리적 큰 거점에서는 작은 탑들을 관리하며 출가자들이 수행할 수 있는 정사(精舍, 수도하는 곳)들이 만들어집니다.

정사의 후원은 주로 경제적 기반을 가진 무역과 상업에 종사하는 신흥계층의 신자들이었고, 이들의 풍부한 지원에 안정을 얻은 교단은 불교교리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활발해집니다. 이를 ‘아비달마’, ‘법(法, dharma)에 대한(abhi)’ 연구시대라고 합니다. 비교하자면 서양의 중세, 그리스도교의 스콜라 철학와 비슷합니다. 아비달마는 인간의 내면세계와 객관세계를 분석하여 그들 상호간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분류해 매우 복잡하고 치밀한 교리체계를 구축하였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종교적 체험 속에 자각되고 행위를 통하여 실천되어야 하는데, 외부적인 관점에서 대상화하고 논리적으로 고찰하는 학문에 매몰되어 대중포교와 재가신자에 대한 교화에는 소홀하게 되고, 현실과 동떨어진 일부 엘리트 출가자들의 사변은 불교의 이해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아비달마는 불교를 일부 출가자들의 전유물이 되는 폐단이 생겼고, 중생을 향한 이타행보다는 아라한과를 얻기 위한 자리 추구라는 비판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종교적 반성이 바로 출가자와 재가자가 함께하는 대승불교, ‘큰 수레에 모두 함께 타고 부처님 세계로 건너가는 불교운동’으로 촉발되었습니다.

그러나 대승불교 운동에 의해 ‘특정한 몇몇만 타고 가는(소승) 불교’라며 폄하된 테라바다(상좌부)불교·남방불교는 석가모니와 그 직제자들의 가르침과 전통을 잘 계승해 와 부처님의 근본사상을 정확하게 알고 이해하기 위해 보물창고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처님 원음에 가장 가까운 가르침으로 종교성과 신앙심이 보다 강조된 대승불교에 불편한 일부 현대인들, 부처님 원음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위안받고자 하는 현대인에게 소승불교는 체계적이고 논리적 이해로 신선함을 주는 불교가 되고 있습니다.

[불교신문3627호/2020년11월7일자]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https://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8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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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승불교와 대승불교는 석가모니 입적 후 100년을 전후해 나누어졌다.소승불교시대는 석가모니 입적 이전,실천보다 특정 교리를 연구하고 보다 학구적으로 융성한 시기를 일컫는다.소승불교에는 경전이 존재하지 않는다.석가모니가 소승과 대승을 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 부처님의 제자들은 석가모니의 말씀을 외우면서 지식을 축적하고 깨달았다.즉 재래불교인 소승불교는 부처의 육성을 들으면서 부처의 가르침을 원형 그대로 계승하는 것이다.경전이 아닌 부처님의 가르침이 곧 불경인 셈이다.이는 ‘원시불교’를 포함하는 경우와 대승운동의 상대방이 되었던 보수적인 모든 부파만을 일컫는 경우 두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소승불교는 이같은 여건에 따라 국가별로 약간의 특색을 갖추며 부처님이 남긴 경율론을 전승하기 위해 남방지역 상좌부 권역인 스리랑카를 거쳐 미얀마·타이·라오스 등지에서 남방불교로 분류되어 지금까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대승불교는 인도를 기점으로 일어난 새로운 종교운동이다.기존 재래불교가 이론에 치중해 다년간 수행한 출가 승려가 아니면 알기 어려웠다는 점과 일반대중과 멀어진 출가승려만의 불교 즉 중생구제는 염두에 두지 않고 혼자만의 깨달음을 목적으로 한다는 비판이 쏟아지게 되면서 부터다.이는 여 파로 나눠져 자파의 주장만이 최상의 것이라고 고집해온 원시불교의 자세를 맹렬히 비판하고,계율과 경전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겠다는 데서 시작된다.



 대승불교 운동의 전거로는 집착으로부터의 해탈을 실천 중심으로 삼고 이에 ‘공’의 사상을 강조하는 ‘반야경’을 시작으로 ▲구원의 본불을 세우는 ‘법화경’ ▲광대한 불타의 세계를 교설하는 ‘화엄경’ ▲재가거사인 유마가 오히려 출가자를 교설하는 ‘유마경’ ▲서방정토 아미타불의 세계를 찬탄하며 일체 중생의 구제를 약속하는 ‘정토삼부경’은 새로운 불교운동을 뒷받침하게 된다.

 이 경전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대승이 불교의 중심세력이 돼가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고,2∼3세기에는 용수가 출현해 이 대승불교의 사상적 기반을 확립한다.이어 일체 중생에 불성을 인정하는 여래장을 교설한 ‘승만경’ 등의 경전이 만들어졌고,일체를 마음의 흐름에 응집시키는 유식사상의 대두에 이어 5∼6세기에는 불교논리학인 인명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사람을 깨달음으로 이끌어 불국토를 건설하고 다 함께 성불코자 하는 대승에 비해 수행에 전념해 해탈을 목표로 하는 소승은 스케일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편견을 갖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즉 석가모니는 소승과 대승을 설하지 않았다는 것.얼핏 보기엔 여러 곁가지로 인해 다르게 보일지 모르나 기둥은 같다.이에 따라 소승이 대승의 두 불교의 구분 자체는 무의미하며 필경에는 하나라는 것이다.즉 소승불교가 뿌리요 줄기라면,대승불교는 꽃이요 열매라는 결론이 필자의 견해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8111350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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