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법적으로 보는 천하 패권의 길 (feat. 유방, 마오쩌둥, 버트런트 러셀, 데이비드 록펠러)
연기법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 말하고 쓰는 '나'는 단지 한 사람의 나가 아니다.
'나'라고 하는 육체가 형성되기 위해 온우주와 자연의 도움이 필요하다.
단 하루라도 물을 마시지 않고, 동식물의 시체를 취하지 않으면, '나'는 살아갈 수 없다.
또 '나'라고 하는 정신을 형성하기 위해 수많은 사상과 철학, 예술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여, 15세기 영국 시인 존 도네의 표현처럼, '인간은 (외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다'.
인간은, 더 나아가 모든 생명 존재는, 서로가 서로를 투영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된 부분이자, 전체이며, 프랙탈이다.
이것이 순수하게 철학적으로 생각했을 때, 온우주가 나를 도와야하는 이유이자,
내가 온우주를 도와야 하는 이유이다.
(별로 감정적으로 공감은 안 되지만.)
내가 재벌이 되는 것도,
세계를 지배하는 것도,
역사에 이름이 남기는 것도,
'나'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인류 전체가 합심해야 할 어떤 명분이 있어야
그 자격과 권한이 주어지는 것이다.
(물론 그 자격과 권한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할지 아니면 남용할지는,
그 개체의 선택이자 책임이다.)
이것이 연기법적인 세계의 실상이다.
하여, 인류 역사를 고찰했을 때
제왕적 패권 내지는 범지구적 영향력을 행사한 많은 인물들
ㅡ 이를테면 유방, 마오쩌둥, 버트런트 러셀, 데이비드 록펠러
의 등장은 우연이 아닐 뿐더러,
그들의 성공 역시 순전히 그들이 잘나서 가능한 결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으로 가능했던 부분도 있는 바,
이는 그들이 연기법의 본질을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유방은 황제가 된 이후에는 개국공신들을 무참히 살해했으나
황제가 되기 전까지는 자기보다 능력이 뛰어난 부하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경청했다.
하여, 유방은 중국 통일의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던 것이다.
"무릇 군막 안에서 계책을 세워 천리 밖에서의 승리를 결정짓는 일에 있어서 나는 자방(子房-장량)만 못하며,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어루만져 주며 식량을 공급하고 군량 공급로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일에 있어서 나는 소하만 못하고, 또 100만 대군을 이끌고서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적을 패퇴시키는 일에 있어서 나는 한신만 못하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인걸(人傑)로서 나는 그들을 능히 썼으니 이것이 내가 천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항우는 단지 범증(范增) 한 사람뿐이었는데도 제대로 쓰지를 못했으니 이것이 그가 나에게 붙잡힌 까닭이다.”
마오쩌둥 역시 호사가들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실제로는 친화력이 대단히 뛰어난 인물이었다고 한다.
물론 진심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거나 존중해서가 아니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친화력이 뛰어났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는 김일성이나 장쩌민도 친화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버트런트 러셀이나 데이비드 록펠러는 마당발로 유명했다.
그들은 살아 생전,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들 중에서 만나지 않은 인물들을 찾기가 더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교류했다.
특히 록펠러는 평생 200여명이 넘는 국가 정상들을 만날 정도로 정력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그 원동력을 바탕으로 사우디의 왕족들과 협력관계를 만들어 미국 달러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축통화로 만들어 미국을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로 만들었으며, 로스차일드 가문을 몰아냈고, 중국을 개혁개방시켰으며, 소련을 해체시켰고, 마침내 천하 패권을 거머쥐었던 것이다.
네트워크, 인맥, 또는 내 주변의 중심을 확고히 하는 능력
ㅡ 이것은 위로 갈수록 중요해지는 리더의 자질이다.
물론 이것은 그 사람의 능력이나, 인간애 같은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위에 열거한 유방이나 마오쩌둥, 데이비드 록펠러는 천사보다는 악마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인간본성을 적확하게 이해했고, 기술적으로는 탁월한 호인들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을 지지해주는 많은 우호세력을 만들 수 있었다.
아로는 자신에게 이 같은 자질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지각한다.
이 자질이 없으면 천하를 거머쥘 수 없을 것이며,
설령 천하를 요행으로 거머쥔다 해도 오래 쥘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로는 범사에는 다 적절한 때가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설령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세계 전체를 포용하게 된다 할지라도,
어느 시점에서는 누구보다도 더 고립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나의 인생은 포용의 시기가 아닌 고립의 시기이며,
평화의 시기가 아닌 갈등의 시기여야만 한다.
'거대한 전환'은 적절한 시점에 가서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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