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선거 이후 미국 남부: 민주당/미국 북부: 공화당 지지구도가 180도로 뒤바뀐 이유는 존슨 정권이 데이비드 록펠러의 지원으로 탄생했기 때문


존 F. 케네디가 급작스럽게 사망하고 1년 뒤에 치뤄진 1964년 대선 당시에 데이비드 록펠러는 미국 민주당을, 형인 넬슨 록펠러는 공화당을 담당하고 있었다.

(넬슨 록펠러는 부시 가문 사람들과 함께 1950년대 공화당 아이젠하워 정권 때부터 정권 깊숙히 개입했었다.)

 

데이비드 록펠러는 자신이 이끌던 민주당의 이미지를 쇄신코자,

인종차별을 선동하던 노예민주당의 과거 역사를 버리고,

린드 B. 존슨을 통해 진보적인 정책들을 많이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존슨은 민권법을 통과시키면서 연방 정부 차원에서 흑인들의 법적인 평등을 보장했고, (그리하여 흑인들의 대대적인 지지를 받는다.)

인종에 기반을 둔 이민정책을 뜯어 고쳤으며,

The Great Society라고 하는 케인스주의적인 복지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교육, 메디케어, 질병 치료, 도시 재생, 도시 미관 정비, 자연보호, 소득이 낮은 지역 개발, 가난과의 전쟁, 부의 재분배, 범죄의 억제 등에 종전보다 훨씬 더 많은 예산을 쏟아부었다.


하여, 1964년 선거에서는 당시 존슨의 흑인 민권 신장에 불만을 품던 전통적인 노예민주당원들이 공화당으로 말을 갈아타고 (* 당시 이들은 존슨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민주당은 백인우월론에 입각해 흑인들을 통제해야 하는 당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민주당원들의 심리를 대변하던 것이 당시 앨라배마 주지사였던 조지 월리스),

반대로 전통 공화당원들은 민주당에 합류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정작 존슨 자신은 인종차별주의자였던 것이 아이러니긴 하지만...

 

 

 

 

1980년대에는 이와 정반대의 일들이 일어난다.

 

민주당이 본진이었던 데이비드 록펠러가 민주당 지미 카터를 버리고 (당대 정국을 떠들석하게 했던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은 카터를 낙선시키고, 중동을 테러리스트화하려는 하나의 방편이었다),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것이다. 하여, 당시 언론에서는 레이건 민주당원'이라는 말까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원래 레이건은 록펠러처럼 민주당 출신이었지만, 3류 배우답게, 정당과 관계없이 자신의 목줄을 쥔 권력자의 말에 충실했다.

 

하여, 1980년대 록펠러 가문 본진은 공화당이 된다.

 

이 시기, 데이비드 록펠러는 로널드 레이건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세계적인 규모로 확대시킨다.

가장 큰 규모의 업적은 물론 중국의 개혁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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