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의 안정된 가치와 증가된 통화량 둘 다를 가져가고 싶어서 생겨난 트리핀의 딜레마 (Triffin's dilemma); 금본위제 체제하 달러의 불안전성은 68혁명으로 위기에 몰린 드골이 미국의 금태환을 요구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이것을 1971년의 닉슨쇼크와 오일쇼크를 통해 해결한 것이 데이비드 록펠러와 헨리 키신저였다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



달러를 국제 거래에서 사용하려면 그만큼 달러를 많이 찍어내서 전 세계에 공급해줘야 한다. 그런데 달러를 많이 찍어내면 달러의 가치가 떨어져서 아무도 달러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달러 가치를 유지하려고 달러를 조금만 찍어내면 국제 거래에서 달러가 부족해진다.



국제 정치학 및 경제학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미국의 35달러를 금 1온스와 연동하고 다른 나라의 화폐를 달러와 연동함으로써 형성된 환율 제도로 서구권의 붕괴는 일단 막았다. 그 다음 스텝으로 세계 경제가 활발히 돌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 끊임없이 달러를 세계 시장에 공급하는 것이었다. 세계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국가 간의 거래도 늘어나는데, 이에 필요한 화폐는 세계의 표준 화폐인 달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이 달러를 세계 시장에 공급할수록 1달러의 상대적인 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그렇지만 명목상으로 달러는 여전히 35달러당 금 1온스의 가치를 보증하게끔 되어 있다. 따라서 미국이 보유한 금보다 달러 발행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다른 나라에서는 달러를 모두 미국에 주고 금을 요구하면 개이득이 된다. 이것이 실제로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 골의 정책.

당연히 드 골이라고 깽판치고 싶어서 이런 것은 아니고, 프랑스 경제가 68운동이라는 정치적 위기에 처해서 침체할 것으로 예측한 환투기 세력이 프랑스 프랑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베팅한 것이 원인이었다. 고정 환율제하에서는 프랑화 가치를 유지해야 했으므로 계속 외환 시장에 개입했는데, 막상 싸우다보니 영국보다도 풍족했던 금 보유량이 겨우 14일 만에 모조리 소진되고 말았다. 프랑스가 고정 환율제를 포기할 게 아닌 이상에야 어디선가 금을 계속 구해와야 했고, 가장 확실한 수급처는 미국의 금 태환이었던 것이다. 달러를 갖다주고 금을 가져와서 프랑화를 계속 방어해야 했던 것. 프랑스로서는 고정 환율제라는 약속을 어기지 않기 위한 대응이었으나, 이 행동이 금본위제라는 더 근본적인 약속을 깨트릴 도화선이 될 거라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금 1온스 = 35달러"의 원칙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치게 되고, 이걸 가만히 내버려두면 세계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즉, 금의 보유량이 일정하다는 가정 하에서, 통화 가치와 통화량은 반비례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안정된 가치와 증가된 통화량 둘 다를 가져가고 싶은 것이 바로 트리핀의 딜레마.



트리핀의 딜레마보다 더한 것은 미국의 국제 수지 적자라 할 수 있다. 미국은 1940년대까지는 무역 수지 흑자국이었으나, 1950년대 들어 유럽, 일본 등의 추격으로 국제 수지는 적자가 되었다. 그에 따라 외국의 달러 보유고는 늘어난 반면, 미국의 금은 지속적으로 유출되어 달러화의 가치는 계속 추락하게 되었다. 더욱이, 존슨 행정부의 '위대한 사회' 계획이라는 대규모 복지 프로그램과 베트남 전쟁 전비로 정부 지출이 폭증했고 이는 무역 수지 적자를 심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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