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퍼진 임제 선사 임제록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의 오역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이란?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이란 말은 임제록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다. 기존의 해석은 '그대들이 처한 곳에서 주인이 된다면 그대들이 서 있는 그곳이 그대로 진리의 자리이다. [법정역]' 정도의 해석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해석이다.

여기서 '수처작주(隨處作主)'는 ‘처(處)를 따라 주관을 지었다.’라고 번역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처(處)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비로소 그 의미가 바르게 파악될 것이다. 이것은 주관과 객관을 생산해 내는 12처(處)를 말하는 것이다. 즉 내입처(內入處)와 외입처(外入處)의 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내입처와 외입처가 작용할 때 주관인 자아(自我)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그것의 상대되는 객관(客觀)도 드러나게 된다. 그렇게 드러난 자아는 자신이 ‘외입처(外入處)’를 보고 있으면서 진짜 객관세계(客觀世界)를 바라본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處)를 따른다는 것'은 주관과 객관으로 나누어서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대상을 보려면 보려는 자가 꼭 필요한데, 이런 생각을 만들어내는 곳이 바로 '처(處)'이니, ‘처를 따른다는 것’은 이미 주관이 세워져 버린 것이다. 이미 주관이 세워졌다면 대상은 이미 객관화되어 진실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대상을 볼 때, 어디 한군데 모자라게 보이거나 이상하게 보였던 적이 있던가? 눈병이 없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주관이 세워지면 내외입처(內外入處)는 세상을 너무나 완벽하게 조작하여 구현하므로, 그 구현된 세상을 전혀 의심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지금 보고 있는 모든 것이 외부의 대상 그 자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처에서 조작된 생생한 대상이 계속 돌고 바뀌면서 동영상처럼 다가오므로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해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처'의 작용에 대한 설명인데 그동안 잘못된 해석으로 인해 많은 수행자는 혼란을 겪고 깨달음을 오해하게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선사들은 '깨달음은 세수하다 코 만지기보다 쉽다.'라고 말하지만, 현실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일평생 수행을 하고도 부족한지, 다음 생에도 이어서 하겠다는 수행자가 부지기수로 많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그것은 지도를 잘못 읽어서 엉뚱한 데서 헤매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98832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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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00년전 한문으로 기록된 법문을 원문의 뜻에 충실하게 정확히 번역하는 것은 암호해독의 수준이상으로 난해한 작업이다. 그러나 역자의 깊은 통찰과 해박한 식견으로  임제록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손꼽는 법문인 수처작주 입처개진의 처處를 곳, 장소(place, location, spot)로 일반적으로 해석한 오류를 지적하고 12연기 중 육입처의 처임을 밝힌것은 마치 다시 살아난 임제스님을 친견하는 듯한 놀라움과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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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는 한 번도 책을 쓴 적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는 일개 수행자일 뿐이다. 다만, 일찍이 절집에 들어온 인연으로 ‘수행’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해 보았다. 아둔해서 그렇겠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깨달음은 고사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던 중에 "한문 경전의 현토를 무시하고 읽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 읽고 또 읽었다. 그러던 중, 내가 부처님 법에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이유가 나의 잘못이라기보다 잘못된 번역을 따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은 대체로 못 배웠으므로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이해도가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부처님의 말씀 한마디에 그 자리에서 해탈했다. 또한 조사의 제자들도 조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깨닫기 일쑤였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렇게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이것은 대부분 잘못된 번역 때문에 부처님과 조사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분명히 알지 못한 채 엉뚱한 곳으로 나아가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이것은 소와 뱀이 같은 물을 마시고 우유와 독을 내는 것과 같다.

이 "임제록"은 원래 역자의 관심 밖이었으나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의 심각한 오역을 발견하고, 나와 같은 불행한 수행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부족한 것은 알지만 이렇게 번역서를 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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