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억분의 1의 입증(立證) / 중간인, 경계인의 삶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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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스코어 지구 인구 70억.

그러면 인생도 70억 개다.

나든 당신이든 당신 전 남편이든 당시 전 남편의 여친이든

각자가 70억분의 1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



살다 보면 이 무슨 엿같은 운명인가? 할 때가 있고

이 무슨 날벼락인가? 할 때도 있다.

예컨대 정성껏 죽을 쑤어 개에게 줬다든가

약으로 개똥을 먹었는데 바르는 개똥이었고

앞으로 넘어졌는데 뒤통수가 까지고 뒤로 넘어졌는데 불알이 뽀개지고...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일이?

이 무슨 업이란 말인가?

나는 왜 일평생 이 클래스를 벗어나지 못할까?



...라고 할 때,

그게 바로 나라는 존재를 <입증>하는 게 아닌가 한다.

立證.



이 드넓은 지구에서 나 말고 누가 그걸 겪겠는가?

누가 나 말고 개똥 맛을 봤겠는가?

누가 나 같은 고독을 알고 나 같은 슬픔을 알 것이며, 나 같은 삐에로가 있겠는가?

그게 바로 나의 <立證>이다.

좀 비관 일색인가?

반대로 만사여의 만사형통도 마찬가지다.

살다살다 호박이 넝쿨 째 굴러 오고

길 가다 개똥을 밟았는데 앞엣 놈은 더 밟고 간 거 있지?

어떻게 나에게 이런 행운이?

어떻게 나에겐 사사건건 행운의 여신이 참견하실까?

어떻게 나는 밟은 개똥마다 대박이 터질까?

말이 안 될 정도로 복받은 천조의 일생을 살아 가는 것,

그것도 역시 나를 극명하게 <입증>하는 것이다.



살인누명을 쓰고 숱한 읍소마저 무시된 채 청춘을 감옥에서 보낸 억울함,

일평생 개고생 했으나 한가닥 희망 있기에 버텼지만 그마저 처참히 부서진 결말,

뒷걸음치다가 쥐 아니라 지갑을 밟는 행운(그것도 분실했던),

배를 한번 째서 들여다 보고싶을 정도로 복받은 놈,

널어 말린 오징어 보다 박복한 년...



자신의 삶이 가치가 넘치는 삶이라면 가치가 있는대로,

가치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무의미한 삶이라면 그 무의미함 그대로가 나의 <입증>이다.

 

그러게 사람은 무한대로 외로운 존재이고

동시에 무한대로 외롭지 않은 존재이기도 하다.

'나'는 언제나 70억 분의 1이지만

언제나 70억 분의 1의 '나'를 가지고 있는 거니까.

...

몇 해 전, 청춘을 다 해 공들였던 탑이 와르르 무너진 일이 있었다.

그냥 무너진 게 아니라 무너진 돌더미에 내가 깔려 버렸고 지나가던 똥개가 거기다 오줌을 싸고

나더러 노상방뇨라고 뒤집어 씌우기까지 했던 것.

(돌이켜 보면 참 머리좋은 똥개였던 거 같아~)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방구석에 쳐박혀 하늘에 물었다.

"아니 무슨 시츄에이션이 이렇답니까? 어떻게 이런 각본없는 드라마가 써지냐고요?

내가 무슨 업척을 지었기에 이렇게 완벽하게 망가진답니까?"

그렇게 몇시간 쯤 새벽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이런 직감이 드는 것이었다.

"그게 바로 너다. 그 말도 안 되는 상황. 그것이 너의 입증이다."

아아...오 예!

그때 <입증>이라는 한마디의 받아드림으로 얻게 되었던 거짓말 같은 안도감...

딱 그 한방으로 기분이 지옥에서 지상으로... 지상에서 활주로로 활주로에서 트랩으로...

그 한방으로 순식간에 얻게 되는 내 존재감...



70억분의 1의 경이로움에 대하여!

(위 사진은 배우 정우성.

정우성도 저리 생긴 때깔이나 홀로 산 속에서 저 폼으로 서 있는 거나 다 자기 <입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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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합장블로그주인
딱히 규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 무엇에 속해 있으면서도 속해 있지 않고 뭐라 이름 붙이기도 힘든 사람.
예컨데 사진심리학자 신수진 선생의 경우,
서툴게 화장을 한 여고생을 모델로 찍은 오형근 작가의 작품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중간인이며 경계인이다."
그가 말한 중간인, 경계인... 여자지만 아직은 여자가 아니고 소녀지만 소녀를 넘어선...

한데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만의 중간성,경계성을 지니고 있으리라 본다.
아무리 강단 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가 명료한 자라도,
보이지 않지만 그만의 중간성.
그런데 그 중간성이란 게 범위가 깊을 때는 사람을 미치게 할 것이다.
가령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성성이 맞는 하리수 이전의 하리수 같은 경우까지 갈 것도 없이
'학생'이라는 타이틀로 살아가나 공부가 싫은 경우라든지
명색이 부모인데 부모 대접을 아예 못 받고 산다든지
이혼을 했는데도 아이 양육 등의 이유로 함께 사는 경우라든지... 등등
그처럼 중간에 낀 '중간인'이자 '경계인'본인들은 마치 몸 어딘가가 가렵긴 한데
그 정확한 위치를 모르는 것처럼 자신의 모호함 자체가 괴로울 것이다.
물론 그러한 중간성을 오히려 즐기며 무아적 터득의 발판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는 중간성이란 마치 중도의 경지와도 같은 중간성이 아니라
인생 어딘가에 비극으로 퍼져 있는 중간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중간인,경계인들을 좋아한다.
그들 자신의 혼란,혼돈,어쩌면 미쳐가는지도 모를 그 평온의 상태가
대화를 통해 드러나고 그런 상태를 서로 지적해서 가려내 가는 과정이란 너무나 신비롭고도 뜻깊다.
왜냐면 나 역시도 누구나처럼 그런 중간성과 경계성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래서 고통스럽고도 재밌는 존재다.

그리고 그 어떤 중간인이라도 70억분의 1을 입증하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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