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는 사실 그렇게 가난하지 않았다; 가난해서 자살한 게 아니고, 사회적으로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을 10여년간 후원해줬던 동생 테오에게도 미안해서 죽은 것

 https://blog.naver.com/nuctom/220477035612

 

많은 분들이 빈센트 반 고흐가 작품을 평생 단 한 점밖에 못 팔아서 수익이 거의 없었고 동생 테오가 보내준 용돈으로 살아야 했기 때문에 돈이 너무 너무 부족해서 밥도 굶고 개고생을 하다가 정신병도 찾아오고 결국 자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거 잘못 내려온 전설입니다! 일종의 빈센트 반 고흐 위인 만들기의 일종이라고 해야 할까요?

빈센트 반 고흐는 전업 화가가 된 이후 동생 테오 반 고흐가 생활비를 보내줬고 자기가 벌은 돈이라고는 작품 판매 단 1번 밖에 없습니다. 드로잉을 몇 점 팔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드로잉은 값이 얼마 안 나갔기 때문에 담배 몇 갑 사고 끝났을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빈센트 반 고흐의 전업화가 시절만 알고 있죠. 평범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37년 인생 중에 마지막 10년은 전업화가, 유소년기 14년, 목사가 되겠다고 공부하던 시절이 약 3년, 이리저리 방황하고 서점에서 아르바이트하고 등등 약 3년. 그럼 약 7년이 남습니다. 이때가 바로 빈센트 반 고흐가 나름 잘나가는 미술품 딜러였을 때였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첫 월급이 50 길더, 지금 우리 돈으로 약 55만 원 정도 됩니다. 16살 소년의 첫 월급으로 이 정도면 나쁘진 않죠? 반 고흐가 잘 벌 때는 아버지의 수익의 2배를 넘게 벌었습니다.

하지만 반 고흐는 전업화가의 길에 들어서면서부터 동생 테오 반 고흐가 생활비를 보내줬습니다.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는 그 대가로 작품을 보내줬습니다. 안 팔려서 그렇지만.

반 고흐의 편지, 일기에 얼마가 오갔는지 기록이 남아있고 동생 테오의 통장 거래 내역도 남아있습니다. 게다가 위에 50 길더 = 약 100 프랑 = 약 55만 원, 환율 변환 가능합니다. 그럼 우리가 알고 있는 쫄쫄 굶다 미쳐버린 전업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지갑 속에 얼마가 들어있었나 계산을 해보겠습니다.

물론 정확한 수치는 아니니까 논문에 넣으시거나 그럼 안 됩니다! 분명 빠진 기록도 있었을 것이고 환율과 물가 변동도 생각해야 하고요, 테오가 몰래 주머니에 쑤셔 넣어 주거나 편지에 동봉한 현금도 있었을 겁니다. 대략 이 정도 있었구나 하시면 됩니다.

1880년부터 1890년 7월까지 빈센트 반 고흐가 가족에게서, 물론 대부분이 테오의 통장에서 나왔지만, 받은 금액을 계산해 보니 약 17,500 프랑 정도 됩니다. 17,500 프랑이면 우리 돈으로 약 9천6백만 원이 조금 넘네요. 반올림해서 10년 동안 약 1억 원을 받았습니다. 그럼 연평균 1천만 원이네요. 월 83만 원 정도 있었다는 얘기고요. 83만 원 정도면 싱글 남성이 한 달 사는데 부족하진 않잖아요? 물론 많이 모자라긴 합니다만 반 고흐가 살았던 2층짜리 노란 집의 월세가 15 프랑, 약 8~9만 원이었으니 이 정도 물가로 계산하면 절대로 나쁘지 않은 금액 같습니다. 당시에는 인터넷이나 핸드폰도 없었으니 내야 할 각종 공과금도 그리 많진 않았을 거고요. 그리고 월 83만 원은 10년을 평균 낸 금액입니다. 더 많이 받았던 적도 있습니다. 그럼 연도별로 한번 보겠습니다.

1880년 - 아버지로부터 170 프랑 + 테오가 50 프랑, 합 220 프랑 = 약 120만 원

1881년 - 아버지로부터 95 길더 = 190 프랑 + 테오가 100 프랑/월 (4월부터) = 1,000 프랑 = 약 13백만 원

1882년 - 테오로부터 평균 150 프랑 x 12월 = 1,800 프랑 = 약 1천만 원

1883년 - 테오로부터 평균 150 프랑 x 12월 = 1,800 프랑 + 아버지가 70 프랑 = 약 1천3십만 원

1884년 - 테오로부터 평균 150 프랑 x 12월 = 1,800 프랑 + 테오의 보너스 100 프랑 = 약 1천5십만 원

1885년 - 테오로부터 평균 100 프랑 (8월까지) + 150 프랑 (4개월) = 1,400 프랑 = 770만 원

1886년 - 테오로부터 약 1,200 프랑 = 660만 원

1887년 - 테오로부터 약 1,200 프랑 = 660만 원

1888년 - 테오로부터 약 2,300 프랑 + 300 프랑 대출 + 300 프랑 보너스 = 2900 프랑 = 약 16백만 원

1889년 - 첫 5개월간 테오로부터 약 750 프랑 = 415만 원

1889년 5월 ~ 1890년 7월 - 테오로부터 3,310 프랑 - 18백만 원

Grand Total = 약 9천5만 5천 원, 물가 변동률 적용하면 약 9천6백만 원

한 달에 약 50여만 원으로 살았던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아주 나쁘진 않은 것 같죠?

그럼 테오는 도대체 얼마나 벌었기에 형 빈센트에게 이렇게 많은 돈을 보냈을까요?

테오의 월급명세서와 세금 납부 기록을 보면 1889년부터 1890년까지 세 전 기본 월급 333.35 프랑 + 작품 판매 인센티브였습니다. 기본 월급만 180만 원이 넘네요. 1890년에 신고된 연봉이 8,247 프랑 = 약 4천5백5십만 원. 그중에 1천8백만 원이 빈센트에게 갔고, 네덜란드에 계시는 어머님 생활비 보내고 어르신들 용돈 드리고 남은 돈 약 2천여만 원, 월 170여만 원으로 테오 반 고흐, 마누라 요한나 그리고 아기 빈센트가 비싼 파리 시내의 월세 아파트에서 살았습니다. 세금 떼고 나면 150여만 원 정도 되나요? 가장 많이 벌었을 때가.....

경제적 부담감으로 미쳐 자살해야 할 사람은 빈센트 반 고흐가 아니라 테오 반 고흐로 보이네요. 그래도 테오 반 고흐는 직장 생활 6년간 연봉을 두 배로 키워냈습니다. 그리고 빈센트가 더 오래 살았다면 더 열심히 해서 연봉을 높였을 거고요. 정말 열심히 살았던 사람 같습니다.

결국 빈센트 반 고흐는 경제적인 부담감으로 죽은 게 아니라 동생 테오에게 안 팔리는 작품만 주면서 자신 때문에 동생에게 안겨주는 경제적인 부담감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싶네요. 10년간 그린 900여 점의 회화 중에 단 한 점이 팔렸으니까요.

붉은 포도밭

캔버스에 유화

75 x 93 cm

1888

푸시킨 미술관, 러시아 모스크바

이 작품은 400 프랑 = 약 200여만 원에 팔렸습니다. 그 돈 어디로 갔을까요......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