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르네상스 기행 / 중세 이탈리아의 천재 편집인 마르초 마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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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초 마뇨는 세계를 변화시킨 매혹적인 책과 출판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으며, 그가 역점을 두고 묘사한 사람은 출판계의 전설로 추앙받는 ‘알도 마누치오’였다.

마누치오는 이탈리아 남부의 나폴리 근교에서 태어났다. 서른 살 무렵, 미란돌라의 영주 ‘피코 가문’의 가정교사와 주군의 비서를 겸했다. 피코 가문은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 주관하면서 유명해진 ‘플라톤 아카데미’의 일원이었던 피코델라 미란돌라(1463~1494) 후손이었다.

미란돌라는 1486년에 발표한 『인간의 존엄에 대한 연설』에서, 인간은 자기의 본성을 자유의지에 의해 결정한다는 새로운 인간관을 제시하면서 르네상스 사상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마누치오는 피코 집안의 장서를 정리하고 수집하는 일을 하면서, 출판업에 대한 인식과 노하우를 터득하게 되었다.

마흔한 살이 되던 해(1490년), 출판업을 시작하려고 베네치아로 왔다.

피렌체, 밀라노, 로마와 같은 곳으로 가지 않고 베네치아를 선택하게 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미 경제적 근대화를 달성한 베네치아는 출판업을 하기 적합한 토양이 갖추어져 있었다. 언론의 자유도 보장되어 있었다. 가톨릭은 베네치아의 채무국이었다. 엄청난 빚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간섭이나 탄압을 가할 수 없었다.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행해지던 이단재판이나 마녀재판이 베네치아에서는 용납되지 않았다.

우수한 기술자들도 베네치아로 모여들었다. 1453년 비잔틴 제국 멸망 이후, 많은 그리스 학자들이 망명을 왔기 때문에 이들이 가지고 온 고전 사본을 구하기가 쉬웠다.

마누치오의 등장으로 베네치아의 출판업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인쇄술을 발명한 독일을 훨씬 앞질렀다. 그가 설립한 ‘다국적 출판회사’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외국 문자의 인쇄가 가능했다. 라틴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랍어 코란, 히브리어 탈무드, 그리스어와 아르메니아어로 쓰인 책도 출간했다.

독보적인 서체도 발명했고, ‘문고판’책을 제작 판매하면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문고판은 값이 저렴하고 휴대하기가 편리했기 때문이었다. 1515년 66세의 나이로 마누치오가 사망했을 때, 조화 대신 그가 생전에 출판한 수많은 책으로 유해를 장식했다.

『책공장 베네치아』을 읽으면서 느낀 것과는 달리, 메르체이에 거리 상점에는 책과 관련이 없는 화려한 가면들, 알록달록한 유리제품, 아기자기한 전통공예품, 동화로 유명해진 피노키오가 진열되어 있었다. 리알토 다리를 둘러보고 산마르코 광장의 플로리안 카페로 갔다.

지금으로부터 333년 전(1683년)에 개업한 역사 깊은 카페라서,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다녀갔다는 사실을 이곳에 오기 전에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카페 앞 노천 의자에 앉아서 나는 그들의 이름을 떠올려 보았다. 루소, 스탕달, 바이런, 바그너, 찰스 디킨스, 하이네, 니체, 릴케, 괴테, 쇼펜하우어, 어니스트 헤밍웨이….

이처럼 명성을 떨친 유명 인사들은 플로니안 카페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심심풀이 구경삼아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기발한 착상이나 문학적 영감을 받으려고 왔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자생한 안티크리스트, 세계 최초로 나사렛 예수는 문명 디자이너였다고 말하면서 시대적 아픔을 참지 못하는 나하고, 방문 목적이 크게 다를 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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