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시골섬 뉴스서 손 떨던 아시아계 기자, AI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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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신문사, 방송에 AI 진행 2명 배치
미국서 첫 사례… 시청자 “끔직하다“ 혹평
신문업계 AI 의존도 높아져… 해고 정당화

인공지능(AI)으로 생성한 앵커 제임스(왼쪽)가 미국 하와이 카우아이 지역 신문 '더 가든 아일랜드(TGI)’가 최근 선보인 온라인 뉴스 방송을 진행하는 모습. TGI 인스타그램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카우아이섬 지역 신문 ‘더 가든 아일랜드(TGI)’가 선보인 온라인 뉴스 방송은 열대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넓은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남녀 앵커가 뉴스 진행을 맡았는데 어딘지 조금씩 어색했다.

중년 아시아계 남성인 제임스 기자는 눈을 깜박이지 않았고 손은 계속 떨었다. 젊은 빨간머리 여성 로즈는 ‘하나레이’ ‘TV’ 같은 단어를 발음하기 어려워 했다. 입은 말하는 단어와 계속 일치하지 않았다.

미 IT 전문매체 ‘와이어드’의 거드리 스크림조르 기자는 “그들의 행동에는 깊은 불쾌감을 주는 무언가가 있었다”고 최근 기사를 통해 감상을 전했다. TGI는 스크림조르 기자가 지난해 일했던 전 직장이기도 하다.

방송에서 제임스가 지역 호텔 파업의 영향을 묻자 로즈는 파업 중인 호텔의 목록만 나열했다. 제임스는 아파트 화재 소식을 전하면서 “화재 안전 조치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고만 할 뿐 어떤 조치를 말하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스크림조르 기자는 “여러분도 눈치챘겠지만 이들은 인간 기자가 아니다”라며 “이스라엘 회사 ‘칼레도’가 제작한 AI 아바타”라고 설명했다. 지원자 부족, 비용 문제 등으로 신규 채용이 어려운 언론사가 AI로 인력을 대체한 사례다.

첨단 AI 뉴스 도입… 시청자는 “악몽”
스크림조르 기자는 “내가 예전에 일했던 TGI는 기자를 채용하는 게 항상 어려웠다”며 “누군가가 떠나면 대체 인력을 채용하는 데 몇 달이 걸릴 수 있었고 채용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TGI 뉴스 방송에 출연한 새로운 기자들을 보고 ‘비록 좀 이상해 보였지만’ 어쨌든 채용했다는 사실에 기뻤다는 게 스크림조르 기자의 당시 심정이다.

인공지능(AI)으로 생성한 앵커 제임스(왼쪽)와 로즈가 미국 하와이 카우아이 지역 신문 '더 가든 아일랜드(TGI)’가 최근 선보인 온라인 뉴스 방송을 진행하는 모습. TGI 인스타그램

시청자 반응은 좋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에서 그 뉴스 게시물에는 ‘이건 그게(뉴스가) 아니다’ ‘언론은 지역사회와 가까이 있어야 한다’ ‘악몽이다’ 같은 댓글이 달렸다. 각 게시물 조회수는 1000~3000건 수준이었다.

이런 평가와 무관하게 TGI는 미국에서 최첨단 AI 방송 기술을 가장 처음 채택한 ‘선두주자’가 됐다.

제임스와 로즈 같은 칼레도 AI 아바타는 서로 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유사 기술과 구별된다. 로스앤젤레스(LA) 채널1 등이 AI 아바타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이들은 미리 작성된 기사를 읽는 수준이다.

칼레도가 제공하는 플랫폼은 사전에 작성된 뉴스 기사 여러 건을 분석해 제임스와 로즈와 같은 AI 호스트 간 대화를 포함해 실시간 방송으로 변환할 수 있다고 한다. 칼레도 공동 설립자 디나 샤트너는 “단순히 누군가가 기사를 읽는 것을 보는 건 지루하지만 사람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는 건 흥미롭다”고 말했다.

샤트너는 남편 모티와 함께 지난해 칼레도를 설립했다. 올해 초 북미에 진출한 칼레도는 내년에 수백개 지역 신문에 자사 AI 기술을 공급할 계획이다.

돈 없고 홈피도 부실하던 회사가 AI를?
스크림조르 기자는 TGI가 AI 방송 기술을 도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다며 “내가 지난해 기자로 일할 때 이 신문사는 최첨단 기술을 갖추고 있지 않았고 웹사이트도 엉성했던 데다 이런 투자를 할 재정적 여력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02년 창간한 TGI는 카우아이에서 가장 오래된 매체로 현재 유일한 일간지다. 지금 웹사이트에 등록된 소속 기자는 두어 명만 남아 있다. 이들이 인구 7만3000명 정도인 섬에서 일어나는 모든 기사를 다룬다는 얘기다.

TGI는 올해 초 모회사인 ‘오아후 퍼블리케이션’의 모회사 ‘블랙 프레스 미디어’가 카펜터 미디어 그룹에 인수되면서 그 아래로 들어갔다. 카펜터 미디어 그룹은 북미 전역에서 100개 넘는 지역 매체를 운영한다. TGI에 제임스와 로즈를 ‘공급’한 칼레도는 카펜터 산하 다른 신문들과도 유사한 AI 방송을 시작했다.

미국 하와이 카우아이 지역 신문 '더 가든 아일랜드(TGI)’의 웹사이트

AI로 만드는 스튜디오나 기자는 매체별 특징에 맞춘다. 카우아이에서는 하와이 해변을 연상시키는 스튜디오 배경을 깔고 섬 내 인구통계를 반영해 아시아계 아바타를 선택했다고 한다. 다른 신문사에서는 실제 기자의 얼굴을 스캔해 아바타를 만들기도 한다.

제임스와 로즈에게는 하와이 원주민 발음도 훈련시켰지만 제대로 따라하지는 못했다. 스크림조르 기자가 본 3개 방송에서 AI 생성 기자들은 대부분의 하와이 단어를 발음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예를 들어 로즈는 집을 의미하는 ‘hale(하레이)’를 ‘hail(헤일)’이라고 읽었다.

높아지는 AI 의존도… 새로운 시도 좋지만
신문 산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점점 더 많은 신문사가 AI에 의존하는 추세다. 기자들이 조사 과정에서 챗GPT를 활용하고, 일부 매체는 기사 상단에 AI가 정리해준 요점을 추가하고 있다. 전체 기사를 AI가 작성하는 사례도 이제는 적지 않다. 이런 환경이 조성되면서 언론사는 신규 고용 축소 및 중단이나 구조조정으로 인력을 줄여가고 있다.

스크림조르 기자는 “IT전문매체 기즈모도 같은 곳에서는 AI 도입이 추가 해고의 정당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며 “이렇게 계속되는 혼란이 뉴스에 대한 신뢰성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미지수”라고 해설했다.

칼레도는 자사 AI가 기자의 기존 업무를 대체하지 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하지 않았던 일만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TGI의 경우 제임스와 로즈가 등장하기 전까지 영상 뉴스를 운영하지 않았다. 각 방송은 진행자가 AI라는 공개 문구로 시작해 시청자가 혼동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돈이 추가로 들지만 방송에 붙는 광고로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스크림조르 기자는 “이 기술은 작은 지역 뉴스룸이 원래라면 만들 수 없는 실시간 방송을 제작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며 “이는 광고 기회를 열어주고 기사보다 비디오를 더 자주 시청하는 젊은 층을 유인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현장 못 가는 AI 기자… ‘언캐니 밸리’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컨벤션 센터에서 대선 토론 후 기자들이 공화당 부통령 후보 JD 밴스를 취재하는 모습. UPI연합뉴스

문제는 시청자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다. 초기 반응만 보면 카우아이 지역 시청자는 대체로 제임스와 로즈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한 주민은 “끔찍하다”며 “지인 중에 이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진행자들 간 대화와 중간에 삽입되는 광고 때문에 방송으로 뉴스를 확인하는 게 기사를 읽는 것보다 오래 걸린다는 점을 불편해하는 지역 시청자도 있었다.

옥스퍼드대학 펠릭스 사이먼 연구원은 AI가 미디어에서 ‘언캐니 밸리 효과(Uncanny Valley effect)’를 일으킬 수 있다고 와이어드에 설명했다. ‘불쾌한 골짜기 효과’로 해석할 수 있는 현상은 인간이 로봇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 AI 등에서 인간과 흡사하지만 완벽히 같지는 않은 모습을 볼 때 거부감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한 전직 TGI 기자는 신문사가 인간 기자가 아니라 AI 방송에 투자하기로 한 결정이 ‘역겹다’고 비판했다. 특히 유색인종 공동체에서는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이건 지역사회에서 직접 활동하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제임스 AI봇과 대화할 수는 없다”며 “그는 행사에 나타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텅 빈 뉴스룸, 지역사회 신뢰 못 얻어
지역 언론은 AI 기자 도입 여부를 떠나 이미 지역사회와 신뢰를 구축하기 어려운 처지다. 인력 축소로 뉴스룸이 텅 비어버리다시피 하면서 시청자와 접촉하며 유대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크림조르 기자는 “카우아이에서 특히 그렇다”며 “이곳은 본토에서 온 편집자와 기자들로 자주 채워지는데 그들은 주민들만큼 섬을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서 온 기자들은 높은 생할비와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 때문에 대부분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고 한다. 스크림조르 기자는 “실망스러운 순환 구조”라며 “제 생각에 유일한 해결책은 뉴스룸 직원들에게 재투자해 그들이 서비스하는 지역사회에서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20525119&code=61131111&stg=ws_r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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