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의 아이러니 -1888년, 영국을 떠들석하게 했던 런던의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는 왠만한 사회운동가보다 더 많은 긍정적 영향을 세상에 끼쳤다: 화이트해츨 빈민가의 비참한 모습을 세상에 널리 알렸고, 과학 추리 수사기법을 발전시켰으며, 추리/미스테리/스릴러/범죄 장르 예술을 발전시켰다

 

9. 영향[편집]

살인마 본인의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의외의 영향으로 화이트채플 빈민가의 비참한 삶의 모습이 온 세상에 알려지며 빈민구제의 계기가 되었다. 이를 두고 조지 버나드 쇼는 "그는 어떤 사회개혁가보다도 화이트채플 빈민가의 비참한 삶을 널리 알렸다."라고 평했다. 그를 사칭하거나 그의 범죄 수법을 따라하는 모방범죄가 극심하게 발생하다보니 화이트채플에서는 위에 언급된 살인 외에도 다수의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그의 정체를 밝혀내려는 연구가들의 노력 덕분에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과학 추리가 크게 발전했다. 아무나 잭 더 리퍼가 되는 것은 아닌지 대부분은 잡혀서 교수대 위로 올라갔으며 정말 정상참작이 되고 또 되어야 종신형을 선고받을 수 있었다.

시민들이 보낸 어처구니없는 조언이 들어 있거나 범인을 사칭한 편지들이 경찰과 언론사에 쏟아졌고, 선정적인 언론은 연쇄살인자에게 별명을 붙이기 시작해 리퍼와 비슷한 범죄를 저지르는 연쇄살인자들에게는 'XXX의 리퍼'라는 별명이 붙었다. 대표적으로 리스본 리퍼, 요크셔 리퍼 등을 들 수 있다. 또 이 살인범이 언론에 편지를 보낸 후 조디악 킬러같은 연쇄살인범들이 이를 따라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면 사형 판결을 받은 살인자들 중에서도 그와 살인 수법이 비슷한 자들 중심으로, 자신이 잭 더 리퍼임을 주장하면서 사형 집행을 연기시키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 모두 잭 더 리퍼가 아님이 드러나 곧바로 처형되었는데 사형이 집행될 때도 "내가 잭 더 리퍼다"라고 외치고 죽은 자도 있었다고.

결국 사건이 미제로 종결되며 범인을 특정하려는 노력에 빅토리아 시대 후기 사회사와 인물사 연구를 곁들인 리퍼학(ripperology)까지 생겨났다. 미제사건이라는 점이 오히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이후 여러 차례 만화, 뮤지컬, 영화, 게임 등에서 이야기 소재로 쓰이면서 사건 자체가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49][50] 지능범이 경찰과 언론을 농락하고 끊임없이 사람을 죽이면서도 결코 잡히지 않는다는, 미제사건을 다루는 고전적인 플롯은 이 사건을 모방한 것이며 리퍼라는 말 자체가 살인자를 의미하는 고유명사가 되었을 정도이고 동시대와 다음 세기의 살인자들에게까지 영감을 제공했다.

오죽하면 잭 더 리퍼 사건 이후 칼로 해체하거나 찌르는 형태를 주로 보이는 연쇄살인자들은 "리퍼형 연쇄살인자"로 분류되었다. 오늘날 발생하는 리퍼형 연쇄살인은 사건이 발생한 지역과 국가의 사회 구조, 산업 구조, 복지 정책 등을 가늠하는 지표로서 연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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