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주의적 관점에서 보는 셰익스피어 희극 베니스의 상인 속 샤일록 케릭터에 투영된 반유대주의 / 해체주의적 관점에서 보는 베니스의 상인의 사회경제학: 계약서에 엄격했던 베네치아에서 보듯 계약이행의 강제성은 유럽을 자본주의 선진국으로 만들었던 요소

 



결정적으로 침몰했다던 안토니오의 배는 멀쩡하게 돌아온다. 샤일록이 좀 지나치게 행동하기도 했지만 그의 입장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16]
  1. 평소에 안토니오라는 작자는 나를 매우 싫어하는 정도를 넘어 혐오한다. 내가 그와 그의 주변인들에게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단지 내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말이다![17]
  2. 그런데 그 작자가 나에게 돈을 빌리러 왔다. 정당한 이유도 없이 신나게 모욕할땐 언제고 필요하니깐 사정하는 모양새가 더욱 아니꼽다[18].
  3. 나는 이때다 싶어 그에게 담보를 걸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한 내로 갚지 못했을 경우에만 유효한 계약이므로 분명 나는 그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었다. 갚지도 못하게 기한을 지극히 짧게 준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안토니오 본인이 호언장담한 기간에 맞춰주었으며 살인적인 이자를 붙인것은 더더욱 아니였다. 그리고 계약 불이행으로 생길 리스크에 대한 설명도 충실히 하는 등 법적으로 지킬 도리는 다 지켰다.
  4. 배가 침몰했댄다! 골탕 좀 먹어봐라! 너 고소. 재판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는 분명한 시민의 권리로서 신청한 소송이다. 억지로 연 것이 아니다.[19]
  5. 그런데 갑자기 한 판사가 나타나더니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계약의 허점을 짚어내어 판결이 역전되었다.[20] 그렇게 빌려준 돈을 눈 뜨고 떼인 것도 서러운데, 한술 더 떠서 내 재산의 반을 몰수당한다.[21] 더불어 가문 대대로 지켜 온 종교도 불합리한 이유로 바꾸란다. (재판에서 졌다고 종교를 바꾸라는 것도 법이 있었나?)
  6. 그리고 침몰했다던 배는 다시 멀쩡히 돌아와서 안토니오 녀석은 희희낙락(...). 물론 조금이라도 갚아줄 리는 없다.
  7. 금이야 옥이야 하던 내 딸은 아비가 이렇게 힘들 때 위로는 못 되어줄망정 그렇게 싫어하던 기독교도에게 넘어가 버린다...[22]

물론 위의 내용들은 말 그대로 샤일록의 입장에서 적혀진 내용들이기 때문에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수준의 내용들도 상당수 있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우선 안토니오와 샤일록의 갈등은 안토니오가 일방적으로 샤일록을 멸시한 게 아니고, 샤일록 또한 이자를 받지 않고 돈을 빌려주는 안토니오를 증오했기 때문에 이권 문제도 어느 정도 얽혀있는 문제였다. 또 개종은 강제로 요구한 게 아니라 안토니오가 샤일록을 선처해주는 대신 내건 조건이니 만약 종교가 중요하다면 재산 몰수 등의 처벌을 감내하고 선처를 거부한다면 그만이다.[23]

요약하자면 원수로부터 (유대인이기 때문에) 정당치 못한 모욕과 멸시를 받고 살았다는 참작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살 1파운드 얘기 자체가 샤일록을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요소로, 인종차별과 반유대주의에 대한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샤일록이 완전히 억울한 인물이라고는 볼 수 없는 부분이다. 포셔의 사기극을 제외하더라도 샤일록이 살해 의도가 있더란 것은 어차피 명백히 드러난 것이라 설사 샤일록이 사기극을 눈치채고 재심을 요구해도 새 판사도 살해 의도가 있었다는 것에 포셔보다는 자비로운 판결을 내려줄지언정 그에 못지않은 중형을 내릴 것이다.

특히 당시와 오늘날의 시선이 달라진 건 대부업에 관한 것이다. 오늘날의 시선에서도 대부업이 선한 직업으로 인식되는 건 아니지만, 대부업자가 자기 입장에서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행위 자체는 정당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세익스피어의 시대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흔히 중세 교회의 대부업 금지가 유명하지만, 대부업 금지는 고전기 헬라스 철학에서도 이미 나타나는 유서깊은 견해이다.
이자를 붙여서 돈을 빌려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돈을 빌린 사람은 이자도 원금도 일절 갚지 않아도 됩니다.

-플라톤, 『법률』 742c, 김남두 등(정암학당) 역주
저리(低利)로 이자 놀이를 하는 기술(obolostatikē)[24]은 가장 정당하게(eulogōtata) 미움을 받게 되는데, 그 획득(ktēsis)이 돈이 고안된 바로 그 목적으로부터가 아니라 돈 그 자체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돈은 교환을 위해서 생겨난 것이지만, 이자(tokos)는 돈 자체의 양을 증대시키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서[25] 그것이 그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와 닮은 것은 정확하게는 자손이고, 이자는 돈으로부터 돈으로서[26]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화를 획득하는 모든 방식 중에서, 이것은 실제로 가장 자연에 어긋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1258b, 김재홍(정암학당) 역주
아리스토텔레스는 상업적 대부업을 금지했고, 플라톤은 빌린 돈의 원금까지 떼먹어도 된다고 가르쳤다. 중세인의 입장에서 보면, 성경, 그리스도교 교부, 유대교 랍비, 고전 헬라스 철학자들이 한 목소리로 대부업은 나쁘다고 가르치는 것이니, 당연히 대부업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좋을리가 만무했다.

세익스피어 시대에는 이런 가르침이 완화되었고, 이자를 받는 합법적 방법들은 있었으나, 채권자가 이득을 탐닉해선 안 된다(장 칼뱅, De Usuris, v.10)거나, 대부 기관의 이득이 아니라 유지를 위해서만 이자를 받을 수 있다(교황 레오 10세 1515년 칙서, Inter multiplices, 덴칭거 1442-1444)거나 하는 식의 제한이 붙어있었다. 즉 세익스피어 시대의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애초에 샤일록이 대부업으로 이득에 탐닉한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문제가 있는 것이고, 이것이 현대와의 차이점이다.[27]

대부분의 미국 학교에서 이 책에 대해 가르칠 때는 당대의 인종차별주의의 희생자인 샤일록 및 그 당시 유럽 상황에 주목한다. 미국 본토에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있으며 이들이 경제와 정치 및 여러가지를 꽉 좌우하기에 그렇단 소리도 맞지만 그 이전에 미국이란 나라 자체가 인종차별로 온갖 험한 일들을 겪은 역사가 있는지라 이런 인종 문제에 민감해서 그런 것도 있다. 둘 다 정답이다.

하지만 한국에는 예전에 대부분은 이것을 '교훈용 동화'랍시고 샤일록을 더더욱 철저히 나쁜 녀석으로 각색하는 버전도 존재한다. 우선 안토니오와 샤일록을 생면부지의 인물로 만드는 것은 물론[28] 아예 시작부터 '샤일록 = 원래부터 이름난 개갞기'로 깔아놓고 시작하는 버전도 많다. 문제는 이런 버전들은 기이하게도 샤일록이 유대인이란 점은 꼭 짚고 넘어간다. 즉 주인공이 안토니오와 샤일록의 민족이 다르다는 점을 내세워서 샤일록의 악역성을 더 강화하려고 한 것 같으나, 자칫하면 특정 민족을 멸시하는 인종차별 풍습을 어린 아이들에게 당연하다는듯이 인식시켜 버릴수도 있다는 점에서 좋다고 볼 수 없다.

그래도 원본을 가지고 진지한 시점으로 접근한 작품도 아주 없진 않은데, 계명대학교 출판사에서 교양과목 교재로 낸 <베니스의 상인>은 샤일록에 더 주목한다. 대사마다 각주를 달아 샤일록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으며 반유대주의를 깐다. 2010년대 기준에 나오는 책에서는 샤일록의 입장을 옹호하는쪽으로 약간 수정이 됐지만..

제일 중요한것은 당시 유대인들은 영국에서 미움받아 추방되었기에 세익스피어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유대인을 만난 적이 없고 샤일록은 당시 기독교권에서 떠돌던 반유대주의적 편견으로 집필된 인물이었다는 점이다.[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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