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에 의해 DNA가 변화한다는 라마르크는 틀렸지만, 환경이 DNA에 영향을 끼친다는 후성유전학의 연구는 맞다; 센트럴 도그마 (유전정보의 방향이 DNA에서 RNA로, RNA에서 단백질로 진행된다는 원리)가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것; 프로그램 자체를 바꾸진 않아도, on/off에 영향을 줄 수는 있다; 동물 실험 결과 부모의 '경험'이나 '학습'에 새끼들이 영향을 받았다; 부모가 느끼는 불안은 스트레스 호르몬 수용체에 후성학적 변화를 일으키고, 이것은 후세의 자손들에게 전달되어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2010년 타임지 표지 - DNA가 당신의 운명은 아니다
후손에게 전달되는 공포의 기억
아래 발췌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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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를 대상으로 실시된 동물실험 결과에 의하면, 특정 공포는 후손에게 - 최소한 2세대 동안 - 전달될 수 있다고 한다(참고논문 1). 저자들은 이와 유사한 현상이 인간의 불안과 탐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이번 연구결과를 의심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통념에 따르면, 후손에게 전달되는 생물학적 정보의 유일한 원천은 「DNA에 포함된 유전자 염기서열」이다. DNA에 일어난 무작위 돌연변이가 생존에 유리할 경우, 해당 생물체는 환경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지만(자연선택), 이는 오랜 세대에 걸쳐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일부 과학자들은 "환경요인도 후성학적 변화를 통해 - 염기서열의 변동 없이 - 유전자 발현에 신속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예컨대, 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40년대에 네덜란드인들은 지독한 기근에 시달렸는데(Dutch Hunger Winter), 이때 엄마의 뱃속에 있던 아기들은 나중에 성인이 되어 - 아마도 관련 유전자에 후성학적 변화가 일어나 - 당뇨병, 심장질환 등의 질병에 걸릴 위험이 증가했다고 한다(참고논문 2). 그러나 후성학적 변화는 특정 과정(예: 발육, 여성의 X 염색체 중 하나가 불활성화되는 바소체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것이 특정 행동의 유전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도시빈민들은 약물중독, 정신신경질환 등을 반복적으로 경험할 뿐만 아니라, 이것이 자녀들에게 대물림되는 경향이 있다. 미국 에모리 대학교의 케리 레슬러 교수(신경생물학/정신과학)가 이끄는 연구진은 도시 빈민층을 대상으로 연구를 해오던 중 후성학적 변화의 유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도시 빈민들에게 일어나는 이 같은 부정적 현상은 대를 이어 반복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깨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연구진은 말했다.
인간에게 나타나는 행동변화에 대해 생물학적 원인을 찾는 것은 매우 까다롭다. 그래서 레슬러 교수는 동료 브라이언 디아스 교수와 함께, 아세토페논(acetophenone: 체리, 아몬드 향이 나는 화합물) 냄새를 맡으면 공포를 느끼도록 조건화된 실험쥐를 실험대상으로 선택했다. (두 사람은 작은 방에 아세토페톤 냄새를 피운 다음, 수컷 마우스에게 약간의 전기자극을 줬다. 그리하여 이 마우스들은 아세토페논 냄새를 통증과 결부시키게 되었고, 종국에는 전기자극 없이 아세토페논 냄새만 풍겨도 온몸을 부르르 떨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공포의 기억`이 새끼들에게 대물림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연구진이 12월 1일자 Nature Neuroscience(온라인판)에 기고한 논문에 의하면, 조건화된 마우스의 새끼들은 - 아세토페논의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 아세토페논 냄새만 맡으면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고 한다. 나아가 이 같은 `공포의 대물림`은 3대째(손자)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문제의 마우스에게서 정자를 채취하여 인공수정을 통해 탄생한 새끼 마우스도 마찬가지 공포를 겪었으며, 암컷 마우스를 대상으로 동일한 시험을 반복해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두 과학자가 이끄는 연구진은 관점을 바꾸어, 후각을 담당하는 뇌 부분의 구조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분석해 보았다. 분석 결과, 아세토페논에 민감한 마우스와 그 후손들은 대조군 마우스에 비해 특정 뉴런(냄새를 탐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수용체 단백질을 생성하는 뉴런)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아세토페논 탐지 뉴런으로부터 후각신호를 전달받아 이 신호를 뇌의 다른 부분(예: 공포 인식을 담당하는 부분)에 전달하는 구조체의 크기도 훨씬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정자세포의 유전자를 분석해 본 결과, 아세토페논을 감지하는 유전자의 메틸화 수준이 감소하여, 배아발생 과정에서 관련 후각수용체 유전자의 발현이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연구진은 "DNA의 메틸화가 `공포의 기억`을 유전시키는데 기여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DNA 메틸화란 일종의 가역적인 화학적 변형으로, DNA 염기서열을 바꾸지 않고서도 특정 유전자의 전사(transcription)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아니나 다를까,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결과를 놓고 극명한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다. 많은 과학자들이 이번 연구결과에 대해 경이로움을 표시하면서도, 후성학적 변화가 생식세포를 통해 자손에게 전달되는 메커니즘에 대해 궁금증을 숨기지 않고 있다. 예컨대 앨라배마 대학교의 데이비드 스웨트 교수(신경생물학)는 이번 연구를 가리켜 "지금껏 발표된 실험실연구 중에서, 획득형질이 후성학적 메커니즘을 통해 후손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엄밀하고 효과적으로 설명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스웨트 교수는 이번 연구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후성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티모티 베스터 교수(분자생물학)는 스웨트 교수와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DNA 메틸화는 아세토페논을 감지하는 단백질의 생성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낮다. 왜냐하면 메틸화에 의해 제어되는 유전자의 대부분은 프로모터(DNA 시퀀스에서 유전자에 선행하는 부분) 지역에 메틸화가 일어나는데, 아세토페논을 감지하는 유전자는 프로모터 지역에 뉴클레오티드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 메틸화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트레이시 베일 교수(신경과학)는 "이번 연구의 저자들은 후천적 경험이 생식세포에 후성학적 표시를 남기고 이를 유지시키는 메커니즘을 밝혀야 한다. `인간의 생식세포는 가소성이 매우 크고, 환경변화에 대한 반응성이 크다`라고 대충 얼버무려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이상과 같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레슬러 교수와 디아스 교수의 신념은 확고하다. "인간의 경우, 행동과 관련된 후성학적 변화를 후손에게 물려준다. 예컨대 부모가 느끼는 불안은 스트레스 호르몬 수용체에 후성학적 변화를 일으키고, 이것은 후세의 자손들에게 전달되어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어서, 당분간 실험실에서 동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집중할 계획이다. 연구진의 당면과제는 `아세토페논 감수성이 얼마나 오랫동안(몇 세대 동안) 지속되며, 이 감수성을 제거하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타나 분자 메커니즘을 제시할 때까지, `후성학적 변화가 유전된다`는 사실에 대한 회의론은 사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며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두 사람은 말했다.
※ 참고논문
1. Dias, B. G. & Ressler, K. J. Nature Neurosci. http://dx.doi.org/10.1038/nn.3594 (2013).
2. Heijmans, B. T. et al. Proc. Natl Acad. Sci. USA 105, 17046?17049 (2008).
지금까지의 통념에 따르면, 후손에게 전달되는 생물학적 정보의 유일한 원천은 「DNA에 포함된 유전자 염기서열」이다. DNA에 일어난 무작위 돌연변이가 생존에 유리할 경우, 해당 생물체는 환경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지만(자연선택), 이는 오랜 세대에 걸쳐 서서히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일부 과학자들은 "환경요인도 후성학적 변화를 통해 - 염기서열의 변동 없이 - 유전자 발현에 신속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예컨대, 2차 세계대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40년대에 네덜란드인들은 지독한 기근에 시달렸는데(Dutch Hunger Winter), 이때 엄마의 뱃속에 있던 아기들은 나중에 성인이 되어 - 아마도 관련 유전자에 후성학적 변화가 일어나 - 당뇨병, 심장질환 등의 질병에 걸릴 위험이 증가했다고 한다(참고논문 2). 그러나 후성학적 변화는 특정 과정(예: 발육, 여성의 X 염색체 중 하나가 불활성화되는 바소체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것이 특정 행동의 유전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도시빈민들은 약물중독, 정신신경질환 등을 반복적으로 경험할 뿐만 아니라, 이것이 자녀들에게 대물림되는 경향이 있다. 미국 에모리 대학교의 케리 레슬러 교수(신경생물학/정신과학)가 이끄는 연구진은 도시 빈민층을 대상으로 연구를 해오던 중 후성학적 변화의 유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도시 빈민들에게 일어나는 이 같은 부정적 현상은 대를 이어 반복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깨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연구진은 말했다.
인간에게 나타나는 행동변화에 대해 생물학적 원인을 찾는 것은 매우 까다롭다. 그래서 레슬러 교수는 동료 브라이언 디아스 교수와 함께, 아세토페논(acetophenone: 체리, 아몬드 향이 나는 화합물) 냄새를 맡으면 공포를 느끼도록 조건화된 실험쥐를 실험대상으로 선택했다. (두 사람은 작은 방에 아세토페톤 냄새를 피운 다음, 수컷 마우스에게 약간의 전기자극을 줬다. 그리하여 이 마우스들은 아세토페논 냄새를 통증과 결부시키게 되었고, 종국에는 전기자극 없이 아세토페논 냄새만 풍겨도 온몸을 부르르 떨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공포의 기억`이 새끼들에게 대물림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연구진이 12월 1일자 Nature Neuroscience(온라인판)에 기고한 논문에 의하면, 조건화된 마우스의 새끼들은 - 아세토페논의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 아세토페논 냄새만 맡으면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고 한다. 나아가 이 같은 `공포의 대물림`은 3대째(손자)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문제의 마우스에게서 정자를 채취하여 인공수정을 통해 탄생한 새끼 마우스도 마찬가지 공포를 겪었으며, 암컷 마우스를 대상으로 동일한 시험을 반복해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두 과학자가 이끄는 연구진은 관점을 바꾸어, 후각을 담당하는 뇌 부분의 구조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분석해 보았다. 분석 결과, 아세토페논에 민감한 마우스와 그 후손들은 대조군 마우스에 비해 특정 뉴런(냄새를 탐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수용체 단백질을 생성하는 뉴런)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아세토페논 탐지 뉴런으로부터 후각신호를 전달받아 이 신호를 뇌의 다른 부분(예: 공포 인식을 담당하는 부분)에 전달하는 구조체의 크기도 훨씬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정자세포의 유전자를 분석해 본 결과, 아세토페논을 감지하는 유전자의 메틸화 수준이 감소하여, 배아발생 과정에서 관련 후각수용체 유전자의 발현이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연구진은 "DNA의 메틸화가 `공포의 기억`을 유전시키는데 기여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DNA 메틸화란 일종의 가역적인 화학적 변형으로, DNA 염기서열을 바꾸지 않고서도 특정 유전자의 전사(transcription)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아니나 다를까,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결과를 놓고 극명한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다. 많은 과학자들이 이번 연구결과에 대해 경이로움을 표시하면서도, 후성학적 변화가 생식세포를 통해 자손에게 전달되는 메커니즘에 대해 궁금증을 숨기지 않고 있다. 예컨대 앨라배마 대학교의 데이비드 스웨트 교수(신경생물학)는 이번 연구를 가리켜 "지금껏 발표된 실험실연구 중에서, 획득형질이 후성학적 메커니즘을 통해 후손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엄밀하고 효과적으로 설명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스웨트 교수는 이번 연구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후성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티모티 베스터 교수(분자생물학)는 스웨트 교수와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DNA 메틸화는 아세토페논을 감지하는 단백질의 생성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낮다. 왜냐하면 메틸화에 의해 제어되는 유전자의 대부분은 프로모터(DNA 시퀀스에서 유전자에 선행하는 부분) 지역에 메틸화가 일어나는데, 아세토페논을 감지하는 유전자는 프로모터 지역에 뉴클레오티드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 메틸화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트레이시 베일 교수(신경과학)는 "이번 연구의 저자들은 후천적 경험이 생식세포에 후성학적 표시를 남기고 이를 유지시키는 메커니즘을 밝혀야 한다. `인간의 생식세포는 가소성이 매우 크고, 환경변화에 대한 반응성이 크다`라고 대충 얼버무려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이상과 같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레슬러 교수와 디아스 교수의 신념은 확고하다. "인간의 경우, 행동과 관련된 후성학적 변화를 후손에게 물려준다. 예컨대 부모가 느끼는 불안은 스트레스 호르몬 수용체에 후성학적 변화를 일으키고, 이것은 후세의 자손들에게 전달되어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어서, 당분간 실험실에서 동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집중할 계획이다. 연구진의 당면과제는 `아세토페논 감수성이 얼마나 오랫동안(몇 세대 동안) 지속되며, 이 감수성을 제거하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타나 분자 메커니즘을 제시할 때까지, `후성학적 변화가 유전된다`는 사실에 대한 회의론은 사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며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두 사람은 말했다.
※ 참고논문
1. Dias, B. G. & Ressler, K. J. Nature Neurosci. http://dx.doi.org/10.1038/nn.3594 (2013).
2. Heijmans, B. T. et al. Proc. Natl Acad. Sci. USA 105, 17046?1704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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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ISTI 미리안 『글로벌동향브리핑』
http://mirian.kisti.re.kr/futuremonitor/view.jsp?record_no=242706&cont_c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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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k.co.kr/news/it/6649466
1990년대 ‘후성 연구학’ 두각…“라마르크의 주장 완전 틀린 것 아냐”
부모에게 물려 받지 않은 형질, 발현된 뒤 다음세대에 전해질 수 있어
부모에게 물려 받지 않은 형질, 발현된 뒤 다음세대에 전해질 수 있어
그가 죽고 30년이 지난 1859년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하면서 진화론이 태동했다. 다윈이 주장했던 ‘자연선택설’은 당시 학자들이 생각하기에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론이었다. 자연선택으로 특정 개체가 살아남고, 그 수가 종을 지배할 만큼 개체수를 늘리는데는 적어도 수 억년이 걸린다는 게 당시 물리학자들 주장이었다.
그런데 라마르크 이론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의 짧은 역사를 감안했을 때 진화를 설명하는데 안성맞춤이었다. 딸의 바람처럼 ‘용불용설(用不用說·획득한 형질의 유전)’이 다시 학계 관심을 받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거기까지였다. 유전자와 DNA가 발견되면서 용불용설은 역사 뒤안길로 사라졌다. 생물이 어떤 행위를 통해 얻은 특정한 형질은 유전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오른손 잡이 테니스 선수 오른 팔은 왼 팔보다 길지만 그 자손까지 오른 팔이 길게 태어나지는 않는 것과 같다. 과학적으로 용불용설은 틀린 이론으로 규정됐다. 생물의 진화는 ‘환경’ 보다는 ‘유전자’에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300년이 지났다. 세상이 다시 라마르크 볼 준비를 하고 있다. 그가 주창했던 용불용설은 틀렸다. 하지만 한 세대에 특정하게 나타난 형질이 대를 거쳐 유전될 수 있다는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 태동하면서 그의 개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후성유전학에 따르면 DNA 염기서열이 변하지 않아도 특정 형질이 나타나거나 발현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특정한 세대에 출현한 형질이 2~3세대 정도 대를 이어 유전될 수 있다. 라마르크 용불용설과 유사하다. 김용성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유전체연구소장은 “용불용설은 틀렸지만 후성유전학적 측면에서 특정 형질이 다음 세대에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며 “획득한 형질이 유전된다는 라마르크의 주장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후성유전학을 뒷받침하는 실험은 이미 다양하게 이뤄졌다. 2009년 학술지 ‘바이올로지리뷰’에 따르면 특정 화학물질에 노출된 초파리 후손은 13세대에 걸쳐 눈에서 뻣뻣한 털이 자라는 것이 확인됐다. 임신한 들쥐에 번식에 영향을 미치는 화학물질에 노출시키자 후손이 대대로 병에 걸려 태어나기도 했다.
후성유전학에 불을 지폈던 미국 워싱턴주립대 마이클 스키너 교수가 2005년 발표한 논문은 학계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임신한 쥐를 화학물질에 노출시켰을 때 태어난 수컷 새끼는 고환이 비정상적이고 정자도 허약한 상태였다. 이렇게 태어난 쥐들끼리 교배를 시켰더니 90% 이상의 3세대 새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됐다. 2세대 쥐들을 화학물질에 노출시키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의 논문은 조작으로 2009년 철회됐다가 2년 전, 같은 결과가 다시 발표되면서 학계 인정을 받았다.
지난해 1월 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도 비슷한 논문이 게재됐다. 수컷 생쥐를 ‘아세토페논’이라는 화학물질에 노출 시킬 때마다 발에 충격을 주는 실험을 반복했다. 이 쥐는 아세토페논 냄새만 맡아도 스트레스를 받는 반응을 보였는데, 정상적인 암컷 쥐와 교배를 시킨 뒤 태어난 새끼의 대다수도 아세토페논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런 현상은 새끼의 새끼에서도 공통적으로 관찰됐다. 특정 세대에 나타난 독특한 형질이 세대를 거쳐 발현된 셈이다.
사람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발표됐다. 1944년 9월 독일군은 네덜란드 북서부 지역을 지배하면서 식량봉쇄 조치를 내리는 바람에 이 지역 사람들은 하루에 1000kcal밖에 섭취를 못했다. 1945년 2월에는 580kcal까지 떨어졌다. 당시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출생 전 기근을 겪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비만, 고혈압, 당뇨병 등에 걸릴 확률이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전자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봤던 질병들 중 상당수가 특정 세대가 노출된 환경에 의해 발현됐다.
흡연도 DNA의 비정상적인 발현을 일으킬 수 있다. 남성 흡연자의 경우 비흡연자와 달리 정자에 있는 DNA가 비정상적으로 발현될 확률이 높다. 쥐 실험 결과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발현된 DNA는 세대를 거쳐 유전될 수 있으며 비만, 당뇨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낙농업이 발전하면서 유제품 수요가 늘고, 우유를 많이 마시게 된 민족은 어른이 된 뒤에도 락타아제 유전자 스위치가 꺼지지 않는 돌연변이를 지닌 구성원 수가 늘어난다. 낙농업이 발달한 영국과 북유럽 국가 주민들 유전적 구성을 살펴보면 이 돌연변이를 갖고 있는 비율이 90%를 넘는다. 우유를 마시는 습관이 없는 일본, 남부 아시아국가 성인들에게서 이 돌연변이가 발생할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
물론 후성 유전학과 라마르크가 주장한 용불용설은 엄밀히 따지면 다른 이야기다. 배기동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라마르크가 말한 유전은 행위에 의해 얻어진 형질이 후손에게 전달된다는 것”이라며 “후성유전학에서 말하는 환경이 유전자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과는 다르다”고 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후성유전학 연구가 시작되면서 비슷한 주장을 했던 라마르크의 이름이 다시 언급되고 있다. 한탄 속에 눈을 감았던 라마르크는 무덤 속에서 “내 말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잖아”라며 허리를 펴고 있지는 않을까. 아버지를 끝까지 믿었던 그의 딸 역시 여전히 외치고 있을지 모른다. “조금만 더 세월이 지나면, 아버지가 인정 받는 날이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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