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국제투기자본과 모건 스탠리 (feat. FINAiUS)

 


JP모건 - 그로버 클리블랜드 (민주당), 윌리엄 매킨리 (공화당) 지원.

JP모건 주니어 (잭 모건) - 듀폰과 연합해서 허버트 후버 (공화당) 지원. 이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민주당) 지원.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모건 때리기

- 글라스스티걸법 (*그러나 실효는 없었다고 본다; 보여주기식?)으로 JP모건 상업은행과 모건스탠리 투자은행으로 분리됨

- 듀폰과 모건 비판; 1929년 대공황 범인으로 모건을 지목


그러나 제2차 대전 때 모건에게 5 billion dollars 투자를 받고 전쟁을 수행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병싄색히.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은 실패한 정책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만이 미국을 경제위기로부터 구했다. 1938년 루즈벨트 second term. 17.2% unemployed . 1929년보다 더 심했다.

 

국제유태자본은 1907년 공황 등으로 연방준비은행을 따냈고, 1929년 대공황으로 미국 경제를 거의 완벽하게 장악했다. 그러나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공황 이후 모건은 총격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민중의 분노는 국제유태자본에게 쏠렸다. 이를 막기 위해, 똘마니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이다. 루즈벨트는 뉴딜을 내세웠지만, 그 자신도 전혀 쓸모없다고 여겼다. 그처럼 민중의 눈과 입을 가려야 했다. 해서, 나온 것이 ‘글래스-스티걸 법’이다. 이 법에 의해 투자은행은 유가증권 인수와 매매업무로 영역이 제한됐다.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시킨 것이다. 투자은행의 투자 실패로 인해 상업은행까지 피해를 보았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은행에서 예금한 돈을 찾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굴리는 시민들이니 이를 공황의 원인으로까지 확대시킨 것이겠다. 그러나 원인은 오직 국제유태자본이다. 그들은 대공황을 일으킬 목적으로 그 이전 시기에 저리로 자금을 풀었고, 주가를 폭등시켰다. 그러다가 자금 회수를 급격히 실시하여 통화량을 팍 줄인 것이다. 공황이 발생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그뿐이랴. 금융공황을 산업공황, 농업공황으로 확장시키기 위해 공황 대책으로 통화량을 늘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통화량 감축정책을 밀어붙인 것이다. 해서, 글래스-스티걸 법으로 회사가 나누어진 JP모건이 피해를 보았나? 오히려 더 큰 이익을 보았을 뿐이다. 사정이 이렇지만, 이 법은 이차대전이라는 국제유태자본의 또 다른 쇼를 위해서, 그리고 냉전체제를 위해서 지속되어야 했다. 하지만 더 이상 고정환율제를 거부한 국제유태자본이 브레튼우드 체제를 파기하고, 유가를 폭등시키자 더 이상 이 법도 남겨둘 필요가 없었던 게다. 1975년 메이데이 이후 범위가 확대돼 왔고 1999년 ‘금융서비스 현대화법’ 제정으로 상업은행 업무까지도 다시 겸하는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

물론 이들 은행들은 도로 양편에 놓여있는 만큼 미국과 중국간의 거리보다 더 멀리 굉장히(!) 먼 거리를 유지한 덕분에 모건스탠리 투자은행은 설립 첫 해 매출 10억 달러로 미국증권시장의 24%를 점유해 버렸다. 몇 년 뒤 JP모간 2세의 차남인 헨리 모건(Henry S.Morgan)이 채권 전문가인 해롤드 스탠리(Harold Stanley)를 영입해 공동파트너를 맡으면서 은행이름을 모건스탠리로 바꾸었다.

http://blog.naver.com/miavenus/70034386138

 

국제투기자본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https://blog.naver.com/strategicvision/222298784724


1950년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정부 (공화당)와 결탁한 잭 모건.


1994년, 모건스탠리 SG워버그와 합병 고려했으나 결국 무산되고 워버그는 1995년에 UBS에 매각됨. 모건스탠리는 록펠러계, 워버그/UBS는 로스차일드계여서 무산된 듯.



모건스탠리 권력투쟁

1. Phil Purcell 1997년 모건스탠리와 딘위터 (디스카버리 카드 소유주)의 합병 이후로 딘위터의 CEO인 Phil Purcell이 모건스탠리의 CEO로 취임하면서 모건스탠리는 극심한 경영 분쟁을 낳게 된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건스탠리에 비해 딘위터는 어떤 면으로 보건 열세인 것이 사실이다. 헌데, 두 회사가 합병을 했는데, 그 대표가 딘위터 CEO가 된다? 국민은행이나 우리은행이나 산업은행이 지방은행이나 저축은행과 합병을 했는데, 그 대표가 국민은행이나 우리은행, 산업은행 출신이 아니라 지방은행이나 저축은행 대표가 하고, 지방은행, 저축은행 대표 인맥으로 채워진다? 물론 소수파 출신이 대표를 맡을 수 있다. 가령 유럽연합이 출범할 때 벨기에 출신 인사가 되는 것처럼 허다하다. 허나, 이때 소수파 대표란 어디까지나 얼굴마담, 바지사장인 경우인 게다. 헌데, 실세가 된다는 것은?  

2. John Mack: 레바논 이민자 출신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인 Mortage-backed securities를 개발하여 대박남.

부동산 담보를 mortgage securitizer인 Fannie, Freddie에게 매각하면, 이것이 다시 CMO, CDO 등으로 매각되어 버블을 형성하는 복잡한 구조.

2005년 39billion이었던 모건스탠리 revenue가 2007년에는 50B가 됨. 맥은 뻔뻔하게 자서전을 쓰기도 함.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가 터져 말짱 도로묵이 되고, Mack은 사임.

부시 정부 재무부장관이자 골드만삭스 출신인 폴 헨슨 덕분에 모건스탠리는 골드만삭스와 함께 investment bank에서 bank holding company로 업종을 바꿔 정부지원을 받고 기사회생함. 금융위기를 일으킨 주제에 피해를 본 것은 서민들 뿐.

3. James P. Gorman

2008년 금융위기 이후 wealth management에 초점

2017년: one of the most profitable years of Morgan Stanley


...


911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모건스탠리의 영업 비밀은? 위기대응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중 빠지지 않고 나오는 대목이 911 때의 모건스탠리다.

 

“모건스탠리가 남쪽 타워에 2,500명, 북쪽 타워에 1,000명의 직원이 근무하여 세계무역센터 사무실 면적의 10분의1 이상을 임대하고 있었다. 사고가 나자 뉴스에서는 모건스탠리가 가장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혹시 이 은행이 문을 닿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돌지만, 다음날 지나친 억측으로 드러났다. 여객기 충돌 직후, 모건스탠리는 곧바로 비상체제로 전환되었다. 1초가 급한 상황에서 직원들은 비상대피 책임자의 지휘아래 일사분란하게 빌딩을 빠져 나왔다. 그 결과 실종자는 단 15명에 불과했다. 긴급상황시 비상체제로 움직일 수 있는 “재난대책”을 사전에 수립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993년 세계무역센터 차량폭탄테러 사건 이후, 위기상황별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비상대피 모의훈련을 수시로 실시했다. 테러가 발생할 경우 비상연락체계를 유지하고 연락두절시 집합할 시간과 장소 등도 미리 정해 두었다. 사고직후 단 하루 만에 직원들 대부분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재난대책”에 따라 긴급상황 지휘본부를 설치하고 체계적이면서도 침착하게 대응했다. 모건스탠리는 다음 날 업무를 재개해서 세계를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9월12일 오전 9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전세계 모건스탠리 지점들은 정상적으로 문을 열고 직원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업무를 진행했다. 본사는 마침 비어있는 사무실이 있었던 미드타운으로 정해졌다. 퍼셀(Phillip J. Purcell) 회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모건스탠리는 정상적으로 운영됩니다. 월街는 건재하고 미국은 매우 강합니다”라고 말했다.“

http://blog.naver.com/teywoo/50001713161

 

헌데, 퍼셀이 네오콘 부시파라면, 네오콘 부시에게 911에 대해 사전 통보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 해서, 인드라는 다음과 같이 추론하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데이비드 록펄러계이다. 다만, 데이비드 록펠러 계 내부는 네오콘파와 뉴라이트파로 양분되어 있다. 해서, 퍼셀과 스티븐 로치는 네오콘 부시파이며, 존 맥과 리차드 버너는 뉴라이트파이다. 스티븐 로치 외에 네오콘 부시파는 엔디 시에가 있다. 

하나, 모건스탠리와 딘위터 합병 시기가 1997년이다. 이 시기는 클린턴 2기 정권이 출발한 시기이다. 헌데, 퍼셀이 축출되고, 존 맥이 돌아온 시기가 2005년이다. 부시 2기 정권이 출발한 시기이다. 국유본이 미국 정치권에서의 정권교체 준비는 2기 정권 2년차부터 시작한다면, 국유본 은행을 비롯한 경제 부문에서는 그보다 1년 빨리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둘, 부시 경제팀으로 퍼셀이 거론되었다.

“재무장관 후임으론 10명 이상이 물망에 오르고 있지만 월가 인물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찰스슈왑 증권의 창업자 찰스 슈왑 회장,필립 퍼셀 모건스탠리 회장,도널드 매론 페인웨버 전 회장,리차드 그라소 뉴욕증권 거래소 회장,프랭크 자브 전 나스닥 회장,리만브라더스를 이끌었던 스티브 슈와르쯔만 블랙스톤그룹 최고경영자등이 거론되고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15&aid=0000574897

이는 퍼셀이 네오콘 부시파였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엔론 그룹(2000년 미국 대기업 7위)이 분식 회계를 통한 2001년 파산을 하게 됩니다.



엔론 그룹의 파산 배경에는 , 무리한 차입을 통한 M&A 으로 재무 재표가 튼튼하지 못했으며, 이를 숨기기 위해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분식회계를 했습니다.


그런데 엔론 그룹의 파산의 진짜 배경은 , 록펠러 가문과 부시 가문의 대립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록펠러 가문의 차기 황제인 제이 록펠러의 골드만삭스가 2000년 전세계 석유 가스 상거래 시장의 30%이상의 거래를 담당하였습니다.


그런데, 1998년부터 엔론 그룹에서 가스 상거래와 석유 전자 상거래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면서,


전세계 가스 상거래에서 엔론 그룹이 차지하는비중이2000년 20%수준까지 상승을 했습니다.



엔론 그룹은 볼세비키 후손 기업으로 볼수 있으며, 2000년 당시 CEO는 케네스 레이 였는데요,


부시집안과는 선조 때부터 아주 친분이 두터운 사이 였습니다.



즉, 부시가문이 칼라일 그룹산하 방위 사업부와 헤지 펀드 사업부, 이외에 에너지 사업부를 키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엔론 파산에 주도한 은행은 당연히 시티은행, 메를린치, 골드만삭스 입니다. 그리고 아서 앤더선 컨설팅업체 까지.


시티은행이 엔론 그룹 대출관련 주거래 은행이었습니다.

 

...

 

모건스탠리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크게 두 가지 사건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삼킬 수 있게 도움을 준 것이 바로 네오콘 부시 퍼셀이라는 것이다. 네오콘 부시 - 김대중 - 김정일 - 담배공장 - 퍼셀인 게다. 햇볕정책의 이면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대소봉쇄반공정책인 케넌정책과 햇볕정책은 같다라고 말한 국유본 관계자의 말을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다른 하나는 모건스탠리의 대우빌딩 인수이다. 헌데, 이때 인수 주체는 네오콘 부시파 퍼셀이 아니라 뉴라이트 존 맥인 게다.

 

“특히 모건스탠리의 부동산 펀드가 손실을 입은 대표적인 투자처로 서울 스퀘어 (옛 대우빌딩)가 거론돼 눈길을 끈다. 신문에 따르면 모건스탠리의 부동산펀드(MSREF 6호)는 펀드 투자자산(NAV) 중 3분의 2에 달하는 규모인 54억 달러 가량의 손실을 기록했으며 이 내용을 다룬 보고서를 최근 투자자들에게 발송했다. 보고서의 주요 내용에는 특히 유럽과 일본에 투자했던 부동산 자산들은 대부분 가치를 상실한 것으로 보고했다. 대표적 부동산펀드 손실 사례로 서울역 앞에 위치한 서울 스퀘어 빌딩(옛 대우빌딩)에 대한 투자를 소개했는데, 모건스탠리의 6호 부동산펀드는 이 빌딩을 2007년 10억 달러를 투자해 지분을 샀지만 약 3억 5000만 달러 가량의 잠재손실이 예상되는 상황이라 한다. 모건스탠리는 이 빌딩에서 지분을 현금으로 빼내려 하고 있지만 9100만 달러 가량의 건물 보수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이 역시 어려운 진퇴양난에 처해있다고 신문은 밝혔다. 현재 모건스탠리는 부동산펀드 건물 매수를 위해 빌린 자금들의 이자율을 낮추거나 채무 구조조정 등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며, 100억 달러 규모의 새로운 사모형 부동산 투자 펀드를 조성하려는 작업도 고려해 왔다. 하지만 이 부동산펀드에 투자하기 위해 7500만 달러의 투자약정서를 썼던 캘리포니아의 한 연기금이 모건스탠리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지적하는 서한을 보내는 사건 등이 벌어지면서 이런 자구노력도 힘들어진 상태다. “

http://blog.naver.com/mkrpm/40104770469

 

세계적인 투자전문 그룹인 모건스탠리가 대우빌딩 구입으로 큰 낭패를 보았다? 이것이 말이 되나? 인드라는 여기서 강한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은 국유본이 모건스탠리를 통해 한국에 선물한 것이다.

 

“올해 들어서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상상해 볼 수 없었던 한반도에서의 극적인 대변화를 일으킬 그랜드플랜이 워싱턴에서 짜여지고 있다며 한국에서 살아도 안심이라는 사인을 보내왔다는 것이다. 맥도널드와 코카콜라 등 팍스아메리카, 나의 선봉에 선 기업들은 2007년말이나 늦어도 2008년 상반기에 대북진출을 하게 될 것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JP모건의 대대적인 한반도상륙작전도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JP모건은 미국자본주의 역사에서 금융자본의 상징이며, 미국대외정책과 같이 움직이는 상징적 존재다. JP모건과 혈족관계기업인 모건스탠리가 최근 대우빌딩을 매입하면서 치른 대가는 시세보다 30%비싼 9000억원대였다. 서울의 빌딩을 매입하려는 미국자본들은 대북진출을 포함한 한반도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6&aid=0000066993

 

2-6. 엇갈리는 행보 : 모건스탠리와 현대가와 효성가의 악연

 

하면, 현재 한국인으로 모건스탠리와 연이 닿아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정몽준 딸이 한때 모건스탠리 부사장을 맡았다고 한다. 허나, 큰 비중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중요한 인물은 정몽혁으로 보인다.

 

“정몽혁 전 사장은 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가장 아끼던 동생으로 알려진 故 정신영씨의 외아들이다. 정 전 사장의 아버지인 故 정신영씨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독일로 함부르크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1962년 지병으로 현지에서 사망했다. 정 전 사장이 불과두 살때였다. 당시 故 정주영 명예회장은 동생의 사망소식에 망연자실한 나날을 보냈을 정도로슬픔에 잠겼었다. 이후 故 정 명예회장은 故 정신영씨의 일가를 물신양면 챙겨줬고 정 명예회장 사망 이후에는 정몽구 회장과 정몽준 대표 등 사촌들이 도와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사장은 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도움으로 서른둘의 나이에 현대정유(현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로 취임해 경영일선에 나서 한화에너지를 인수하고 오일뱅크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등 정유와 석유화학업계에서 잘 나가던 경영인이었으나, 외환위기이후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었다. 이후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다 범현대가 사촌들의 도움으로 건설자재 납품회사인H애비뉴&컴퍼니라는 회사를 차려 잠시 경영을 하다, 정몽구 회장의 도움으로 현대차계열의 자동차 부품회사인 메티아(옛 아주금속)의 대표로 경영을 하고 있다.”

http://blog.naver.com/esuccess?Redirect=Log&logNo=40092242674

 

“현대종합상사 정몽혁 회장의 경영복귀를 도운 쪽도 정몽준 대표가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그룹이다. 워크아웃을 거쳐 매물로 나온 현대종합상사를 현대중공업이 현대가 품으로 되사온 것이다. 인수합병(M&A)을 통해 현대중공업의 일원이 된 현대종합상사는 조직정비를 마치고 올 1월부터 신사업 진출을 위해 현대중공업에서 ‘바이오자원팀’을 이전받아 운영하고 있다. 현대종합상사는 정 전 명예회장이 그룹을 키워온 터전이라는 의미에서 상징성도 크다. 이런 현대종합상사를 정몽준 대표 쪽에서 가져간 데 대해 세간에서는 ‘현대가 재건’ 측면에서 맏형인 정몽구 회장이나 며느리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관련지어 주시하고 있다.”

http://blog.naver.com/penmoim?Redirect=Log&logNo=60103800662

 

“IPIC는 지난 2007년말부터 모건스탠리를 매각주관사로 선정해 매각작업을 추진해 GS칼텍스, 호남석유화학, STX, 미국 코노코필립스 등 4개 업체로부터최종입찰제안서를 접수 받았었다. 현대중공업의 강한 반발에 부닥친 IPIC측은 계약 위반 사실이 없다며 맞섰다. 그러나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유한 2대 주주 현대중공업이 법률적 분쟁(legal dispute) 통지를 제기하면서 IPIC측의 매각작업은 중단됐다. 그리고 결국 ICC가 1년 8개월여 만에 현대중공업측의 손을 들어줘 이번 분쟁은 일단락 됐다.”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DC15&newsid=01380886589886048&DCD=A00205&OutLnkChk=Y

 

외환 위기 이후 현대계열사 상황을 보면 모건스탠리와 얽혀 있는 인연이 만만치 않다. 이를 통해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외환 위기를 통해 모건스탠리는 한국에서 부동산 사업, 기업 되팔기 등으로 큰 이문을 남겼고, 이러한 결과 현대 계열사가 흩어졌다. 허나, 2005년 퍼셀이 축출되고 존 맥이 모건스탠리로 복귀하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하여, 정몽준의 정치적 행보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퍼셀 네오콘 집권기에는 친일매국수구민주당 쪽에 있다가 존 맥 뉴라이트 집권기에는 한나라당으로 옮긴 것이다. 정몽준의 의지일까. 국유본의 의지일까. 후자로 추정된다.

 

“검찰에 따르면 조 사장은 2007년 1월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카운티 소재 발렌시아 빌라 2세대의 지분 12.5%를 취득한 뒤 취득금액 총 85만달러를 신고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한편 검찰은 지난해부터 효성 일가의 로스앤젤레스 소재 450만달러짜리 주택과 콘도 등 기존에 제기된 5건의 의혹을 포함, 총 7건에 대해 수사 중이다. 이들 부동산의 구입자금은 1265만달러(147여억원)에 달한다. ”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00525_0005275005&cID=10203&pID=10200

 

이명박과 조석래는 사돈지간이다. 헌데, 이명박 검찰이 사돈 집안을 건든다? 이것이 말이 되나? 안 된다. 그렇다. 기존의 관념을 깨야 한다. 이명박 검찰이 아니다. 국유본 검찰이다. 이명박 판사가 아니다. 국유본 판사다. 한명숙에게 무죄를 내린 것도, 조전혁에게 벌금형을 때린 것도, 조현준을 기소한 것도 모두 국유본이지, 이명박이 아니다.

 

하면, 왜 조현준인가. 조현준은 미국 예일대학과 일본 게이오대학원에서 정치학 졸업 후 일본 미쓰비시상사와 미국 모건스탠리에서 근무하다 2001년에 효성에 입사했다. 헌데, 조현준이 모건스탠리에서 근무한 시기가 퍼셀이 집권하던 시기인 게다.

 

결국 이 역시도 네오콘 부시파 때리기인 게다. 이명박 검찰이 네오콘 부시파를 때려잡고 있다? ㅎㅎㅎ. 아니다. 뉴라이트 검찰이 네오콘 부시파를 때려잡는 것이다. 그 네오콘 부시파가 설사 현직 대통령인 이명박 사돈 집안일지라도 말이다. 재미있는 세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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