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밖에 없는 스위스는 어떻게 부자 나라가 되었나? 스위스 시계에서 하이테크산업까지 by 지식 브런치 / 하이테크 건축 3대 거장 중 2명이 영국인인 이유?
프랑스 혁명 때 786명 스위스 용병 끝까지 저항하다 전멸함.
고국이 가난 하기에 스위스 용병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즉 조국과 후손들을 위해 전멸당하는 쪽이 선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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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유럽의 최빈국이었던 스위스
산만 국토의 70%. 호수는 5%. 경작지는 25%에 불과.
거기다 냉해가 심해 농사가 어렵다.
장남은 땅이라도 승계받지만, 차남 이하는 용병으로 먹고 살 길 마련함.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살다보니 스위스인의 폐활량은 컸고, 체격도 컸다.
또 국경에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와 수시로 싸우다 보니 전투력도 좋았다.
유럽 주요 전쟁에 모두 스위스 용병이 참여.
바티칸 경비대도 스위스 용병이 맡음.
(* 스위스처럼, 원래는 척박한 나라였던 싱가포르, 두바이, 한국, 이스라엘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생존의 돌파구를 마련할 것을 보면, '위기는 곧 기회'고, 세상 무슨 일이든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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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가 찾은 해법
1. 신뢰
2. 비싸다
산업을 특정 분야에 올인 (금융, 시계, 제약, 하이테크)해서 역량을 최대한 키워 비싸게 판다.
스위스는 이공계의 나라.
오늘날은 하이테크를 추구. 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소득을 갖고 있는 나라인 것. 1인당 국민소득 91,640.930 USD (물가 역시 살인적으로 비싸다.)
3. 중립국 지위 활용
- 나치 때
- 세계무역기구 (WTO), 국제적십자사, WHO, 국제노동기구, 국제결제은행 (BIS), 국제올림픽 위원회 (IOC), 국제축구연맹 (FIFA) 등 30여개 주요 국제기구와 250개 NGO 본사가 위치
4. 무역
- 루이 16세 때 위그노 추방당해 스위스로 와서 시계공이 되었다.
산맥이 험준한 나라이기에, 작고 가벼운 시계는 스위스가 무역을 하기에 딱 좋은 상품이었다.
18세기 제네바에는 2만명의 시계공이 있었다
- 알프스 산맥에서 염색업에 필요한 재료를 구하다, 점차 알프스 산맥에 진귀한 약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알약 제조산업으로 발전함. 그것이 노바티스, 로슈 같은 세계적 제약회사들의 시초.
- 섬유도 20세기 중반까지 스위스의 대표 무역상품. 스위스 용병들의 판로 개척으로 섬유, 시계 산업이 해외로 활발하게 수출되었다.
- 19세기에 스위스에 도로 및 철도망이 건설되며, 알프스 산맥 위주로 관광업이 발전했다.
- 위그너를 추방했던 프랑스 루이 16세는 체면 때문에 스위스에서 몰래 돈을 빌렸다. 스위스 은행 비밀주의의 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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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테크 건축 3대 거장 중 2명 (노먼 포스터, 리처드 로저스)이 영국인인 이유는?
증기기관차: 쇠를 깎아아서 만듦. 아주 오래전부터 영국인들은 철을 이용해 뭔가를 만드는건 전세계에서 no.1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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