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권에 대항했던 고려대 총장 김준엽: 일본 제국의 군인들은 사격 훈련을 한 답시고 근처를 지나가는 중국인 민간인들에게 총을 난사하기 일쑤였고, 검술 훈련을 할 땐 중국군 포로들을 데려다가 직접 찔러서 죽이는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회고록 <장정>에 따르면 츠카다 부대는 사격 훈련을 한 답시고 근처를 지나가는 중국인 민간인들에게 총을 난사하기 일쑤였고, 검술 훈련을 할 땐 중국군 포로들을 데려다가 직접 찔러서 죽이는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김준엽은 이러한 일본군의 행태에 치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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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선 실질적으로 독립운동에 기여한 게 거의 없다고 폄하 하지만,[22][23] 일본군에서 탈출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한국광복군 등 항일독립운동단체에 합류하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거는 일이다. 일본군에 걸리면 무조건 처형이고, 국민당이든 공산당이든 중국군에 잡혀도 일본 간첩으로 오인되면 죽은 목숨이다. 뭐 다행히 한복을 입으신 어머니와 찍은 사진 덕에 오해 없이 잘 끝났지만.[24][25][26] 이 사람은 탈출하기 위해 징집 전 나침반을 마련하여 갈 정도로 광복군에 합류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던 인물이다.

그가 탈출한 츠카다 부대는 조선인 탈영병이 나오지 않은 아주 혹독한 부대였는데, 김준엽은 그 부대에서 최초로 탈출에 성공한 조선인 병사였다.[27] 김준엽은 훗날 그의 회고록 "장정"에서 일본군 시절 작은 실수로 인해 상관으로부터 뺨을 맞은 후 상당한 모욕감을 느꼈다고 기술했다. 김준엽은 이 때가 태어나서 뺨을 처음으로 맞은 것이었다고 언급했다. 아마 일본군의 강제징용된 한국인 병사에 대한 차별적 대우와 가혹행위의 경험이 김준엽으로 하여금 츠카다 부대를 탈출하여 광복군에 합류하는 또 다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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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7일 별세했다. 사망 몇주 전에 하도 몸이 안 좋아서 그냥 링거 맞으러 병원 갔더니 1~2주의 최말기 시한부 폐암이었다고... 그의 대부분의 사진들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모습들이 많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살아생전에 골초이자 주당이었는데,[48] 그것이 결국 화근이 되었던 것.[49] 부음을 알리는 고대신문에 수록된 사진도 연초 한 개비를 들고 미소짓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90살 가까이 살았으니 확실히 장수했다. 본인의 장수 비결로 규칙적인 수면 패턴과 매일 하루에 무조건 물을 마시는 습관을 꼽았다. 물은 독립군 시절 거의 마시지 못한 탓에 신장에 결석이 생겨 아예 신장 한 쪽을 제거하는 수술까지 받아 그 뒤로 빠지지 않고 계속 마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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