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독교 환자들에게 특히 탁월한 춘성스님발 유머

 

1. 군사독재 시절, 춘성스님이 야간통행금지를 어기고 길을 걷고 있었다. 스님을 발견한 경찰이 정체를 물으니 중대장이라 답했고, 그게 무슨 뜻이냐 물으니 내가 중들의 대장이라며 무심한 듯 시크하게 지나갔다고 한다.


2. 지하철을 타던 중, 예수쟁이가 나타나 그에게 '죽은 부처 말고 부활한 예수를 믿으라'고 하자, 스님이 그들에게 부활이 뭔지 물었다. 이에 예수쟁이들은 부활이란 죽었다 살아나는 걸 뜻한다고 답했는데, 그러자 춘성스님은 "그렇다면 너희들은 밤에 죽었다가 아침에 살아나는 내 좆을 믿어라. 내가 살면서 죽었다 부활하는 것은 좆밖에 보지 못했다. 늬들이 말하는 "부활"이 죽었다 살아나는 것이라고 했으니 내 좆을 믿어라!"고 답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은 스님의 말에 빵터졌고, 예수쟁이들은 그 말에 당황해하며 그냥 가버렸다고 한다.만화


3. 지하철을 타던 중, 예수쟁이가 나타나 그에게 '죽은 부처 말고 부활한 예수를 믿으라'고 하자, 스님이 그들에게 부활이 뭔지 물었다. 이에 예수쟁이들은 부활이란 죽었다 살아나는 걸 뜻한다고 답했는데, 그러자 춘성스님은 "그렇다면 너희들은 밤에 죽었다가 아침에 살아나는 내 좆을 믿어라. 내가 살면서 죽었다 부활하는 것은 좆밖에 보지 못했다. 늬들이 말하는 "부활"이 죽었다 살아나는 것이라고 했으니 내 좆을 믿어라!"고 답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은 스님의 말에 빵터졌고, 예수쟁이들은 그 말에 당황해하며 그냥 가버렸다고 한다.만화


4. 이번엔 기차를 타던 중, 또 다른 예수쟁이가 나타나 어디에나 있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자, "하나님은 어디에나 있으면 똥통에도 있겠네."라고 답변하고 이에 흥분한 예수쟁이가 그럼 부처도 똥통에 있는거냐고 묻자, 스님은 "부처가 똥이고 똥이 부처인데 말하고 말게 뭐가 있냐?"[1]고 대답했다고 한다.


5. 산에서 나무를 베던 중 산림법 위반으로 경찰에게 잡혀가 조사를 받았는데[2] 경찰이 반말로 "이봐, 당신 본적이 어디야?"라고 묻자, 스님이 큰 소리로, 당당하게 "우리 엄마 보지다!"라고 답하자 당황한 경찰이 "아니, 당신 어디서 태어났냐고!?" 라고 다시 묻자, "우리 아빠 자지에서 났지"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경찰들이 왜 나무를 베었는지 묻자 "그야 산에 널부러진 나무를 가져와 요긴하게 쓸까 해서 그랬지."라고 말했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보슈, 경찰 양반. 이 우주는 감옥이야 감옥! 사람들을 실정법으로 다스리면 성자들도 죄인이 되는데 사람을 처벌하려면 평등하게 해야지. 자비와 선의로 행동한 사람들을 처벌하면 안돼. 시골의 중들이 시줏돈을 받아 거지에게 주면 그것도 공금횡령이 되지만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그건 죄가 아니야." 하고 장광설을 설파하였다. 이 말을 들은 경찰들은 기가 차 그냥 보냈다. 나중에 절에 돌아가서는 "아 글쎄 그놈들이 내 말귀를 못 알아들어"라고 웃었다고 한다.


6.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육영수 여사의 생일날 춘성 스님이 초청받아 법문을 하게 되었는데, 몇십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오늘은 육영수 보살께서 지 애미 보지에서 응아하고 나온 날입니다."라고 딱 한마디만 했다. 많은 사람들이 당황했지만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고, 박정희 대통령은 나중에 부인의 말을 듣고는 "정말 보기 드문 훌륭한 분이 나타나셨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4] 또 한번은 육영수에게 "우리 입이나 한번 맞추자"라고 했는데, 당황한 주위 사람들과 달리 대통령 부부는 당황한 기색도 보이지 않고 스님의 농담을 받아 깔깔 웃었다고 한다.
박정희 정부는 가지각색의 독재 행적, 인권 유린 및 언론 통제로 악명이 높았지만 정작 박정희 본인은 전주 사찰 당시 할매국밥 사건도 그렇고 언론에서 하는 게 아닌 측근들이 자기에게 농담처럼 던지는 말이나 모르는 사람이라도 자기 앞에서만 험한 농담을 하면 굉장히 잘 받아주었다고 한다. 본인부터가 농담을 좋아하기도 했고.

7. 어느 노파에게 노처녀 손녀가 있었는데, 하도 눈이 높아서 웬만한 남자는 성에도 차지 않았다. 이에 노파가 손녀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고자 스님에게 보냈는데, 스님이 대뜸 "네 그 좁은 것으로 내 큰 것이 들어가겠느냐"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손녀가 아연실색해서는 할머니에게 돌아가 "스님은 엉터리 땡초다"라고 하자, 노파가 "그럼 그렇지. 바늘구멍보다도 좁은 네 소견머리에 어찌 큰스님의 바다 같은 깨우침이 들어가겠느냐"라고 나무랐다고 한다. 즉, 손녀가 의미한 '좁은 것'과 '큰 것'은 성적인 의미이지만, 객관적으로는 그리 해석될 이유가 하등 없고 노파의 말처럼 좁은 것은 손녀의 이해력, 큰 것은 춘성스님의 가르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8. 어느 노파에게 노처녀 손녀가 있었는데, 하도 눈이 높아서 웬만한 남자는 성에도 차지 않았다. 이에 노파가 손녀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고자 스님에게 보냈는데, 스님이 대뜸 "네 그 좁은 것으로 내 큰 것이 들어가겠느냐"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손녀가 아연실색해서는 할머니에게 돌아가 "스님은 엉터리 땡초다"라고 하자, 노파가 "그럼 그렇지. 바늘구멍보다도 좁은 네 소견머리에 어찌 큰스님의 바다 같은 깨우침이 들어가겠느냐"라고 나무랐다고 한다. 즉, 손녀가 의미한 '좁은 것'과 '큰 것'은 성적인 의미이지만, 객관적으로는 그리 해석될 이유가 하등 없고 노파의 말처럼 좁은 것은 손녀의 이해력, 큰 것은 춘성스님의 가르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9. 사망이 가까워질 무렵 제자 승려들이 사리가 만약에 안 나오면 신도들이 실망할 텐데 어떡하냐고 묻자 스님은 "야 이 씨부랄 놈들아. 내가 불자 위해서 사냐?"고 말했다. 유명한 승려들 중 사리에 연연하지 말라고 생전에 훈계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런데 춘성 스님은 그걸 직설적인 욕으로 말한 셈이다.

10. 6.25 전쟁이 터지고 3일만에 수도 서울이 점령당했다. 너도 나도 살겠다고 피난 가기 바빴다. 스님들이나 수도자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조선인민군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논리로 점령지의 종교인들을 탄압하거나 학대하였기에 상좌승들 역시 살기 위해서 피난을 떠났다. 그러나 춘성 스님은 몇명의 상좌들과 수도자들을 데리고 의정부 망월사를 지켰다. 1953년 6.25 전쟁이 휴전하고 피난을 간 스님들이 되돌아왔지만 나 혼자 살겠다고 도망친 것이 죄스러워서 춘성 스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춘성 스님은 되돌아온 스님들에게 "야 이 개 좆같은 놈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는구나. 살아서 반갑다"라며 따뜻하게 맞았다. 한편 일부 스님들은 혼자 살겠다고 도망간 스님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된다고 했지만 춘성 스님은 언급하지 말라며 불문(不問)에 붙였고, 이후로 누구도 혼자 도망간 스님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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