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vs. 쩡칭훙 (장쩌민 최측근이자 현재 상하이방 대빵) / 밀려난 후진타오-리커창 공청단 계열 / 쩡칭훙이 발탁했으나, 여전히 시진핑 시대의 상무주석을 역임 중인 중국의 3대 책사 왕후닝 / 왕후닝, 류허, 왕치산은 국제투기자본 관련 인물들
* 지금은 시진핑 일당독재 체제지만, 2019년도만 해도, 홍콩의 경찰 및 조직폭력배 삼합회는 장쩌민파, 더 구체적으로는 한정 상무위원과 쩡칭홍 전 국가부주석의 관할이었다. 인민해방군은 시진핑 관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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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중국의 공식 권력 서열 2위인 리커창 총리가 최근 수해 지역인 충칭(重慶)시를 찾아가 진흙투성이가 된 고무장화를 신고 현장을 돌아보면서 주민들을 위로했다.
중국 인터넷에서 누리꾼들은 리 총리의 사진을 퍼 나르면서 '인민의 훌륭한 총리'라고 환호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평소 같으면 이런 모습을 대대적으로 선전했을 인민일보, 신화통신, 중국중앙(CC)TV를 포함한 핵심 관영매체들이 리 총리의 수해 지역 방문 행보 소식을 일제히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같은 시기, 관영 매체들이 안후이성 수해 지역 시찰 중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행보를 연일 열렬히 보도 중인 것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당내 권력 투쟁설이 다시 제기되는 모습이다.
◇ 사라진 리커창 보도…권력 이상 징후인가
23일 중국 국무원이 운영하는 인터넷 홈페이지인 정부망(政府網)에는 지난 20일부터 리 총리의 충칭행 소식과 함께 여러 장의 현장 사진이 공개됐다.
리 총리는 바닥에 진흙이 두껍게 쌓인 수몰 지역을 찾아가 주민들을 위로하는 한편 현지 중소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이들의 어려움을 직접 청취했다.
하지만 신화사 등 '3대 관영 매체'를 포함한 대부분 관영 매체는 이런 내용을 일절 보도하지 않고 있다.
대만 중앙통신사는 "리커창 총리가 20일 충칭 수해 지역을 방문해 재해 상황을 점검했는데도 인민일보, CCTV, 신화통신이 현재까지 일절 보도를 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지극히 이례적"이라며 "베이다이허 회의 이후 (중국 공산당) 내부의 권력 투쟁설이 재점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에서는 최고위급 지도자들에 관한 보도가 사라지거나 지연되는 현상이 '정치적 격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차기 최고 지도자의 자리를 놓고 당내 권력 투쟁이 치열하던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 주석 시절,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당서기의 동정 보도가 관행보다 하루나 이틀씩 더 늦어지더니 그가 끝내 낙마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다만 이번 리 총리의 수해 현장 방문 보도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낙마 가능성을 바로 속단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중국의 집단지도체제가 실질적으로 와해하고 권력이 시 주석 1인에게 완전히 쏠린 상황에서 거의 동시에 이뤄진 최고위 지도자들의 수해 현장 방문 보도가 '1인자'인 시 주석 위주로 이뤄지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또 정부망이 공개한 사진들을 보면, 리 총리의 이번 충칭시 방문 과정에서 시 주석의 측근이자 유력한 차기 최고 지도자 후보군에 속한 천민얼(陳敏爾) 충칭시 서기가 '정상적으로' 수행한 것으로 확인된다.
◇ '소외된 총리' 리커창…갈등설에 지속 노출
그럼에도 최근 중화권에서는 시 주석과 리 총리의 '권력 투쟁설', '불화설'이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모습이다. 리 총리의 낙마 같은 극단적 상황을 상정하지는 않더라도 리 총리가 권부 중심에서 소외되는 흐름은 비교적 선명해 보인다는 평가다.
실제로 시 주석 집권기 내내 리 총리는 시 주석에게 권한을 계속 내주면서 주변부로 밀려나는 모습을 보인다.
중국이 현대 집단지도 체제가 자리 잡은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 시절에는 총리가 경제를 중심으로 한 한 내치를 책임지는 자리로 인식됐지만 시 주석 시대에 접어들어서는 모든 정책 결정 권한이 최고 지도자와 그 측근들에게로 쏠리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 6월 리 총리는 코로나19 충격으로 어려움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편으로 단속 완화를 통해 노점상을 활성화하자고 주창하고 나서 중국 각 지역에서 지방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노점 바람'이 뜨겁게 일었다.
그러나 중국 관영 매체들이 돌연 노점 활성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서면서 '노점 경제'는 흐지부지됐고, 이를 주창했던 리 총리는 사실상 공개적인 수모를 당한 꼴이 됐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기자회견에서 리 총리가 말한 '6억 빈곤설'도 당내 불화설과 맞물려 크게 주목받았다.
당시 리 총리는 폐막식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며 "6억 명의 월수입은 겨우 1천 위안(약 17만원)밖에 안 되며, 1천 위안으로는 집세를 내기조차 힘들다"고 토로했다.
대외에 공개되지 않던 자국의 '치부'를 드러낸 리 총리의 발언은 시 주석이 선전해온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건설'에 대한 정면 반박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에서는 1년에 단 한 번 총리가 중국 안팎에 TV로 생방송되는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을 통해 '검열' 없이 자기 생각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날 그가 작심하고 이런 발언을 했다는 관측에 힘이 실렸다.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중국의 공식 권력 서열 2위인 리커창 총리가 최근 수해 지역인 충칭(重慶)시를 찾아가 진흙투성이가 된 고무장화를 신고 현장을 돌아보면서 주민들을 위로했다.
중국 인터넷에서 누리꾼들은 리 총리의 사진을 퍼 나르면서 '인민의 훌륭한 총리'라고 환호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평소 같으면 이런 모습을 대대적으로 선전했을 인민일보, 신화통신, 중국중앙(CC)TV를 포함한 핵심 관영매체들이 리 총리의 수해 지역 방문 행보 소식을 일제히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같은 시기, 관영 매체들이 안후이성 수해 지역 시찰 중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행보를 연일 열렬히 보도 중인 것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당내 권력 투쟁설이 다시 제기되는 모습이다.
◇ 사라진 리커창 보도…권력 이상 징후인가
23일 중국 국무원이 운영하는 인터넷 홈페이지인 정부망(政府網)에는 지난 20일부터 리 총리의 충칭행 소식과 함께 여러 장의 현장 사진이 공개됐다.
리 총리는 바닥에 진흙이 두껍게 쌓인 수몰 지역을 찾아가 주민들을 위로하는 한편 현지 중소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이들의 어려움을 직접 청취했다.
하지만 신화사 등 '3대 관영 매체'를 포함한 대부분 관영 매체는 이런 내용을 일절 보도하지 않고 있다.
대만 중앙통신사는 "리커창 총리가 20일 충칭 수해 지역을 방문해 재해 상황을 점검했는데도 인민일보, CCTV, 신화통신이 현재까지 일절 보도를 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지극히 이례적"이라며 "베이다이허 회의 이후 (중국 공산당) 내부의 권력 투쟁설이 재점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에서는 최고위급 지도자들에 관한 보도가 사라지거나 지연되는 현상이 '정치적 격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차기 최고 지도자의 자리를 놓고 당내 권력 투쟁이 치열하던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 주석 시절,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당서기의 동정 보도가 관행보다 하루나 이틀씩 더 늦어지더니 그가 끝내 낙마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다만 이번 리 총리의 수해 현장 방문 보도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낙마 가능성을 바로 속단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중국의 집단지도체제가 실질적으로 와해하고 권력이 시 주석 1인에게 완전히 쏠린 상황에서 거의 동시에 이뤄진 최고위 지도자들의 수해 현장 방문 보도가 '1인자'인 시 주석 위주로 이뤄지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또 정부망이 공개한 사진들을 보면, 리 총리의 이번 충칭시 방문 과정에서 시 주석의 측근이자 유력한 차기 최고 지도자 후보군에 속한 천민얼(陳敏爾) 충칭시 서기가 '정상적으로' 수행한 것으로 확인된다.
◇ '소외된 총리' 리커창…갈등설에 지속 노출
그럼에도 최근 중화권에서는 시 주석과 리 총리의 '권력 투쟁설', '불화설'이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모습이다. 리 총리의 낙마 같은 극단적 상황을 상정하지는 않더라도 리 총리가 권부 중심에서 소외되는 흐름은 비교적 선명해 보인다는 평가다.
실제로 시 주석 집권기 내내 리 총리는 시 주석에게 권한을 계속 내주면서 주변부로 밀려나는 모습을 보인다.
중국이 현대 집단지도 체제가 자리 잡은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 시절에는 총리가 경제를 중심으로 한 한 내치를 책임지는 자리로 인식됐지만 시 주석 시대에 접어들어서는 모든 정책 결정 권한이 최고 지도자와 그 측근들에게로 쏠리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 6월 리 총리는 코로나19 충격으로 어려움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편으로 단속 완화를 통해 노점상을 활성화하자고 주창하고 나서 중국 각 지역에서 지방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노점 바람'이 뜨겁게 일었다.
그러나 중국 관영 매체들이 돌연 노점 활성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서면서 '노점 경제'는 흐지부지됐고, 이를 주창했던 리 총리는 사실상 공개적인 수모를 당한 꼴이 됐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기자회견에서 리 총리가 말한 '6억 빈곤설'도 당내 불화설과 맞물려 크게 주목받았다.
당시 리 총리는 폐막식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며 "6억 명의 월수입은 겨우 1천 위안(약 17만원)밖에 안 되며, 1천 위안으로는 집세를 내기조차 힘들다"고 토로했다.
대외에 공개되지 않던 자국의 '치부'를 드러낸 리 총리의 발언은 시 주석이 선전해온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건설'에 대한 정면 반박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에서는 1년에 단 한 번 총리가 중국 안팎에 TV로 생방송되는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을 통해 '검열' 없이 자기 생각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날 그가 작심하고 이런 발언을 했다는 관측에 힘이 실렸다.
시진핑(习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아시아 순방이 끝났다. 대단히 성공적이었다는 게 중국 안팎의 공통된 평가다. 특히 미국 주류 매체들은 자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결과는 폄하하면서도 시 주석의 성과는 높게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이 시 주석을 빛나게 했다"라고까지 평했다. 이 같은 시 주석의 아시아 순방에서 자리에 없어 더욱 주목받은 인물이 있다.
바로 중국의 '3대 책사’라 불리는 왕후닝(王沪宁)이 그 주인공이다. 뉴욕타임스는 최근호에서 이번 시 주석의 아시아 순방 일정 곳곳에 왕후닝의 흔적이 있다며 “왕후닝이 배석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각본 그대로 진행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라고 평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4일 자 지면을 크게 할애해 올 63세의 왕후닝 이력과 생각을 상세히 소개했다. 그 가운데는 우리 역시 주목할 대목이 적지 않다.
먼저 왕후닝의 근본적 생각을 미국 중국 연구 기관들과 주변인들을 취재해 전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왕후닝은 일찍이 80년대 미국을 두 차례 방문했었다. 당시는 그가 마르크스 주의를 공부한 뒤 서방 정치사상을 공부해 나이 30세에 상하이(上海) 푸단(复旦) 대 교수가 된 뒤였다. 왕후닝의 미국 방문 당시 가졌던 생각을 훗날 ‘미국이 미국을 반대한다’는 책 속에 남겼다. 그는 그때 이미 “미국은 중국이 쫓아갈 모델이 아니다”라는 확신을 가졌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뉴욕타임스가 그의 제자 등을 취재한 결과, 당시 왕후닝은 이미 “서구 현대화는 물질적 풍요는 가져다줄 수 있지만, 인격의 품위를 높여주지는 않는다"라고 생각했다. 그는 80년대 말 상하이에서 ‘신권위주의’를 주장해 주목을 받았다.
왕후닝은 법학과 사상 전공의 이론가답게 논변에 뛰어났다. 한 번은 그가 그의 대학 제자들과 함께 싱가포르에서 열린 논변 대회에 참여해 대만 대표를 5 대 0의 점수로 누르고 완승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논쟁은 성선설과 성악설을 서로 주장하는 것이었는데, 왕후닝의 학생들은 성악설을 논증했다. 당시 그는 회초리를 상징적으로 교단에 세워놓고 학생들을 훈련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그가 학생들을 때린 적은 없다는 게 그의 제자들의 회고다.
중국의 대다수 지식인들이 개혁개방과 함께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에서 중국 발전의 답을 찾을 때 왕후닝은 전혀 다른 생각을 했다고 한다. 중국은 보다 강력한 지도력이 있어야 현대화를 더욱 효율적으로 이룰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민주주의는 현대화를 이루고 나서의 과제라는 것이다. 이것이 왕후닝의 신 권위주의 사상이다.
그는 89년 중국 천안문 사태를 앞두고 베이징(北京)과 상하이에서 번진 자유주의 운동에 거리를 둔다. 천안문 사태 직후 장쩌민(江泽民) 당시 상하이 당서기에게 발탁돼 정가에 발을 들이게 된다. 이후 장 전 주석과 함께 북경에서 정치 생활을 시작한다. 그가 맡은 역할은 중앙정책 연구실 주임으로 국가 정책을 수립하는 일이었다. 2002년 장 전 주석이 물러나고 후진타오(胡锦涛) 전 주석 밑에서도 국가 정책 수립과 관련한 일을 맡았다. 중앙정책 연구실 주임을 2대에 걸쳐 맡은 것이다. 그리고 시진핑 주석의 시대를 맞아 왕후닝이 역할을 더욱 두드러졌다. 신화통신의 시 주석 사진마저도 왕의 허가를 받은 뒤 찍었고, 발표됐다.
왕은 원칙에 대단히 철저한 인물이다. 중앙 정치 무대에서 일을 한 뒤 학자 시절 알던 미국의 친구들을 사적으로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2015년 미국 국무원에서 시진핑 주석을 위해 연 오찬 연회에서 왕후닝은 이전부터 잘 알고 있던 당시 미국 국가 안전 위원회 중국 담당 사무를 보고 있던 리버탈(Kenneth G. Liberthal)을 만난다. 리버탈이 반가워하며 “중국에서 가서 한번 보자” 인사를 하니, 왕은 “지금은 내가 중앙에서 일을 해 만나기 어렵다"라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시진핑의 중국이 어디로 갈지, 그 답은 왕후닝에게 달렸다는 게 뉴욕타임스의 분석이다.
중. 잘. 알. 미디어 해동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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