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훈 변호사의 신비 체험 - 송시열 관련

https://www.youtube.com/watch?v=dY1JfAYGyIc

 

 

 

 

 

정말 역사를 잘 알고 '역사덕후'라 하기에는...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해석하는 경향이 좀 보이시네요. 이를테면 안용복이 말한 죽도와 송도라는 것을 오늘날의 한일 독도 분쟁에 입각해서 울릉도와 독도로 단정해서 말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만기요람 군정편 해방 강원도>를 보면, "여지지에 이르기를 울릉, 우산은 모두 우산국 땅이며 우산은 왜인들이 말하는 송도이다"고 적혀 있는데, 만약 우산이 독도라면, [우산=독도=송도]라는 논리는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1881년에 고종이 이규원을 감찰사로 파견해서 울릉도 탐사를 지시했을 때 고종은 분명 우산과 송도를 서로 다른 것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울릉도 근방에 송도, 죽도, 우산도가 있다는데 서로간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라.” 또, 1899년 대한제국 지도를 보면 오늘날에도 동일한 명칭으로 불리는 죽서도의 위치에 우산이라고 표기되어 있죠. 대한제국의 지도에 입각해서 보면 [우산=죽서도=송도]가 됩니다. 19세기 후반까지 한반도에서는 우산에 대한 개념정리조차 제대로 안되었기 때문에, 당시 안용복이 말한 송도를 독도라고 단정해서 말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리고 '민족국가'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래 참조], 현대의 한국인들과 별 상관도 없는 조선시대 역사를 '조상의 역사'랍시고 세세하게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계사 전체의 흐름을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조선시대 한국어랑 오늘날의 한국어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할만큼 다르고, 현대의 한국인들과 과거 한반도에 살던 조선시대 사람들 역시 완전히 서로 다른 의식구조를 가진 집단입니다. 아예 다른 인종, 다른 민족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단순히 송시열이 조선시대 후기에 끼친 영향이 크고, 한반도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송시열을 공부해야 한다는 건 개논리이고, 어불성설입니다. 송시열을 아는 것과, 나폴레옹을 아는 것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딱히 없습니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는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하게 중요합니다. 오히려 세계가 하나가 된 오늘날에는 송시열 따위보다는 세계 역사 전체에 영향을 끼친, 다른 나라의 더 중요한 인물들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영국과 미국에서 산업화를 시작한 인물들이나 일본의 근대화를 배후에서 지원해준 영국과 미국의 자본가들을 이해하는 게 역사적으로나, 세계사적으로나 훨씬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더군다나 명나라 황제를 배향하는 만동묘를 만들며 낯간지스러운 사대외교를 펼쳤던 송시열이 뭐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라고... [* 위 부연설명: 삼국시대로 가면 아예 백제와 신라는 쓰는 언어도 달랐고, 서로를 같은 민족으로 인식하지도 않았습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진한과 변한은 서로 언어와 풍습이 같고, 진한과 마한과는 언어가 달랐다고 나옵니다. 고조선의 후예니 뭐니, 오늘날의 민족국가 개념으로 보아봤자, 삼국은 서로를 적으로 여기면 여겼지, 결코 같은 민족으로 여기지 않았지요.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거친 다음 부터는 오늘날의 민족과 비슷한 통일된 정체성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사이의 차이는 뚜렷했고, 계층이 다르면 결코 같은 인간 취급을 못 받았습니다. 결국 평범한 민초들 입장에서는 국가가 바뀌면 윗대가리가 바뀐 것에 불과했을 뿐, 살기 힘든건 어느 시대나 매한가지였습니다. 조선시대 천민들이 양반들에게 받았던 대접은 일제시대 평민들이 순사들한테 받았던 고초만큼, 심지어는 그보다 더, 혹독했을 겁니다.] p.s. 변호사님 교통사고 당했을 때 만난 사람의 이름이 송시열인 것은 칼 융의 동시성 이론을 생각나게 하네요. 송시열 생각을 자주 했으니 끌어당김의 법칙에 의해 송시열 이름을 가진 사람을 끌어당긴 것 같네요. 만동묘에서 퍼자고 있을 송시열이 후손이 기뜩해서 계시를 준 것 같진 않고...

 

 

 

 

  좀 엉뚱한 소리를 해서 미안합니다만, 역사 덕후라 하시는데 역사의 기본을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해석하시니까요.

우선 첫째, 안용복이 말한 죽도와 송도라는 것을 오늘날의 한일 독도 분쟁에 입각해서 울릉도와 독도로 단정해서 말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만기요람 군정편 해방 강원도를 보면, "여지지에 이르기를 울릉, 우산은 모두 우산국 땅이며 우산은 왜인들이 말하는 송도이다"고 적혀 있는데, 만약 우산이 독도라면, [우산=독도=송도]라는 논리는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1881년에 고종이 이규원을 감찰사로 파견해서 울릉도 탐사를 지시했을 때 고종은 분명 우산과 송도를 서로 다른 것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울릉도 근방에 송도, 죽도, 우산도가 있다는데 서로간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라.” 또, 1899년 대한제국 지도를 보면 오늘날에도 동일한 명칭으로 불리는 죽서도의 위치에 우산이라고 표기되어 있죠. 대한제국의 지도에 입각해서 보면 [우산=죽서도=송도]가 됩니다. 19세기 후반까지 한반도에서는 우산에 대한 개념정리조차 제대로 안되었기 때문에, 당시 안용복이 말한 송도를 독도라고 단정해서 말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둘째, 근대 이후에 만들어진 민족개념을 과거의 시대, 이를테면 조선시대에까지 대입해서, 역사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것도 역사덕후라 하기에는 많이 부족해보입니다. 왕씨의 고려를 이씨의 조선이 대체한 것이고, 이씨의 조선을 일왕의 일제가 대체한 것이지,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착각하는 것처럼 하나의 민족에 의한 하나의 공동체가 몇 천년동안 유지되어왔던게 아닙니다. 삼국시대로 가면 아예 백제와 신라는 쓰는 언어도 달랐고, 서로를 같은 민족으로 인식하지도 않았습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진한과 변한은 서로 언어와 풍습이 같고, 진한과 마한과는 언어가 달랐다고 나옵니다.) 고조선의 후예니 뭐니, 오늘날의 민족국가 개념으로 보아봤자, 삼국은 서로를 적으로 여기면 여겼지, 결코 같은 민족으로 여기지 않았지요.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거친 다음 부터는 오늘날의 민족과 비슷한 통일된 정체성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사이의 차이는 뚜렷했고, 계층이 다르면 결코 같은 인간 취급을 못 받았습니다. 결국 평범한 민초들 입장에서는 국가가 바뀌면 윗대가리가 바뀐 것에 불과했을 뿐, 살기 힘든건 어느 시대나 매한가지였습니다. 그렇게 보면 이씨의 조선이 일왕의 일제보다 특별히 더 나았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양반한테 핍박받으나, 일제 순사에게 핍박받으나, 우열을 가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서민, 또는 그보다 못한 천민들 입장에서는 성이 왕씨든, 이씨든, 나카무라씨든, 어차피 기득권층에 의해 착취당하는 피지배계층의 위치에 있으니까요.

'민족국가'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현대의 한국인들과 별 상관도 없는 조선시대 역사를 세세하게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계사 전체의 흐름을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조선시대 한국어랑 오늘날의 한국어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할만큼 다르고, 현대의 한국인들과 과거 한반도에 살던 조선시대 사람들 역시 완전히 다른 의식구조를 가진 서로 다른 집단입니다. 단순히 송시열이 조선시대 후기에 끼친 영향이 크고, 한반도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송시열을 공부해야 한다는 건 개논리이고, 어불성설입니다. 송시열을 아는 것과, 나폴레옹을 아는 것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딱히 없습니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는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하게 중요합니다. 오히려 세계가 하나가 된 오늘날에는 송시열 따위보다는 나폴레옹을 아는 게 훨씬 더 중요합니다. 더군다나 명나라 황제를 배향하는 만동묘를 만들며 낯간지스러운 사대외교를 했던 송시열이 뭐 대단한 인물이라고...

p.s. 변호사님 교통사고 당했을 때 만난 사람의 이름이 송시열인 것은 칼 융의 동시성 이론을 생각나게 하네요. 송시열 생각을 자주 했으니 끌어당김의 법칙을 의해 송시열 이름을 가진 사람을 끌어당긴 것 같네요. 만동묘에서 퍼자고 있을 송시열이 후손이 기뜩해서 나타난 것 같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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