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눈을 뜰 수 있다는 것: 영화 바닐라 스카이 후기, 결말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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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 your eyes
1. 서
일단 이 영화를 보게 된 계기는,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 영화라며 추천해 줘서이다. 난 아직 내 '인생 영화'가 뭔지 모르겠다. '인생 영화'가 되기 위한 조건을 뭘까. 이건 나중에 논의하고, 아무튼 '인생 영화'라니, 궁금해졌다. 추천해 주자마자 바로 본건 아니고, 몇 달이 지난 지금 봤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정말 재밌었다. 진짜 재미는 단순한 오락적인 재미를 넘어선 감동과 영감을 주는 것일텐데, 이 영화는 단순 로맨스 영화라기 보다는 꿈과 현실을 드나들면서 꿈과 대비해서 현실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게 보았다.
2. 본
※스포주의 (마지막 반전에 대해서도 대놓고 스포함 주의)
영화는 살인 혐의로 감옥에 갇힌 남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우선 시작부터 약간 비현실적이긴 하다.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이 여유롭게 4주씩 심리 상담사와 1:1대면 상담의 기회가 주어지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 역시 돈이면 다 되는가? 하는 생각. 사실 영화는 중간중간 '왜 이렇게 좀 부자연스럽지? 옛날 영화라 그런가?'싶은 부분들이 있었는데, 와 이게 다 반전을 향해 가고 있었던 거다. 예를 들어 취해서 길바닥에서 잠든 그 다음날 소피아가 일으켜주러 왔을 때, 아니 이렇게 쉽게 이야기가 흘러간다고? 싶긴 했지만, 그냥 넘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첫 만남에 이루어진 그 운명 같은 사랑을 믿고 싶었던 거다. 데이빗과 첫 만남에 사랑에 빠진 그녀가, 그가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망가져서 돌아와도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그런 운명적인 존재라고. 그런 미친 듯이 아름다운 사랑을 믿게 만들었던 거다. 그러다가 데이빗의 얼굴이 수술로 예전의 것이랑 똑같게 되돌아왔을 때도, 아니 저게 가능하다고? 너무 공상과학적인 거 아냐? 싶었지만 또다시 그런가 보다 했다. 그가 완치되고 나서 보내는 소피아와의 행복한 나날들이 미치도록 아름답고 너무 부러웠기 때문일 거다. 나도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저 아름다운 나날들이 진짜라고. 한편으론 결국 살인으로 종결 날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아름답고 가슴이 아파왔던 것 같다. 신맛을 알아서 더 달았던 건가.
결국 데이빗이 갑자기 소피아와 줄리아나를 헷갈리기 시작했을 때, 왜 촉매가 될만한 사건 없이 갑자기 저런 환상을 겪기 시작했는지 의아했으면서도, 아 이제부터 이 아름다운 스토리가 끝나는 거구나 싶어서 계속 봤다. 그리고 결국 데이빗이 자신이 소피아를 죽였다고 의사한테 토로했을 때, 의사가 갑자기 데이빗이 자신의 '가족'같다고 해서 너무 의아했다. 갑자기 자신이 상담하는 살인 혐의자가 '가족'같다고? 동정심을 느끼고 어느 정도 애정과 책임감을 느끼는 것과 '가족'같은 건 전혀 다른데. 아무튼 이게 다 반전을 향해가고 있는 것이었을 줄이야.
난 반전 영화인 것을 알고 봤는데 초반부터 반복되는 냉동 강아지에 대한 모티프 때문에 설마 데이빗이 사랑하는 소피아를 냉동인간으로 만들려고 살인을 저지른건가 하는 B급 스토리를 상상하면서도, 에이 그건 정말 아니지, 이러면서 봤다 ㅋㅋ. 마지막에 데이빗이 살인을 자백했을 때는 반전이 사실은 데이빗이 정신착란에 걸려 자신이 소피아를 죽였다고 생각하도록 모함당한게 아닐까, 또다시 이런 B급 스토리들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근데 이 모든 게 루시드 드림이었고, 데이빗이 죽었다는 설정은 정말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그런데 진짜 반전은 우리는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반전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사실, 냉동인간으로 보존되어서 150년 뒤 미래에서 깨어났고, 루시드 드림으로 살아간다는 건, 시속 80km의 속도로 다리에서 낙하사고를 당해 두개골을 접합한 사람이 수술 몇 번으로 완벽한 사고 이전의 얼굴로 돌아왔다는 것만큼 공상과학적이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 반전까지도 꿈인 거다.
데이빗은 건물에서 뛰어내린 뒤 "open your eyes"라는 음성에 일어난다. 이 대사는 줄리아나와 잔 후에 다음날 아침의 자명종 소리이기도 하고, 소피아를 줄리아나로 착각했을 때 계속 들려온 환각 소리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데이빗이 건물에서 뛰어내려 다시 깨어났을 때, 이 모든 게 과거 어느 시점에서 데이빗이 꾼 꿈이고, 그가 과거 어느 시점에서 깨어날지 우리는 모른다. 줄리아나와 4번의 사랑을 나눈 그 다음날 아침인지, 시속 80km의 속도로 다리를 뛰어내린 다음날 아침인지, LE에 찾아가서 계약을 맺은 후인지.
어느 시점에서 꾼 꿈인 게 가장 좋을까? 가장 이른 시점, 그러니까 줄리아나와 잔 다음날 아침에 이런 꿈을 꾼 거라면 제일 좋지 않을까?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 평범한 데이빗으로 살아가던 그때로. 근데 그러면 소피아도 만나기 전이니까 소피아라는 존재 자체가 없는 세상일 수도 있지 않은가. 소피아라는 존재 자체를 만난 것이야말로 그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차라리 소피아를 만난 후라고 상상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소피아를 만나고, 차 사고도 당하고, 길바닥에서 자고 일어난 그날 아침으로 돌아간다면, 그는 어쩌면 스스로를 추스르고 다시 소피아에게 다가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데이빗을 실제로 소피아가 다시 받아준다면(물론 이번엔 갑작스럽게 받아주는 게 아닌, 데이빗의 노력으로), 실제로 그가 꿈꾼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허무맹랑하긴 하지만, 원한다면 진짜로 데이빗이 150년 뒤 미래 세상에서 깨어난 거라고 믿어볼 수도 있다. 150년 뒤 미래라면 여전히 소피아가 없어서 슬프겠지만, 새로운 사랑, 새로운 '소피아'를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근데 이런 상상은 어쨌든 그가 말 그대로 다시 '눈을 뜨고' 잠에서 깨어날 수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거다. 다시 눈을 뜨고 과거의 한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아마 가장 슬픈 시나리오는, 사실 눈을 떴을 때 이미 death bed, 그러니까 임종의 순간일 때가 아닐까. 임종의 순간이 아닌 이상,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만들어 볼 수 있을테니까.
3. 결
소피아는 중간에 이런 대사를 한다. "Every passing minute is a chance to turn it all around. (매 순간이 이 모든걸 바꿀 수 있는 기회에요)" 나는 이 대사가 이 영화의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 현재 우리의 선택지는 과거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회한에 잠겨 살거나,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거나 두 가지 뿐이다. 어쩌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것도 일종의 선택이다. 데이빗이 꿈에서 깨어서 어느 시점으로 돌아갈지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 시점부터 과거는 바꾸지 못해도 미래는 바꿀 수 있다.
Every passing minute is a chance to turn it all around.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확실한 로맨티스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우리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조금은 낭만가이지 않은가? 보는이가 데이빗과 소피아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에 감명받지 못했다면, 적어도 데이빗이 이 꿈에서 깨어나 다시 되돌아갈 현실이 있다는 점에서 안도할 것이다.
낭만과 문학. 문학과 낭만. 가끔 영문학 시간에 좀 더 열심히 공부할걸이라는 생각이 꽤 든다. 문학이란 우리 인생에서 생각보다 중요한 학문임에 틀림 없는 것 같다. 문학에 대해 더 잘 안다면, 이 영화에 대해서도 좀 더 심도 있게 분석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어쨋든 이 가슴 아픈, 아니 오히려 희망적인 메시지의 영화, 보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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