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학생 셋 중 하나는 서울대 보다 훨씬 더 좋은 대학에 간다 [이봉렬 in 싱가포르] 국립대학의 경쟁력과 역할... 세계 50위 안에 한국 대학 하나도 없어
예외적으로 이번 뉴스는 오마이가 맞았네.
고장난 시계도 한번은 맞는다고...
반면, 한국경제신문은 병신같은 소리를 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001355
▲ 서울대가 싱가포르에 밀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는 한국경제 기사 제목. 이전에 서울대가 앞섰던 적은 있을까요? ⓒ 한국경제 보도화면 갈무리
지난주 한국경제신문 웹사이트에 흥미로운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국 1위' 서울대 어쩌다…"싱가포르에 밀렸다" 초유 사태>
"벼랑 끝에 선 대학"이라는 주제의 연재물 중 하나였는데 제목만 보면 서울대가 이제까지는 싱가포르의 대학보다 앞섰는데 최근에 뒤로 밀리는 초유의 사태, 즉 이제껏 없었던 일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기사를 읽어 보면 한국 대학이 싱가포르에 밀리는 이유가 17년간 동결된 등록금 때문인 것 같습니다. 등록금을 언급한 문장이 계속 이어집니다.
싱가포르 대학들이 약진하는 사이 한국 대학들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 17년간 이어진 대학등록금 동결로 인한 재정 악화 속에 갖은 규제에 손발이 묶여 있다.
NUS의 등록금은 최소 3만싱가포르달러 이상이다. 한국 등록금의 4~5배 수준이다.
한 사립대 총장은 "한국이 등록금 규제 등으로 발목을 잡힌 사이 자율과 경쟁이라는 시장 기본 원리를 지킨 싱가포르가 아시아 경제허브에 이어 교육허브까지 차지했다"고 평가했다.
한때 한국을 롤모델로 삼은 싱가포르 대학들은 인적 자원에 대한 전폭적 투자, 철저한 실력주의,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교육정책을 앞세워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반면 17년간 등록금 동결, 빈약한 연구개발 투자에 발이 묶인 한국은 두뇌 유출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제껏 앞서가던 서울대학이 등록금을 올려 받지 못해서 싱가포르대학에도 밀리는 그런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게 맞는지 확인도 할 겸 싱가포르 대학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울대는 싱가포르국립대학을 한 번도 앞선 적이 없다
해당 기사에서 서울대학교가 싱가포르 대학교에 밀렸다는 근거로 가져온 건 영국의 대학 평가기관인 'THE(타임스 하이어 에듀케이션)'의 2024 세계 대학 순위입니다. 이 순위에서 서울대는 62위인데, 싱가포르국립대학(이하 NUS)은 19위입니다. 앞서고 있던 서울대가 어떻게 한 해 만에 이렇게 큰 격차로 NUS에 뒤질 수 있을까요? 2023년 순위를 확인해 봤습니다. NUS는 작년에도 19위였고, 서울대는 56위였습니다. 그 전 해인 2022년의 순위를 봐도 NUS가 크게 앞섭니다. 서울대가 NUS에 밀리는 초유의 사태가 3년째 이어지고 있는 걸까요?
▲ 2011년 이후 THE 선정 서울대학교와 싱가포르대학교의 순위. 서울대가 싱가포르대학을 앞선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 이봉렬
사실 THE가 대학 순위를 발표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로 서울대가 NUS를 앞선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지난 14번의 조사 결과 서울대는 최고 44위, 최저 124위를 기록했습니다. NUS는 최고 19위, 최저 40위였습니다. NUS의 최저 순위조차도 서울대의 최고 순위보다 높습니다. 서울대가 NUS에 밀리는 결과는 초유의 사태가 아니라 지난 14년간 늘 있었던 일인 겁니다. 참고로 다른 대학평가기관인 QS가 발표한 순위는 서울대가 41위, NUS가 7위입니다.
THE의 순위 50위 안에 한국 대학은 하나도 없지만 싱가포르 대학은 NUS 외에 난양공대(NTU)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50위 안에 두 개의 대학이 있는 경우는 미국, 영국, 중국, 캐나다, 독일, 스위스, 그리고 싱가포르로 7개 나라밖에 없습니다. 싱가포르 대학은 어떻게 이런 좋은 평가를 받는 걸까요? 한국경제의 주장대로 싱가포르의 등록금이 "한국 등록금의 4~5배 수준"이라서 그런 걸까요?
부산시 면적보다 더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에는 모두 6개의 국립대학이 있습니다. NUS(싱가포르 국립대학교), NTU(난양공대), SMU(싱가포르 경영대학), SUTD(싱가포르 기술디자인대학), SUSS(싱가포르 사회과학대학교), SIT(싱가포르 기술대학교).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대학별로 주력으로 하는 분야가 조금씩 다릅니다. NUS와 NTU를 가장 선호하기는 하지만 경영학은 SMU, 디자인 관련은 SUTD로 가려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사립대학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싱가포르의 사립대학은 대부분 해외 대학과 제휴해서 해당 대학의 학위를 받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 최초의 사립대학인 MDIS의 호텔관광학부는 영국 선덜랜드대학과 제휴가 되어 있어서 학위는 선덜랜드대학 이름으로 발급이 됩니다. 싱가포르 국립대학의 경우는 대부 유니버시티라는 이름을 쓰지만, 사립대학들은 모두 아카데미 혹은 에듀케이션 등의 단어를 쓰는 것도 차이점입니다.
사립대학은 입학 문턱이 낮고 수학 기간도 짧습니다. 전반적으로 국립대학에 비해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사립대학 졸업자와 국립대학 졸업자의 첫 직장 월급 차이가 24% 정도 차이가 난다는 조사결과도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 온 유학생들이 주로 싱가포르의 사립학교를 선택합니다. 성적이 우수한 싱가포르 학생은 6개의 국립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세계 대학순위 50위 안에 포함된 싱가포르의 두 국립대학. 위: NUS, 아래 : NTU ⓒ 각 대학 홈페이지
싱가포르 국립대학의 수준이 높고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싱가포르 학생들이 입학하기에 크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싱가포르의 경우 의무교육인 중학교 4학년 학생의 수가 대략 4만 명 정도입니다. 세계 대학 순위 50위 안에 들어가는 NUS와 NTU의 입학정원이 1만 2천 명 (외국인 선발 제외) 정도 되니까 싱가포르 전체 학생의 30% 정도가 입학이 가능합니다. 6개 국립대학 전체를 대상으로 하면 학생 둘 중 한 명이 입학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지난해 한국의 수능응시학생 수는 44만7669명입니다. 이른바 스카이(SKY)라 부르는 한국 최상위권 대학의 입학정원은 1만 1511명이니까 대략 3% 정도가 입학이 가능할 겁니다. 대상을 상위 10개 대학으로 넓히면 응시생의 7% 정도가 상위 10개 대학에 입학할 수 있습니다. 대학 수준은 한국보다 더 높은데 입학을 위한 경쟁은 훨씬 덜한 곳이 싱가포르의 국립대학입니다.
등록금이 비싸지만 다 내지는 않는다
이번에는 등록금을 알아보겠습니다.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나라라는 평가가 있는 만큼 대학 등록금도 비쌉니다. NUS의 경우 학과에 따라 등록금이 다른데 학비가 낮은 경영학, 컴퓨터공학이나 법학의 경우 일 년 학비가 대략 3~4천만 원 정도 하고, 학비가 가장 비싼 치대의 경우 1억 7천만 원까지 합니다. 일 인당 국민소득이 9만 달러가 넘는다고 하지만 부담이 되는 비싼 학비이긴 합니다.
▲ 싱가포르국립대학의 전공별 연간등록금. 왼쪽 첫 칸이 실제 내는 금액, 오른쪽 노란색 칸이 보조금을 받지 않았을 때 내야 할 금액. ⓒ MOE (싱가포르 교육부)
하지만 이 학비를 다 내는 학생은 외국인 말고는 거의 없습니다. 정부에서 학생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기 때문입니다. 전공에 따라 등록금의 70~80% 정도 지원을 해 주기 때문에 실제로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은 천만 원을 잘 넘지 않고, 가장 비싼 치대 역시 82%를 보조해 줘서 3천만 원 정도만 학비로 내면 됩니다. 보조금은 싱가포르 시민권자에겐 특별한 조건없이 자동으로 지급이 됩니다.
싱가포르 영주권자와 외국인 유학생 역시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학과에 따라 비율이 다른데 대략 30%에서 70%까지 보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붙습니다. 졸업 후 3년 동안 싱가포르 법인에 취직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 싱가포르 대학에서 교육받았으니 그 지식을 싱가포르를 위해 사용하라는 겁니다. 이 같은 정부 보조금은 국립대학에 지급이 됩니다.
대학평가기관이 매긴 순위에서 싱가포르 대학은 두 개나 있는데 한국 대학은 하나도 없다는 건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대학평가기관의 평가 항목이나 방법에 따라 대학 순위 역시 달라질 수 있는 거니까요. 민간 기업인 특정 대학평가기관의 잣대로 세계 모든 대학을 줄 세운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일이고, 대학의 서열화를 조장하는 안 좋은 시도일 수도 있습니다. 진학을 앞둔 학생들은 저마다의 기준에 따라 또 다른 평가를 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언론이 대학평가기관의 공개된 평가 순위를 보도하면서 사실을 왜곡하고 반대로 해석해서 보도하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더욱이 사립대학의 등록금을 올리고 정부가 지원을 더해야 하는 근거로 국립대학 위주의 대학 정책을 펴고 있는 싱가포르의 사례를 가져다 써서는 안 되는 겁니다. 싱가포르의 대학이라고 하면 그냥 국립대학을 이야기한다고 보면 됩니다. 싱가포르에서 사립대학의 존재감은 크지 않습니다.
온갖 비리로 입길에 자주 오르는 사학에 대학 교육을 계속 맡겨도 되는가 하는 고민을 할 때 참조로 해야 하는 게 싱가포르의 사례지, 사립대학의 등록금을 올리고 거기에 정부의 지원까지 요청하는 내용의 근거로 삼을 사례는 아닌 겁니다.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 학생에 대한 정부의 직접 지원, 낮은 대학 입학 문턱, 외국 유학생에 대한 조건부 보조 등 싱가포르로부터 우리가 참고해야 할 게 이렇게 많은데, 고작 등록금 인상을 위한 핑계로만 쓰기엔 아깝지 않습니까?
국립대학 중심의 대학 정책을 통해 교육분야에서도 선진국이라 평가받는 싱가포르의 사례를 참고해서 우리도 각 지역마다 있는 국립대학의 수준을 고루 높여서 학생들이 서울로만 몰려 치열한 경쟁을 하는 지금의 상황이 조금이라도 개선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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