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귀 (동기부여 뒤집기): 신사고운동/자기계발/성공 포르노를 퍼뜨리는 채널들의 문제점 (feat. 켈리 최, 자청, 하와이 대저택, 조 디스펜자, 밥 프록터, 에모토 마사루 등) / 그리고 아로가 보는 동귀, 또는 유물론자들의 문제점들

 

동귀의 자기계발/성공 포르노 비판 영상들은,

서울대팔이 김난도가 쓴 어중간한 퀼리티의 <아프니까 청춘>이 시간이 지날수록 욕을 바가지로 먹게 된 것처럼,

어중이 떠중이 성공학 강사들이 너무 많은 이 시대에 딱 시의적절한 콘텐츠들이다.

댓글에도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다"는 평들이 많다.

 

아로는 밥 프록터가 다단계 사업과 연관된 줄은 몰랐는데, 이번에 그의 영상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단, 영상 내용들 자체가 특별하진 않다.

일정 레벨의 지능이 있으면 이정도 수준의 영상은 누구나 만들 수 있고, 이정도 수준의 비판 역시 누구나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대중에게 이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대중일반의 지능이 낮기 때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또 동귀의 문제점도 있다. 켈리 최, 자청, 하와이 대저택, 조 디스펜자, 밥 프록터 등을 비판하는 것은 좋으나, 이를 신사고운동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지적 섬세함이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신사고운동 전체는 거짓이고 사이비다"라는 결론을 내리려면, 먼저 본인이 이 주제에 대해 충분히 연구를 해야하고, 또 자기 인생에서 직접 실험을 해봐야 한다. 동귀에게는 그 부분이 결여되어 있다. 

 

실험이나 실증의 과정없이 단지 Skeptics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기대어 해당 학설 전체를 다 부정한다면, 그것 또한 (자신이 그토록 비판해 마지 않는) 사이비 과학자의 태도와 진배없다. (과학이란 건 단순히 주류학계에서 사실로 정립된 것, 또는 우리 눈으로 보이는 현실세계의 물리적 법칙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아직 인지하지 못하는 세계 역시 과학적 탐구대상에 포함되며, 과학적으로 확실하게 부정된 것이 아닌 이상, 우리는 새로운 분야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열린 태도를 지녀야 한다. 유령이나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다. 신사고운동 역시 과학적으로 증명된 적도 없고, 동시에 반박된 적도 없다.)

 

신사고운동을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정도로 이해하는 것으로 보아, 동귀의 해당 주제에 대한 이해도는 그다지 높지 않음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게 이 주제에 대해 처음부터 비판적인 입장이었는데, 마음을 열고 충분히 공부해볼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요즘 신사고운동이나 뉴에이지의 트렌드는 사실 이와는 정확히 반대다. 욕망을 이루려면 오히려 더 비워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리얼리티 트랜서핑>이나 김상운의 <마음을 비우는 얻어지는 것들> 등이 예 ㅡ 단, 이 책들이 다 맞다는 얘기는 아니다.) 또 신사고운동 중에는 이루고자 하는 욕망 그 자체만으로 새로운 현실이 창조되는 것은 아니며, 현실창조는 삶 전체의 무의식적 사고패턴 내지는 관습들과 더 관련이 있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네빌 고다드나, 나탐, 카밀로의 유튜브 영상들이 그 예.) 그도 그럴 게 인간은 하루에 수만개의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데, 겨우 하루에 10분 정도 어떤 특정한 생각에 집중하거나 공책에 쓴다고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우리의 삶을 특정짓는 지배적인 관념들이 종합적인 현실을 창조한다"는 것이 신사고운동의 진수라고 해석함이 맞다.


'끌어당김의 법칙'을 설파하는 자들이 오직 돈과 관련해서만 이 주제를 이야기하고, 인간관계나 기타 다른 대상으로 주제를 확장시키지는 않는다는 동귀의 비판 역시 사실과 전혀 다르다. 실제로는 이 분야의 많은 책들이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신사고운동을 적용하여, 마치 하나의 '법칙'인 것처럼 설명하곤 한다. 동귀는 이 분야의 흔한 책들조차 읽어보지 않은 느낌이다.

 

또 동귀는 신사고운동의 창시자로 최면술사인 Phineas Parkhurst Quimby를 꼽았는데, 사실 신사고운동은 19세기 중후반의 심령주의, 최면술, 크리스챤 사이언스, 네오 힌두이즘, 초절주의, 신지학회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한 결과물이다. 단, 하나의 기원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다.


 

결론적으로 말해, 동귀의 영상들에 대한 아로의 관점은 복합적이다.

 

켈리 최, 자청, 하와이 대저택, 조 디스펜자, 밥 프록터, 에모토 마사루 등 허세와 돈벌이 수단으로 신사고운동을 퍼뜨리는 어중이떠중이 사이비들은 까야 마땅하고, 아로 역시 동귀와 견해를 같이 하지만, 동귀가 자신의 유물론적 세계관을 절대진리이나 유일무이의 과학으로 상정하고 신사고운동을 맹목적으로 비판하는 것에는 비판적이다.

 

아로나 동귀나 아직 신사고운동 전체에 대해 거짓으로 매도할만큼 충분히 '실증적'으로 이 주제를 규명한 바 없다고 아로는 확신한다.

 

루트비히 비트켄슈타인의 그 유명한 말처럼, 말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해서는 충분히 명료하게 말하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über muß man schweigen.) 

 

일례로, 회의주의자들이나 유물론자들은 존경받는 학자이자 죽음학의 세계 최고 권위자였던 엘리자베스 퀴블러의 체험을 단순히 사기꾼의 기만 내지는 정신분열증세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


그녀는 <죽음 이후의 삶>(한국어판 제목: 사후생)이라는 책에서 1년 전에 세상을 떠난 한 내담자와의 만남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기로에 서 있었다. 죽어가는 환자들과 더는 일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날 나는 병원과 시카고대를 떠나고 말겠다는 통보서를 제출하리라 굳게 결심해놓고 있었다. 물론 나는 환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죽음에 대한 마지막 세미나를 마치고 승강기로 걸어갈 때였다. 한 여성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마치 내 모든 생각을 훤히 읽고 있기나 하다는 듯 얼굴에 함박 미소를 띠고 있었다.


"박사님, 제가 딱 2분만 시간을 빼앗을게요. 사무실까지 함께 걸어가도 될까요?"


내 평생 가장 긴 시간이었다. 내 마음 한편에서는 그녀가 1년 전쯤 세상을 떠난 슈와츠 부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난 과학자였다. 유령 같은 걸 믿을 리가 있는가!


난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는 어찌 보면 마치 밀랍처럼 투명하게 보이기도 해서 슬쩍 만져보려 했다. 그녀의 몸을 꿰뚫고 가구가 보인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실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그녀를 만져보았고, 그녀에게 촉감도 느껴졌다는 걸 알고 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그녀가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선 뒤 그녀가 말했다.


"두 가지 이유로 돌아왔어요. 첫째는 저를 위해 해주신 일에 대해 박사님과 스미스 신부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죠. 더 진짜 이유는, 죽어가는 환자를 돌보는 일을 아직도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 돌아왔습니다."


나는 그녀가 정말 슈와츠 부인이라는 사실을 의식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한테 그런 말을 해봤자 아무도 나를 믿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은 내가 헷가닥했다고 생각할 것이었다.


과학자는 증거를 필요로 한다. 내가 말했다.


"그래요. 그런데 스미스 신부님한테 쪽지를 하나 써주시면 좋아하지 않으실까요?"


나는 그녀가 종이쪽지에 자필로 아무 말이라도 끼적거려주기를 바랬다. 물론 친필 싸인까지 곁들이면 더욱 좋고.


그녀는 내 생각을 꿰뚫고 있었다. 내가 스미스 신부에게 쪽지를 건네주지 않을 것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종이쪽지에 글을 남기더니 이름과 성을 다쓰고 친필 싸인까지 했다. 그리고는 사랑과 연민과 이해심을 두루 담은 가장 큰 미소를 띠며 "이젠 됐나요?"하고 말했다. 그녀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죽음에 대한 연구를 포기하지 마세요. 아직은요. 지금은 때가 아니에요. 우리가 도와줄게요. 때가 되면 아실 거예요. 약속하실 거죠?"


내가 그녀에게 한 마지막 말은 "약속하지요"였다. 그 말과 함께 그녀는 사라졌다. 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이게 생시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문을 열었다. 하지만 긴 복도엔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것 아닌가!


...


오직 최상위의 지능과 지혜를 가진 사람들만 음과 양, 진실과 거짓 사이의 이 미묘한 경계를 구분해낼 수 있다. 이말인즉슨,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체험을 맹목적으로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켈리 최, 자청, 하와이 대저택, 조 디스펜자, 밥 프록터, 에모토 마사루 등의 헛소리들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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