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국제투기자본과 JP모건체이스 (feat. FINAiUS)
모건 가문 계보는 J.S.모건, J.P.모건, J.P.모건 주니어 (잭 모건), 헨리 모건 이렇게 이어진다.
흥미로운 것은 1933년 글래스스티걸법의 시행으로 모건 은행이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와 상업은행인 JP모건으로 갈라졌는데, 모건 가문 직계 혈통인 헨리 모건은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를 맡고, 상업은행인 JP모건은 Henry C. Alexander라는 전문경영인에게 위임하게 된다. (이는, 모건 가문의 주축은 모건스탠리였고, 사이드가 JP모건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알렉산더는 1930년대 나이위원회 청문회에서 잭 모건의 참모로 같이 출석하기도 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미국-한국인 재단 회장으로 취임해 활동했고, 밴더빌트 대학,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그리고 슬론 재단의 후원자였다는 사실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Henry_C._Alexander
He also was the national chairman for the American-Korean Foundation.[6]
In addition to his career in banking, Alexander served of the board of directors of General Motors, the American Viscose Corporation, and Standard Brands. He was a trustee on the boards of Presbyterian Hospital, Vanderbilt University,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and the Alfred P. Sloan Foundation.[1]
At Davis Polk, he served as counsel to J. P. Morgan Jr. during the Nye Committee investigations and hearings on the munitions industr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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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러시아 혁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모건계 회사가 개런티 트러스트다.
“아 그리고 모건 전기를 읽고 있는데, 모건 전기에 만주 군벌에 대한 지원과 중국 철도 투자에 대한 건이 나옵니다. 그리고 공화국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지원하여 부이를 황제자리에서 끌어내렸다고 나옵니다. 짜르에 대한 건도 나오는데... 러시아의 황제가 칙사를 모건에게 보내, 러일 전쟁에 쓰일 채권 자금 조달을 시킵니다. 칙사는 모건에게 가서, '미국의 왕이시여, 자금을 조달해 주십시요.' 이렇게 했지만, 모건은 거절합니다. 반대로 일본에게 전쟁 자금조달을 했지요. 모종의 유태 계열 은행가들이 러시아에 자금을 대주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옵니다.
[출처] 국제유태자본 : 인드라 월드리포트 09/02/16|작성자 인드라
http://blog.naver.com/miavenus/70042293638
Henry C. Alexander의 주도 하에 1959년 상업은행 JP모건과 합병하였다. 해서 만들어진 명칭이 Morgan Guara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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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차일드계 Frank Church 상원의원: 1973년 욤키푸르 전쟁 와중에 이스라엘/유태인 enterprise의 입장을 대변
1975: extract figures on ptetrodollar
1976: the America-Jewish Congress singled out Morgan Guaranty and Citibank for their pivotal role in the implementation of the Arab boycott of Israel.
물론 이 시기 데이비드 록펠러는 이집트 (안와르 사다트) 편을 들었고,
당시 빅터 로스차일드가 뒤흔들던 미 연준과 뉴욕타임스의 비판 세례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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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모건
1980년대 데이비드 록펠러-삼극위원회-신자유주의의 흐름을 타고 아시아, 중동, 그리고 라틴에 투자. 라틴 아메리카에 저지로 돈을 빌려줘서 거품을 형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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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JP모건과 윈드롭 올드리치-데이비드 록펠러의 체이스맨해튼이 합쳐져
세계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가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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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론 사태 때 시티은행과 함께 투자.
뒷이야기:
엔론 그룹(2000년 미국 대기업 7위)이 분식 회계를 통한 2001년 파산을 하게 됩니다.
엔론 그룹의 파산 배경에는 , 무리한 차입을 통한 M&A 으로 재무 재표가 튼튼하지 못했으며, 이를 숨기기 위해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분식회계를 했습니다.
그런데 엔론 그룹의 파산의 진짜 배경은 , 록펠러 가문과 부시 가문의 대립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록펠러 가문의 차기 황제인 제이 록펠러의 골드만삭스가 2000년 전세계 석유 가스 상거래 시장의 30%이상의 거래를 담당하였습니다.
그런데, 1998년부터 엔론 그룹에서 가스 상거래와 석유 전자 상거래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면서,
전세계 가스 상거래에서 엔론 그룹이 차지하는비중이2000년 20%수준까지 상승을 했습니다.
엔론 그룹은 볼세비키 후손 기업으로 볼수 있으며, 2000년 당시 CEO는 케네스 레이 였는데요,
부시집안과는 선조 때부터 아주 친분이 두터운 사이 였습니다.
즉, 부시가문이 칼라일 그룹산하 방위 사업부와 헤지 펀드 사업부, 이외에 에너지 사업부를 키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엔론 파산에 주도한 은행은 당연히 시티은행, 메를린치, 골드만삭스 입니다. 그리고 아서 앤더선 컨설팅업체 까지.
시티은행이 엔론 그룹 대출관련 주거래 은행이었습니다.
911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모건스탠리의 영업 비밀은? 위기대응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중 빠지지 않고 나오는 대목이 911 때의 모건스탠리다.
“모건스탠리가 남쪽 타워에 2,500명, 북쪽 타워에 1,000명의 직원이 근무하여 세계무역센터 사무실 면적의 10분의1 이상을 임대하고 있었다. 사고가 나자 뉴스에서는 모건스탠리가 가장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혹시 이 은행이 문을 닿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돌지만, 다음날 지나친 억측으로 드러났다. 여객기 충돌 직후, 모건스탠리는 곧바로 비상체제로 전환되었다. 1초가 급한 상황에서 직원들은 비상대피 책임자의 지휘아래 일사분란하게 빌딩을 빠져 나왔다. 그 결과 실종자는 단 15명에 불과했다. 긴급상황시 비상체제로 움직일 수 있는 “재난대책”을 사전에 수립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993년 세계무역센터 차량폭탄테러 사건 이후, 위기상황별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비상대피 모의훈련을 수시로 실시했다. 테러가 발생할 경우 비상연락체계를 유지하고 연락두절시 집합할 시간과 장소 등도 미리 정해 두었다. 사고직후 단 하루 만에 직원들 대부분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재난대책”에 따라 긴급상황 지휘본부를 설치하고 체계적이면서도 침착하게 대응했다. 모건스탠리는 다음 날 업무를 재개해서 세계를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9월12일 오전 9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전세계 모건스탠리 지점들은 정상적으로 문을 열고 직원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업무를 진행했다. 본사는 마침 비어있는 사무실이 있었던 미드타운으로 정해졌다. 퍼셀(Phillip J. Purcell) 회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모건스탠리는 정상적으로 운영됩니다. 월街는 건재하고 미국은 매우 강합니다”라고 말했다.“
http://blog.naver.com/teywoo/50001713161
헌데, 퍼셀이 네오콘 부시파라면, 네오콘 부시에게 911에 대해 사전 통보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 해서, 인드라는 다음과 같이 추론하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데이비드 록펄러계이다. 다만, 데이비드 록펠러 계 내부는 네오콘파와 뉴라이트파로 양분되어 있다. 해서, 퍼셀과 스티븐 로치는 네오콘 부시파이며, 존 맥과 리차드 버너는 뉴라이트파이다. 스티븐 로치 외에 네오콘 부시파는 엔디 시에가 있다.
하나, 모건스탠리와 딘위터 합병 시기가 1997년이다. 이 시기는 클린턴 2기 정권이 출발한 시기이다. 헌데, 퍼셀이 축출되고, 존 맥이 돌아온 시기가 2005년이다. 부시 2기 정권이 출발한 시기이다. 국유본이 미국 정치권에서의 정권교체 준비는 2기 정권 2년차부터 시작한다면, 국유본 은행을 비롯한 경제 부문에서는 그보다 1년 빨리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둘, 부시 경제팀으로 퍼셀이 거론되었다.
“재무장관 후임으론 10명 이상이 물망에 오르고 있지만 월가 인물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찰스슈왑 증권의 창업자 찰스 슈왑 회장,필립 퍼셀 모건스탠리 회장,도널드 매론 페인웨버 전 회장,리차드 그라소 뉴욕증권 거래소 회장,프랭크 자브 전 나스닥 회장,리만브라더스를 이끌었던 스티브 슈와르쯔만 블랙스톤그룹 최고경영자등이 거론되고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15&aid=0000574897
이는 퍼셀이 네오콘 부시파였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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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기 및 2010년 유럽 위기의 원인 중 하나인 파생상품 크레딧 디폴트 스와프 (CDS)를 처음 만든 것도 JP모건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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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ancing cartels which will surface in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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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방준비은행의 최대 주주.
록펠러 가문의 핵심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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