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요괴 & 귀신 콘텐츠의 계보: 논어의 괴력난신, 수신기 (간보), 헤이안 시대 아베노 세이메이와 음양사, 요재지이 (포송령), 게게게의 키타로 (미즈키 시게루), 제도물어 (아라마타 히로시), 공작왕 (오기노 마코토), 천녀유혼 (정소동), 제괴지이 (모로호시 다이지로), 육조괴담 (채지충), 우부메의 여름 (교고쿠 나츠히코), 포켓몬스터 (다지리 사토시), 모노노케 (나카무라 켄지)
1. 논어 술이편 (475–221 BC)의 괴력난신
"子不語怪力亂神" (자불어 괴력난신)
선생님(공자)은 괴력난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 괴(怪): 기괴한 일. 괴이.
- 력(力): 차력처럼 초인적인 힘. 용력.
- 난(亂): 난세에서 일어날 법한 막 나가는 현상들. 반란.
- 신(神): 초자연적인 신비로운 일. 귀신.
을 의미한다. 혹은 '괴력'과 '난신', 즉 괴이한 힘과 난잡한 귀신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공통적으로 초자연적인 현상을 가리킨다.
- 상(常): 기괴하지 않은 평상적인 것
- 덕(德): 꾸준하게 내면적으로 쌓아가는 덕성
- 치(治): 질서정연한 다스림
- 인(人): 초자연적 신과 반대되는 인간적인 일
삼국사기를 비롯한 역사서들은 대체로 "자불어 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과 술이부작(述而不作)"에 입각하여 저술되었다. 재밌게도 이러한 이유로 삼국사기에는 삼국유사와 달리 단군신화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걸로 김부식을 까기도 하지만,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으로 변한다는 내용은 명백히 초자연적이고 현대인들도 이것을 일종의 비유라면 모를까 아무도 말 그대로의 실제 역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역사를 기록하는 임무를 왕에게 받은 김부식으로서는 원칙적으로는 넣지 않는 게 합리적 선택이었던 것.[1] 다행히 현실성이 낮은 설화적 기록도 모두 수록한 일연의 삼국유사 덕분에 후대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조선시대 유림들은 무속신앙과 불교, 후대에 들어온 천주교를 향해 괴력난신을 논한다며 공격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조선시대 유교 교훈서인 오륜행실도에는 효자가 병든 어머니를 걱정하며 눈물을 흘리자 겨울철에 죽순이 돋아났다든가, 상제가 보낸 신인(神人)이 꿈에 나타나 아버지의 병을 치료했다든가, 아버지 장례비를 마련하기 위해 노비가 된 효자를 천녀가 내려와서 구해주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든가 하는 초자연적이고 비합리적인 이야기가 가득하다. 유교식 장례, 제사도 관점에 따라서는 괴력난신으로 여겨질 만한 요소가 있고.
신하가 임금을 위하고, 자식이 아버지를 위하고, 아내가 남편을 위하고, 아우가 형을 위하고, 친구가 친구를 위하는 절박한 마음이 일호의 사사로움이나 거짓이 없어서 천리(天理)의 바름에 순수하게 부합하면, 여기서 느끼어 저기에 반응하는 이치가 그렇게 될 것을 기약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수가 있다. 주공(周公)이 금등(金藤)에 빌고, 검루(黔婁)가 북신(北辰)에 기도한 일, 왕상(王祥)이 얼음 깨고 잉어를 얻은 일, 맹종(孟宗)이 겨울에 대밭에서 울어 죽순을 나게 한 일 등이 있으니, 어찌 이치가 없다면 그럴 수 있겠는가?남효온, <귀신론>
대가 오래된 먼 조상은 그 기(氣)는 비록 멸하였지만 그 이(理)는 멸망한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또한 정성으로써 감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맑고 푸른 하늘에 본래 비가 올 기운이 없다가 갑자기 구름이 모여들어 드디어 큰 비를 내리는 것은, 비록 비가 내릴 기운은 없었지만 역시 능히 비가 내릴 수 있는 이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대(遠代)의 조상은 진실로 감응할 수 있는 기운이 없지만 지극한 정성으로 염원하면 마침내 감응하게 되는 것은, 비록 능히 감응할 수 있는 기운은 없지만 역시 능히 감응할 수 있는 이치가 있기 때문입니다.이이, <死生鬼神策>
애초부터 공자가 그런 초자연적인 현상을 부정하고 냉담했기 때문에 괴력난신을 언급하지 않았던 건지부터가 의문이다. 논어에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2]거나, '신에게 제사를 드릴 땐 신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행해라'거나, '우임금은 거친 음식을 드시면서도 귀신에게는 효성을 다했고 허름한 의복을 입으면서도 제사 예복은 아름답게 꾸몄으니 흠잡을 데 없다'거나, '고을 사람들이 역귀를 쫓는 굿을 할 때는 제사 예복을 입고 동쪽 섬돌에 서 계셨다'는 등의 구절도 분명 적혀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쪽에도 니콜 오렘이나 장 뷔리당 등 중세 신학자들이 마술이나 점성술 같은 '미신'을 비판한 바가 있으며,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론에 근거한 자연과학적 설명보다는 허황되고 과장된 이야기에 현혹되는 민중들의 우매함을 경멸했다.
논어에는 이와 묘하게 비슷한 구절이 있는데, "子罕言利與命與仁."(선생님은 利와 命과 仁은 드물게 말씀하셨다.) 이 구절이 아이러니한 것은 논어는 仁에 대해 공자가 말한 내용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를 미루어 볼 때 논어의 그 구절은 '초자연스러운 현상 자체를 말하지 않았다'고 해석하기보다는 (술이편에 수록된 것을 생각하면) '대중들을 현혹시킬 목적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꾸미는 언행을 하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3] 따라서 현대 사회에서 반종교 성향을 가진 (+ 유교는 종교로 보지 않는) 일각에서 하는 것처럼 군자불어 괴력난신이란 표현을 다른 좀더 직접적으로 영적인 내용, 사후세계를 다루는 기존 종교들을 공격하는데 사용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면 역사적으로 한국, 중국을 필두로한 전통 유교문화권에선 괴력난신이 처음엔 불교, 나중엔 기독교를 비롯한 사후세계를 신앙의 중심으로 두는 다른 신앙 체계와 충돌하고 이를 배제하는데 적극적으로 사용된 캐치프레이즈인 것 또한 사실이다.[4]
2. 수신기: 위진남북조 시대의 지괴소설 搜神記 (간보, 4세기 중엽)
배송지가 삼국지에 주를 달면서 유독 다른 지괴소설은 인용하지 않았으면서 수신기는 주석으로 인용했는데,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친숙한 인물의 이야기도 많이 찾을 수 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손책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나 미축이 화덕성군을 만난 이야기 등을 이 책에서 따왔다. 삼국지 관련된 이야기는 주로 오나라 위주로 나오며 촉나라는 기록이 적어서인지 괴력난신 이야기는 일절 나오지 않는다. 우길이 온갖 난리법석을 피우는 모습이라든가, 화타의 전설적 의료행위 등은 이 책에 기재된 것이며 이 외에도 기타 네임드 도사들의 이적 이야기가 있다. 이 외에도 온갖 기괴한 이야기가 있는데, 심지어 화성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외계인 이야기도 실렸다...# 공자 이야기도 나오는데 괴력난신을 금지한 것 치고 요괴에 대해 자세하게 아는 모습으로 나온다.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과 연관되는 이야기가 있다. 고리국에서 신비하게 태어난 '동명'이란 왕이 부여 땅에서 나라를 세웠다고 나온다. 본래 이는 부여의 건국 이야기인 동명왕 전설인데, 현대 학계에서는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뒤 시호를 동명성왕으로 칭하고, 이후 주몽을 신격화하면서 이 동명왕 전설을 차용했다는 해석이 있다.
1번 항목과는 전혀 상관 없다.
채지충이 그린 만화 버전도 있는데 '육조괴담'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4]
일본에서도 이 작품에서 모티브를 따온 천년호 ~간보「수신기」에서~라는 제목의 만화로도 나오는 중.
3. 헤이안 시대 아베노 세이메이와 음양사
고대 일본의 율령제에서 중무청의 온묘료(음양료)에 속해 있던 관직의 하나로, 음양오행의 사상을 기초로 한 '음양도'로 점을 치거나 땅을 살피는 '방기(方技)'로 배치되었다. 방기는 기술사 관직으로 풍수지리를 보는 지관 일을 했다. 이후에는 본래의 율령제정을 넘어서 점술, 주술, 제사 전반을 담당하게 된 직종을 말한다.
일본에서 무인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센고쿠 시대 및 에도 시대의 사무라이라면 문인을 상징하는 이미지는 헤이안 시대의 음양사라고 볼 수 있다. 현대에는 가리기누를 입고 주술을 쓰는 이미지로 주로 알려진 상태.
아베노 세이메이라고 하면 일본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꽤 유명한 직종. 고대 일본을 판타지적으로 그린 매체들 때문에 이미지가 마법사에 가까워졌지만[3], 음양사가 하는 일은 현대 사회로 비교하면 최신 과학에 속하는 천문학과 기상학, 지리학을 연구하여 농업이나 군사전략 수립 등 현실에 응용하고자 하는 과학자 집단이었다.
농업 국가에서 기상의 분석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필요한 일이었으며, 의외로 과학자들이 마법사로 나오는 경우도 매체나 창작물에서는 많이 보이는 편이다. 물론 종교적인 성격이 당연히 있지만, 미디어물에서 표현된 것처럼 그저 기도하고 부적만 날리면서 주문만 외우고 하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점은 드루이드와 비슷하다.
사실 고대 사회에서는 천문학, 기상학 등의 과학 분야와 종교 분야가 엄밀하게 구분되지가 않았고 고대 오리엔트 세계에서 왕은 제사장처럼 종교적인 최고위 직책을 겸직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처럼 음양사는 백성들에게 종교를 믿도록 이끌어주는 역할도 했다. 그리고, 점성술의 임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천체의 움직임과 날씨를 관측해야 되는 것이 일이었으며 한 해의 농사가 풍작이 되길 기원하며 신에게 공물을 바치기도 했다.
또한, 가뭄이 일어나면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를 하고, 반대로 폭우가 내리고 홍수가 일어나면 비를 그쳐달라고 기도를 했다. 결국 고대 사회에서 음양사는 종교와 과학 양쪽의 업무를 수행했는데, 미디어물에서 차용할 때 전자 쪽 이미지를 주로 사용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잘 쓰이는 대표적인 오컬트적 요소이다. 일본의 소설이나 만화같은 데에서 대개 요괴를 퇴치하는 인물은 음양사라는 식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음양사의 이미지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아베노 세이메이의 경우는 영화, 만화 등 여러 매체에서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뤘다. 또한 선역이나 협력자 말고 흑막, 악역으로도 꽤나 자주 나온다. 가장 대표적인 악역이 누라리횬의 손자의 진 최종 보스인 누에 아베노 세이메이. 또한 대부분 음양사 캐릭터는 시키가미를 쓰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일본에선 고구려의 승려 혜자, 백제의 관륵 등 한반도에서 온 많은 지식인들도 음양사로 본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문을 읽어 술법을 부리고 병을 물리치는 주술사인 주금사(呪噤師)인데, 일본서기에도 577년 백제에서 일본에 보내 준 기술자 / 종교인 중에 주금사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아예 음양사같은 종교적인 직책을 가진 음양사가 태의감에 정식으로 소속되어 의사로 일을 하면서 병을 치료하는 업무도 했었다.
4. 요재지이 (포송령, 1670년대)
여러 가지로 재미있는 얘기가 많다. 일례로 여자가 출세하는 이야기나, 어떤 평범한 남자가 협녀와 엮인다는 이야기라든가,[2] 한 남자가 표류해서 식인귀들의 땅에 떨어져 식인귀 여자와 결혼했는데, 자식들은 중국에 와서 크게 성공한다거나, 한 남자가 전생의 인연으로 문소황후를 만났는데 조조는 며느리가 바람 피우니까 개의 모습으로 나와서 훼방을 놓는다거나,[3] 구주삼괴나 야구자 같은 독특한 중국 요괴도 나오고, 조선에 놀러간 남자가 신선들이 산다는 안기도에 놀러가는 등 대륙의 판타지 모음집이다.
방정환의 '효자가 된 호랑이'와 비슷한 이야기도 있다. 한 노인의 아들이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자 관리가 호랑이를 잡았는데, 관리가 "네가 진심으로 그녀의 아들로 살아간다면 용서해주겠다."라고 말하자 호랑이는 정말로 노파에게 짐승을 잡아다 주며 자식처럼 노파를 봉양하였다. 시간이 흘러 노파가 죽자 호랑이는 사람이 통곡하듯이 크게 울부짖고 어디론가 떠났다는 것.
하지만 단연 많이 나오는 것은 여우나 귀신, 요괴 등과 관계하는 이야기이다. 대체로 남자가 길을 가다가 여자를 만나고 사랑을 나누다가 여우나 귀신임을 알아차리지만, 남자의 반응은 열에 아홉은 여자가 사람이 아니지만 어쨌든 예쁘니까 상관없음. [4] 이렇게 연을 맺었으니 당연히 배드엔딩으로 끝나는 이야기는 별로 없다. 애초에 여기 등장하는 여우와 귀신, 요괴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고 개념충만하다.
그리고 왠지 귀신인 여자가 멀쩡히 돌아다니고 다른 사람의 눈에도 잘만 보이며 상견례 후 혼인까지 한 다음에 애도 낳아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엔딩이 거의 대부분. [5]
이외에 기생인 줄 알고 좋아서 안아봤더니 남자라 실망했는데 어찌어찌 말이 통해서 친구가 되었다거나, 모태 고자였던 남정네가 여우가 준 약으로 고자 신세에서 탈출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처벌로 나비를 바치게 하는 관리에게 복수를 하겠다며 모자에 흰 꽃을 달아놓은 걸 깜빡하게 만들어 다음 날 온 상관에게 꾸중을 듣게 하는 귀여운 나비 귀신도 나온다. 어찌되었든 고전적인 동양 기담을 읽고 싶다면 추천.
요괴나 어리석은 사람을 빌어 우회적으로 현실 비판을 하는 얘기도 상당히 많다. 포송령은 과부들이 정절을 지키는 이야기를 두고 칭찬도 비난도 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지만, 세월이 가는 줄도 모르고 베를 짜며 사는 과부의 정절을 조롱한 적이 있다.[6] 이 외에도 고장에서 명망있는 사람들의 전기를 편찬한 신사층들도 비웃었다.
괴담이나 기괴한 이야기 외에도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화 혹은 과연 정말 이랬을까 싶은 믿거나 말거나 일화들도 나와 있다. 가령 필리핀에서 표류해 온 표류객 이야기, 개구리 실로폰, 청대에 태국에서 진짜 사자가 들어왔을 때 이야기[7], 무능한 남편을 대신해 남장을 하고 과거를 봐서 장원으로 합격한 뒤 시부모도 벼슬을 받는 혜택을 누리게 한 여인, 수간을 하다 잡혀 사지가 찢겨 죽은 개와 여인[8]
동성애와 관련된 단편도 있다.[9] 첩이 된 남자(人妖)편의 내용으로 여장을 하고 부녀자를 강간하려고 한 자에 대한 평이다. 다른 이야기, 남첩(男妾)의 내용을 보면 소년을 여장시켜 첩으로 판 노파가 등장하는데, 그에 대한 포송령의 평은 다음과 같다. "지음을 만난다면, 남위(男妾)[10]와도 바꾸지 않으리라. 무식한 노파 같으니, 왜 굳이 사기를 쳤는가!" [11]
요재지이에서는 중국인들의 세계관이 드러난다. 산해경과 더불어 조선은 비교적 좋은 이미지로 나온다. 보이쉬한 조선 여인도 등장[12]. 조선이 공간적 배경으로 나오는 이야기도 있는데 신선이 사는 곳이 있다고도 했다[13]. 그 외에 죽은 사람도 산 사람의 음식을 먹다보면 다시 인간이 된다는, 아주 기발한 언데드 처리법도 나온다.[14]
김용과 더불어 20세기 말 가장 뛰어난 무협 소설가로 손꼽혔던 고룡의 소설 작법과 사상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친 책이라고 평가받는다. 서술이나 전개방식은 서양 근대문학과 영화의 기법이지만, 괴사건을 해결하며 맺혔던 은원을 하나씩 풀어가는 전개는 일반적인 서양 소설보다는 요재지이와 더욱 비슷하다. 혹자는 김용이 중국인들의 낮의 세계를 그려냈다면, 고룡은 중국인들의 밤의 세계를 그려냈다고 평했다.
프란츠 카프카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도 읽고서 감명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손오공 항목에는 요재지이의 손오공 사당 이야기가 나온다.
- 그 유명한 영화 천녀유혼이 '섭소천' 편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
- 2008년에 개봉한 중국 영화 '화피(畵皮)'도 같은 제목의 에피소드[15]를 배경으로 만든 작품이다.
- 2010년 6월부터 한 달 동안 홍콩에서는 25부작 드라마인 '포송령'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 2011년에 개봉한 화벽도 요재지이에서 나온 벽화 속 여인 이야기를 원전으로 한 것이다.
- 소설가 이문열은 "소설가 지망생이라면 한 번쯤 일독해 볼 것"을 권하기도 했다.
- 일본의 소설가 야스오카 쇼타로(安岡章太郎)가, 저자 포송령의 마흔 살 가까이 과거시험에 얽매였던 인생을 자기 삶에 대입하여 쓴 사소설인, 사설요재지이(私設聊齋志異)가 있다.
- 웹툰 난약이 요재지이 '섭소천'편을 원저로 하고 있다.
- 프랑스의 프렐조카쥬 발레단이 2017년에 초연한 '프레스코화' 라는 70분 짜리 무용극의 스토리는 요재지이의 '벽화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림의 여인에 반해 그림 속 세계로 들어간 남주는 물론 장수들로 인해 쫓겨나는 것까지 판박이.
5. 게게게의 키타로 (1968-9)
요괴만화의 고전으로 현존하는 모든 일본 요괴를 다룬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원조이자 일본 요괴만화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현대의 일본 요괴물에서 미즈키 시게루와 이 만화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오늘날의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요괴의 이미지는, 이 작품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3] 그야말로 세대를 초월한 일본의 국민 만화 중 하나로 오랜 시간에 걸쳐 애니메이션화되며 높은 지지를 얻고 있는 작품이다.원작 만화는 다양한 연재처와 출판사에서 나와 상당한 분량을 자랑한다. 시리즈마다 작풍도 다르고 설정도 통일되지 않는데 자세한 것은 아래 연재 이력 문단을 참고. 원래는 만화가 아니라 그림연극(紙芝居) 작품인 묘지의 키타로가 원조이며, 만화 잡지가 생기기 전에 태어났기 때문에 초기에는 대본소에서 유통되는 만화였다. 소년지에 연재를 시작하고 묘지의 키타로가 애니메이션화되면서 '묘지'라는 단어가 어린아이에게 부적절한 느낌을 준다는 이유로 게게게로 바뀌었다. 작풍도 대본소 시절의 호러만화에서 소년만화 색채가 강해졌고, 애니메이션 역시 아동용 애니 시리즈가 되었다.
연재판 '게게게의 키타로' 그림체는 미즈키 시게루가 '테레비군'으로 잡지에 데뷔할 당시 어린이들에게 접근하기 쉬운 그림체로 변경한 것으로, '묘지의 키타로' 원작 만화와 '악마군' 만화판에서 볼 수 있듯 그의 원래 그림체는 미국 코믹스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극화체에 가까웠다.
제목의 게게게는 작가 자신이 어렸을 적 이름을 시게루가 아닌 게게루로 잘못 불렀다는 데에서 유래했다는 후문이 있다.
6. 제도물어 (아라마타 히로시, 1983)
영화의 영어 제목은 Teito monogatari: Tokyo The last megalopolis
영화는 장장 2시간에 이르는 대작(!)으로, 당시 제작비가 10억엔 가까이 들었다고 한다.(일본 위키 참조)
영화의 원작은 '아라마타 히로시'가 적은 동명의 소설 '제도물어(테이토 모노가타리)'다.
소설의 경우, 팩션(팩트+픽션)+오컬트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외전 1편을 포함해서 총 13편 동안 100여년의 시간을 다루는 대서사시라고 한다.
'공작왕'을 전세계 오컬트의 종합선물이라고 한다면,
제도물어는 일본산 오컬트(중국의 영향도 충분히 받은)의 종합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위키에 따르면,
음양도, 식신, 풍수, 기문둔갑, 고독 등등의 대부분의 동양 오컬티즘을 기반으로 하는 일본식 오컬티즘(주술)의 체계가
이 작품 전후로 확립된 듯하다.
제도물어는 공작왕 뿐만이 아니라 이후 수많은 오컬트 작품에 영향을 주는데
만화에서는 클램프의 동경 바빌론과 X에도
소설에서는 유메무라 바쿠의 음양사에도(이 소설이 잡지부터 연재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1988년에 출판년도가 등록되어 있으니, 분명 제도물어의 영향을 받았을 듯 싶다. 위키에서도 바쿠가 제도물어를 언급하는 내용이 나오고. 허나 등장인물이자 실존 인물인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에 대한 이야기는 제도물어 이전에도 대단히 많았을 게 분명하다)
최근 소설로는 교고쿠 나츠히코의 교고쿠도 시리즈 등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위키 참조)
다만 이 제도물어의 경우
이야기 자체가 일본의 도쿄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고
일본의 역사를 어느 정도 알아야지 재미있는 감상이 가능하기에
왜색이 짙은 편이고(영화에서도 카토 자체가 군부의 상징 같이 보이니...)
이와 같은 이유로 한국에는 들어오기 힘들었을 듯하고, 앞으로도 힘들 듯하다.
원작의 1부 신령(神靈)편에서 4부 용동(龍動)편까지의 내용을 영상화한 영화의 내용은
메이지(1860년대말에서 1910년대 초) 15년, 도쿄, 아베노 세이메이의 후예인 '카토 마사노리'가 일본 역사의 실존 인물 중 하나인 '타이라 노 마사카도'의 원령을 깨워 그의 무덤을 움직여 도쿄를 파괴하려는 풍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모녀 2대를 걸친 무녀를 이용하려하자, 무녀의 주변 인물인 주인공들이 힘을 모아 그의 야욕을 제지하는 내용이다.
영상(품질이 아니라 촬영)이 1988년 작치고 나쁘지 않다.
자본이 많이 들어서 그런지 특수효과도 대단히 괜찮은 편이다.(1988년이란 걸 감안할 것)
음양사들이 다루는 식신, 풍수, 저주, 요괴, 기문둔갑, 요술 따위가 진언과 함께 계속 등장한 덕에 보는 내내 눈이 즐겁다.
게다가 초반부의 주인공들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쏠쏠하다.
한글 자막이 있었다면 더욱 더 즐거웠을 텐데 아쉽다.
7. 공작왕 (오기노 마코토, 1986)
퇴마물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 이후의 퇴마물 성격의 만화 및 소설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시대를 앞서간 중요한 작품이다. 80년대 퇴마물 붐의 시초이면서 이를 능가하는 작품이 현재까지도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일본식 퇴마물의 알파이자 오메가가 되었다. 이후의 퇴마/오컬트 물은 사실상 거의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공작왕이 정립한 패러다임의 안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이 분야에 있어 압도적인 위치에 있다.
일본 전래의 신화와 전설은 물론 인도의 신화, 티벳 밀교의 전승, 기독교의 성배전설 등등이 큰 골자를 이루고, 사이사이에 나치스 관련 음모론과 러시아의 괴승 그리고리 라스푸틴 등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전세계의 오컬트적인 콘텐츠를 상당히 많이 소재로 삼아, 각각의 종교, 신화적 연관성과 공통점을 들어 (물론 만화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상당히 설득력 있게 그려내었다. 각종 범어와 신들의 이름, 구자법 등이 난무하는 공작왕의 액션은 잔인하고 그로테스크한 특성을 여지없이 드러내 보여준다. 등장하는 요괴들의 모습은 원래도 징그럽지만 오기노 마코토 특유의 꼼꼼섬세하면서도 어찌 보면 신경질적인 정도로 잔선이 많이 가는 그림체 덕분에 더욱 괴기스럽고 추악하게 보인다.
다양한 종교와 신화/전설을 짜깁기했지만, 기본적으로 일본 진언종(구카이 대사를 개조로 하는 일본 불교의 분파), 실제로 존재하는 수인과 진언을 만화적인 상상력으로 변용한 밀교 주술에 근간을 두었다. 퇴마물에 마르고 닳도록 나오는 구자호신법(六甲秘祝) '임병투자개진열재전(臨兵鬪者皆陣列在前)'을 대중화(...)하기도 했다. 그 다음으로 널리 퍼트린 것은 "옴 바즈라 소와카"
한국에서는 퇴마록, 아일랜드등이 공작왕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작품이다.
8. 천녀유혼 (정소동/왕계지, 1987-1991)
寧採臣,浙人,性慷爽,廉隅自重。 每對人言:「生平無二色。」 適赴金華,至北郭,解裝蘭若。 寺中殿塔壯麗,然蓬蒿沒人,似絕行蹤。
영채신은 절강성 사람인데, 성격이 대범하고 행실이 올곧아서 몸가짐이 신중하였다. 매번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삶에서 두 여자란 없다." 하였다.[28] 언젠가 금화金華에 갔다가 외성의 북쪽北郭에 이르러 난야蘭若에 짐을 풀었다. 절寺 안의 전각과 탑은 크고 아름다웠으나, 쑥대가 사람을 뒤덮어버릴 지경이었으므로 (오래 전부터 절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긴 듯하였다.《요재지이》 권2 〈섭소천聶小倩〉편 첫머리
영채신이 절강성(浙江省) 사람이라 하였는데 오늘날 중국의 저장성이고, 그가 금화(金華)에 갔다고 하였는데 저장성의 진화시(金华市)를 가리킨다.
기본적으로 동양 괴기물이지만, 신비로운 영상미와 음악,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잘 어우러진 명작이다. 원한을 맺고 죽은 귀신과 현세에서 고통받는 인간의 애절한 삶을 조명하면서, 사람의 진실한 사랑과 양심을 통해 산 자와 죽은 자가 모두 구원받는 해원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삼았다. 문헌 등을 통해 전해지는 전통적인 동양의 신의 세계를 매우 잘 표현했고, 현세와 내세가 서로 이어져있다는 세계 각지의 보편적인 믿음을 예술적으로 잘 그려냈다.
본 작품 《천녀유혼》은 홍콩영화 역사상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영웅본색과 함께 홍콩 영화의 정점을 찍었다. 특히 왕조현이 연기한 주인공 섭소천은 지금까지도 영화 사상 가장 아름답고 신비한 캐릭터로 남았다.
9. 제괴지이 (모로호시 다이지로, 1989-2011)
2010년대 현재 단행본으로 4권까지 나왔다.
국내에는 과거 창작미디어를 통해 3권까지, 이후 시공사를 통해 4권까지 정식 출간되었다.
중국 북송 시대를 무대로 요괴와 귀신 등 보통 사람은 볼 수 없는 존재가 보이는 소년 아귀와 그의 스승이자 고명한 도사인 오행선생이 온갖 기괴한 사건들과 마주친다는 이야기. 제21회 일본만화가협회상 우수상을 (공동) 수상한 단편집 이계록이 그 전신으로, 원래는 서로 별 상관없는 별도의 단편 시리즈였다가 어찌어찌 통합되었다.
얼핏 보기에는 청나라 포송령의 요재지이를 떠올리게 하나 작가에 의하면 요재지이에게서 받은 영향은 나중에 시리즈를 통합하면서 지은 제목 정도 뿐, 실제로는 위진남북조시대 수신기 등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제갈각이 쌩뚱맞은데서 나오는 스토리도 있고. (실제 역사와는 매우 다른 방식의 끔살로 끝난다.)
아무튼 초반에는 중국 기담 풍 단편집이었으나 3권쯤 들어서면서부터 당나라 시절의 도참서인 추배도(推背圖)[1]를 둘러싼 커다란 스토리가 진행되려는가 싶더니 연재지가 폐간되는 바람에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았다. 이 스토리는 2011년 일본에서 출간된 제괴지이 제3집 연견귀편에서 일단 완결되었다.[2][스포일러] 국내에 소개될 수 있을지는 기약이 없다. 다만 정발은 아니지만 디씨인사이드 만화갤러리에 완결편이 번역되어있다. 링크참고. https://m.dcinside.com/board/comic_new3/1426457
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기담 모음집인 1, 2권의 퀄리티는 굉장히 높으므로[4] 언젠가 완결이 될 때까지는 그냥 1, 2권만 보고 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지도?
참고로 창작미디어판의 번역 질은 영 좋지가 않다. 박지원의 호질에도 나오는 창귀를 그냥 '미친 귀신'으로 번역하질 않나, 수호전에 나오는 무송을 일본어 발음을 차용해 '부쇼'라고 적어놓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의 스테디셀링에 고무된 시공사에서 그 후속타로 본작을 야심차게 내놓았다가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한 실적 탓에[5] 결국 서유요원전의 정발을 포기했다는 소문이 있다 카더라.
미야자키 하야오는 80년대에 여러 번 다이지로를 언급하며 무척 좋아하는 작가라고 말하며 높게 평가했다. 일본 위키피디아에는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적혀져 있는데, 직접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 발언은 찾을 수 없다. 그런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코믹스판 같은 작품을 보면 필법 면에서 꽤 비슷한 구석이 있으며, 투르크의 황제가 수명연장에 실패해 녹아버리는 장면이나 슈와의 묘소 및 히드라, 거신병 등 꺼림직한 괴생물들의 비쥬얼 등에서 모로호시의 영향을 볼 수 있다. 마녀 배달부 키키의 콘티에는 소녀 화가 우르슬라의 그림에는 '모로호시 다이지로 풍'이라고 주문을 달았다. 안노에 의하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제작에 참여하고 있을 때, 자신의 책상에 모로호시의 책이 꽂혀져 있었는데,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것을 보고 "이것 읽었어?"라며 "여기가 재미있다."며 설명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 중 몇 개는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작품 '머드맨'과 비슷한 장면이 꽤 있으며 모노노케 히메가 특히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영향이 강하다. #, #
10. 육조괴담 (채치충, 1990)
11. 우부메의 여름 (교고쿠 나츠히코, 1994)
12. 포켓몬스터 (다지리 사토시, 1996-)
다지리 사토시(田尻智, 1965년 8월 28일 ~ )는 일본의 게임 개발자이며, 주식회사 게임 프리크의 대표이사 겸 사장이다. '포켓몬스터'의 창작자이기도 하다. 포켓몬스터(어드밴스 제네레이션(AG) 포함)의 TV 및 극장판 애니메이션에서는 반드시 크레딧에 '원안(原案) 다지리 사토시'라고 이름이 올라간다.
경력
유년기
도쿄도 세타가야구에서 태어난 그는 소년 시절을 마치다시에서 보냈다. 당시 내성적인 성격을 가졌던 그는 산과 들, 냇가나 방공호의 흔적, 폐허까지 놀러다니며 곤충을 시작으로 생물의 관찰, 채집을 즐겼다. 도감에서 지식을 얻는 것 뿐만 아니라 수집하고 사육하는 것에 재미를 붙인 그는 학급에서 '곤충박사'로 불렸다. 이 때의 경험은 포켓몬스터를 만들어내는 큰 원동력이 되었다고 후에 회고했다. 그때 그가 가장 좋아하는 몬스터는 발챙이(ニョロモ, 뇨로모), 슈륙챙이(ニョロゾ, 뇨로조)라고도 했다. 이는 올챙이를 모티브로 했다.
그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는 마치다 시도 개발이 이뤄지며, 뛰어놀았던 자연도 모습을 바꾸어 좋아하던 벌레들도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근처에 오락실이 등장하게 된 것도 이 시기였다. 꿈을 잃어버렸던 그 때쯤 친구가 유행이 다 지나고 마지막 남은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그에게 플레이시켜준 것이 터닝 포인트가 되어, 그 이후 게임에 빠져버린다. 당시는 조금 언더그라운드적인 이미지가 떠돌았던 오락실에 날마다 발을 옮기고, 적은 용돈을 게임에 쏟아부었다. '오락실 난동꾼'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그다지 오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