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코르뷔지에가 살던 파리의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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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주의 화가의 그림 같은 방
작은 벽난로를 중심으로 구성한 거실은 마치 추상화 같다. 거실 조명은 르 코르뷔지에가 이 아파트에 맞게 디자인한 ‘아플리크 드 마르세유’, Nemo Lighting.
(왼쪽) 건축적 공간의 산책길
아파트와 아틀리에 사이에 있는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옥상 정원에 다다른다. 큰 회전문은 너무 가벼워서 손가락으로도 가볍게 밀 수 있다.
(오른쪽) 완벽한 구성
르 코르뷔지에가 샤를로트 페리앙, 피에르 잔느레와 함께 디자인한 라운지 체어 LC4의 옆모습. Cassina.
(왼쪽) 빛을 마주한 공간
아틀리에와 떨어져 있는 서재 공간. 암체어는 No.9, Thonet.
(오른쪽) 디자인 제품과 조각 작품
아틀리에에서 볼 수 있는 르 코르뷔지에의 조각 작품 ‘라 메르(La Mer; 1964)’와 스탠드 조명 365(본래 1954년 인도 찬디가르의 고등법원 건물을 위해 디자인했다). 서랍장은 시계상이 쓰던 것으로 르 코르뷔지에의 고향인 라 쇼드퐁에서 가져온 것이다.
소재의 언어
천장이 둥근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 그는 돌과 벽돌이 그대로 노출된 아틀리에의 벽 앞에서 사진 찍히기를 좋아했다. 조각 작품처럼 보이는 황동 조명 에스카르고(Escargot)는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Nemo Lighting. 이젤 위에 있는 ‘여러 개의 사물이 있는 정물화(Nature morte aux nombreux objets)’는 르 코르뷔지에가 1923년 그린 그림으로 ‘Jeanneret’라는 사인이 적혀 있다(그가 르 코르뷔지에라는 이름을 쓰기 전이다).
컬러가 주는 강렬함
다이닝 룸. 영안실 테이블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대리석 테이블에는 르 코르뷔지에가 정말 좋아했던 토넷의 No.9 암체어를 놓았다. 통창 가운데에 여러 가지 컬러의 유리를 그림처럼 삽입했다.
(왼쪽) 아이코닉한 가구
앞에 보이는 암체어 ‘그랑 콩포르’는 르 코르뷔지에가 샤를로트 페리앙, 피에르 잔느레와 함께 디자인했다. 암체어 위의 벽에 달린 조명은 원래 마르세유의 유니테 다비타시옹(l’Unite d’Habitation; 집합 주택)을 위해 디자인한 제품이다.
(오른쪽) 기능을 우선시한 당대의 혁신적인 부엌
상자 형태의 가구를 짜 넣은 부엌은 샤를로트 페리앙 작품.
(왼쪽) 엄격한 데커레이션
침실에는 바닥에서 떠 있는 침대가 있다. 침대 헤드보드는 비행기 날개로 만든 것. 벽등은 프로젝퇴르 165(Projecteur 165), Nemo Lighting.
(오른쪽) 돋보이는 창의성
르 코르뷔지에는 침실의 회전문과 옷장을 결합시켰다. 옷장 위의 벽에는 튜브 끝에 심플한 전구를 달아 미니멀한 조명을 설치했다.
꿀색 나무로 마감한 방
옥상 테라스에 있는 게스트 룸은 나무로 마감했다. 집게 조명은 165, Nemo Lighting.
기하학적인 반사
침실과 화장실을 나누는 벽의 곡선을 따라 계산된 크기로 배치한 화장대.
“난롯가에 이본느를 위해 긴 의자를 놓았어요. 사람 사는 집처럼 안락한 분위기를 냈지요. 이본느가 기뻐해요. 마침내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됐어요.” 르 코르뷔지에가 1934년 지인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이다. 파리 서부 외곽에 있는 불로뉴 숲 근처에 자리한 아파트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친근한 일상과 만날 수 있다. 집 안 곳곳에 붙어 있는 사진들, 사용한 그대로 보존된 흔적들. 그의 유령이 아직도 이곳을 배회하고 있는 듯하다. 거실에는 자크 립시츠의 조각 작품과 아프리카 마스크, 앙리 로랑의 브론즈 작품 그리고 페르낭 레제와 피카소의 작품이 있다. 다이닝 룸에는 르 코르뷔지에가 알제리에서 주문 제작한 빨간색 양털 태피스트리가 깔려 있다. 바닥 전체에 깔린 흰색 타일은 공간에 통일성을 준다. 이렇듯 이 집의 모든 데커레이션 요소들은 르 코르뷔지에가 창조한 합리적인 인테리어(그의 부인이었던 이본느는 이 집이 충분히 다정하지도, 여성스럽지도 않다고 생각했지만)에 어떤 영혼을 부여한다. 극심한 실용주의자였던 르 코르뷔지에는 현대의 집들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게 하는 데 의심할 여지 없이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의 집들은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현재도 늘어서 있는 모습 그대로 휘황찬란한 장식과 고풍스러운 르네상스 시대 건물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시에는 건물 외관에 아무런 장식도 없는, 집 안 동선을 기능에 따라 디자인한 집은 유럽 어디에도 없었다. 샤를 에두아르 잔느레(르 코르뷔지에의 본명)는 모로코 출신의 모델 이본느 갈리와 1931년에 결혼한 후 함께 이 집에서 살다가 1965년에 생을 마감했다. 자식이 없었던 그는 자신이 죽은 뒤 작품과 아카이브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했다. 르 코르뷔지에 재단은 이 독특한 공간을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하면서 대중에게 공개하고, 그의 정신을 엄격하게 존중하는 선에서 그가 디자인한 제품의 리에디션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강철 튜브로 만든 가구는 카시나(Cassina)에서, 조명은 네모 라이팅(Nemo Lighting)에서 생산, 판매하고 있다. 긴 흔들의자 ‘LC4’와 암체어 ‘그랑 콩포르(Grand Confort)’ 그리고 ‘랑프 드 마르세유(Lampe de Marseille)’ 같은 몇몇 아이코닉한 작품들의 오리지널 가구들은 이 유명한 집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세상에 아파트란 것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르 코르뷔지에는 그의 사촌 피에르 잔느레와 함께 이곳에 주거를 위한 고층 건물을 지었다. 그는 이 건물 중 꼭대기 두 층과 옥상을 썼다. 문을 열면 아파트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벽 사이사이에 분할된 창문이 아닌, 가로로 쭉 연결된 통창을 통해 바깥을 완벽하게 내다볼 수 있다. 이 집을 완성할 당시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유동적인 공간 구성, 그 안에서의 자유로운 동선이었다. 자유로운 해석의 여지를 위해 컬러를 칠한 작은 창문 하나(식탁에 앉았을 때 눈높이에 맞는 창문 하나를 마치 그림처럼 원색으로 칠했다)를 제외하고는 모든 벽에 리폴린(Ripolin)의 흰색 페인트를 칠했다.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넓지 않지만 아늑한 거실이 있고, 거실보다 넓은 다이닝 룸이 집 안의 중심이며, 천장을 3.5m까지 둥글게 올려 돔 형태의 넓은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아틀리에가 있다. 그렇다면 침실과 부엌은? 침실과 부엌이 넓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 르 코르뷔지에는 오로지 ‘기능’에만 충실하도록 최소의 공간에 침실과 부엌을 배치했다. 침실은 마치 병실(?)을 연상케 하듯 집 가장 안쪽 구석에 있고, 장식적 요소 없이 덩그러니 침대와 옷장을 놓았다. 게다가 침대는 기다란 다리 위의 85cm 높이에 황당하게 떠 있다. 이는 침대에 누웠을 때 창밖을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 것으로 르 코르뷔지에의 창과 그 너머 풍경에 대한 집착의 결과인데, 아내 이본느는 이 침대를 증오했다고 한다. 부엌은 흡사 실험실처럼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든 일체형 조리대와 선반이 들어서 있다. 이 부엌 가구를 샤를로트 페리앙이 디자인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지만 당시 부엌은 오직 조리를 위한 다용도실 같은 개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르 코르뷔지에의 삶에서 수면이나 요리보다 중요한 것은 그림이었다. 순수주의 화가 오젠팡을 통해 그림에 입문한 그는 ‘참을성 있는 탐구를 위한 아틀리에’라는 이름을 붙인 자신의 작업실에서 빈틈없는 실용주의와 완벽주의를 잠시 내려놓고 매일 아침 순수의 세계로 날아갔다. 르 코르뷔지에 사망 50주기를 맞아 이 역사적인 아파트는 여전히 잘 보존되고 있음에도 그 가치와 본래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구현하기 위해 레너베이션을 실시할 예정이다. 그러고 나면 지금 시대의 아파트와 빌딩에 쓰이는 거의 모든 기술력을 실현한, 모던 건축의 정수를 볼 수 있는 최초의 집은 영원으로 가는 오랜 생명력을 얻게 될 것이다. 현대적인 방식의 고층 건물에서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 모두는 르 코르뷔지에에게 어느 정도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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