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회화의 중심이 르네상스 이후 이태리에서 프랑스로 넘어온 것은 국가적 제도 (미술 아카데미)의 역할이 컸다 by sovidence; 산업혁명에 영국의 왕립협회가 큰 역할을 끼친 것도 마찬가지; 한 명의 탁월한 개인보다는 시스템이 더 중요하다

 

출처: https://sovidence.tistory.com/1234 [SOVIDENCE:티스토리]

 

 

회화의 중심이 미국으로 넘어오기 전에 유럽의 회화는 이태리, 프랑스(그 중에서 파리), 그리고 네덜란드의 3개 국에서 발전한 듯 하다. 르네상스이후 회화의 중심은 이태리였는데, 프랑스는 후발주자로 이태리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 노력 중 하나가 미술 아카데미라고 미술가 양성 국가 제도를 만든거다. 미술 아카데미를 만든 후 프랑스 미술이 거의 이태리 미술에 버금가게 발전했다. 그냥 회화를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살롱(전)이라는 극심한 경쟁 제도까지 만들었다. 1년에 1명 선발해서 이태리 유학도 보내주고. 미술 아카데미에서 강조했던 내용이 알흠다운 순수 회화였던 것도 아니다. 당시 지배 이데올리기와 권력가의 구미를 맞는 그림을 그리고 이들의 선전도구 역할을 미술 아카데미보다 더 충실하게 실현한 곳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따라쟁이 프랑스가 회화의 중심이 된 것은 인상파 이후다. 인상주의는 아카데미 미술에 반발한 일련의 프랑스 기반 화가들이 새로 발전시킨 사조다. 인상파가 아카데미와 살롱에서 홀대받던건 너무 유명한 얘기다. 자기 그림이 안팔려서 자괴감을 느끼는 고흐의 한탄은 정말... 인상파의 대부 마네는 살롱전에 끝까지 한 자리 낄려고 노력했지만.

 

인상파의 등장에 감명받아서 예전에는 역시 기성 시스템으로는 안되고 혁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국가가 나서서 인위적으로 회화를 교육해서 미술 기반을 단단하게 만들었던 아카데미 미술 없이 과연 프랑스에서 인상파가 나올 수 있었을까?

 

질문을 슬쩍 바꿔보면, 기존 지식을 상당한 수준으로 습득한 일군의 무리없이 새로운 돌파구, 창조성이 나올 수 있는가? 창조성의 토대(=질적변화)는 기존 지식 내지는 사조의 완성도를 갖춘 일군의 무리(=양적기반)가 아니냐는거다. 

 

 

 

Ps. 이태리, 프랑스에 더하여 네덜란드가 끼는 이유는 이 지역의 상업발전 덕분이다. 부르조아들이 돈이 많아지면서 세속적이고 보통 사람(= 부르조아 자신들 포함)을 그리는 전통이 여기서 나온다. 그럼 도대체 왜 영국은 미술에서 이렇게 내세울게 없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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