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어른: 혼네와 다테마에 문화로 보는 일본의 나와 타인의 구별짓기; 구별짓고 프라이버시를 중시하지만 타인과 교감을 하고 싶기에 야동, 노조키베야, 몰래카메라 등 '엿보기' 문화가 발달했다; 일본의 야동과 한국의 먹방; 한국은 밥상 문화 - 조선시대 때보듯 밥을 엄청 많이 먹었고, '먹는다'는 표현을 다양한 관용어로 쓰며, 한국인의 흔한 인삿말도 '살인의 추억'의 그 유명한 대사처럼 밥먹었냐는 것 ㅡ 야동과 먹방의 공통점은 가장 원시적이고 내밀한 욕구이자 대인관계에서의 매개체; 연애를 할 때도 원거리에서 점차 근거리로 거리를 좁혀나가는 것이 일본 남성의 스타일; 한국의 하회탈과 일본의 노멘 ㅡ 노멘은 표현이 절제되고 고정되어 있다; 한국의 역동적이고 감정적인 다양한 욕설과 대비되는 일본의 초라한(?) 욕문화 ㅡ 심한 욕이라봤자 말과 사슴이라는 뜻의 '바가야로'와 똥을 뜻하는 '쿠소' 정도; 한국 욕은 그 표현이 다양할 뿐 아니라 다채로운 조합이 가능하다 ㅡ 개xx, 성기 (니미, 시발), 질병 (염병할), 형벌 (우라질, 육시랄, 젠장) 관련 욕이 그 예로, '젠장'은 제기+난장의 합성어로 니 아기를 마구 때리는 것을 의미; 체면과 명예를 중시하는 일본의 감추기 문화는 국가적 차원에서도 확대재생산된다 ㅡ 2019년 봉준호의 '기생충'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따른 대대적 언론보도 및 청와대 만찬과 대비되는 2018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 황금종려상 수상과 일본의 냉대 ㅡ 일본의 치부를 드러냈기 때문; 일본인이 몽환적인 특성의 애니메이션에 빠지는 이유는 인간관계 갈등에 대한 회피심리
1.
한국 사람들은 ‘말을 씹는다, 말이 먹힌다’와 같은 말을 쓰잖나. 한국 사람들은 음식만 먹는 게 아니라 나이도 먹고, 심지어 욕도 먹어요. 그리고 월드컵 때 어땠어요? 한 점 잃었다고 하지 않고 한 점 먹었다고 하지. 돈 문제를 이야기할 때도, ‘이거 얼마 먹혔어?’ 하잖나. 감동도 먹었다고도 하고. 이런 한국 사람들을 두고 옛날에는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모든 것을 먹는다고 했겠나 그랬지. 그러나 그게 아니지. 씹는 것. 너와 내가 하나로 되고 싶은 욕망. 이게 어는 민족보다 강해서 그런 표현이 나온 거요.
- 이어령 <유쾌한 창조> p.225
2.
새해가 되면 떡국을 먹는다. 그리고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 같은 동양 문화권인데도 중국 사람들은 나이를 첨(添)한다고 하고 일본 사람들은 도루(取)한다고 하는데 유독 우리만이 먹는다고 한다. 이 지구상에는 3000종 이상의 언어가 있다고 하지만 나이를 밥처럼 먹는다고 하는 민족은 아마 우리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되는지를 묻는 환자에게 "나이만 먹지 말고 다 먹어라"고 했다는 어느 의사의 이야기는 한국인만이 웃을 수 있는 우스갯소리다.
시간을 상징하는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먹어버린다. 하지만 한국인은 매년 설이 되면 자식까지 삼켜버린다는 그 무시무시한 크로노스를 먹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 음식이나 시간만이 아니다. 마음도 먹는다고 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한국인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 돈도 떼어먹고 욕도 얻어먹고 때로는 챔피언도 먹는다. 전 세계가 한 점 잃었다(lost)고 하는 축구경기에서도 우리 붉은 악마는 한 골 먹었다고 한다. 모든 층위에서 먹는다는 말은 유효하다. 심리적으로는 겁을 먹고 애를 먹는다. 소통 행위에서는 "말이 먹힌다" "안 먹힌다"고 하고 경제 면에서는 경비를 먹거나 먹혔다고 한다. 심지어 성애의 차원에서는 따먹었다는 말까지 등장한다. (중략)
컴퓨터가 만들어 내는 가상현실(VR)의 삼차원 공간에서는 센서 글러브를 끼고 보조장치만 갖추면 실제 현실 그대로 보고 듣고 만지기도 한다. 이미 일본에서는 냄새까지 맡는 향기통신의 웹 사이트도 생겼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로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은 설날의 떡국 맛이다. 모든 감각을 모두 디지털화해 보낼 수 있지만 컴퓨터가 천 번 만 번 까무러쳐도 안 되는 것이 미각의 씹는 맛이다.
그러기에 애플 컴퓨터의 로고는 입으로 반쯤 저며 먹은 모양을 하고 있고 실리콘 밸리의 마돈나 킴 폴리제는 인터넷 쌍방향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그 이름을 커피 브랜드인 '자바'에서 따다 붙였다. PC방을 인터넷 카페라고 부르는 것처럼 모두가 먹을 수 없는 디지털 미디어에 미각 이미지를 보완하려는 고육지책의 산물이다. (중략)
디지털 혁명의 장밋빛이 조금씩 먹구름과 거품으로 변해가고 있다. 지금 양극화하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틈새에 다리를 놓아주는 누군가의 힘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새해가 되면 떡국과 함께 나이(시간)도 마음도 새로 먹는다는 한국인들이야말로 디지털의 공허한 가상현실을 갈비처럼 뜯어먹을 수 있는 어금니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사이버의 디지털 공동체와 식문화의 아날로그 공동체를 이어주는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 파워가 2006년 희망의 키워드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디지로그의 뉴 파워가 무엇인지 성급하게 묻지 말고 이번만은 차분히 함께 검증해 보지 않겠는가. 줄기세포처럼 정말 그런 것이 있기나 한 것인지, 그런 원천기술을 보유하고나 있는 것인지 더 이상 기대가 실망이 되고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일이 없도록 그야말로 큰 마음 먹고 시작해야 한다.[6]
-중앙일보, 2005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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