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투기자본과 캐나다: 미국과 전세계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이자 최우방국은 캐나다; 이는 전세계 모든 국가 중 거의 유일하게 ESTA를 면제해주고, 180일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심지어 출입국심사는 미국인과 같은 레인에서 심사한다; 1977년까지 캐나다 국민은 영국 국왕의 통치를 받는 영국인이었지만 피에르 트위로 총리 재임 기간에 헌법적으로 분리되었다; 단 캐나다의 국왕은 여전히 영연방의 수장인 영국 왕이다 (캐나다 내에서는 영국왕이 아닌, 캐나다의 국왕이라는 별도의 직위로 군림한다); 캐나다는 영국과 로스차일드의 나라에서, 1973년 록펠러-로스차일드 권력투쟁 이후, 미국과 록펠러의 나라로 말을 갈아탄 셈; 캐나다 총리 중 가장 재임기간이 길고,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여러 차례 총리를 지낸 윌리엄 라이언 메켄지 킹부터가 록펠러 2세의 친구기도 했다; 한국이 외국인에게 부여하는 무비자 체류일은 캐나다인이 모든 국가 중 최장인 180일로, 90일인 미국인보다 긴 까닭은, 캐나다의 미국의 최우방국+중립국 포지션 때문이 아닌가 싶다

 British subject status was the precursor to Canadian citizenship, which was created on 1 January 1947 with the passage of the Canadian Citizenship Act. Until then, people who were considered Canadian citizens were subjects of the British Empire.

 https://www.thecanadianencyclopedia.ca/en/article/british-subject-status

 

After Confederation into a Dominion within the British Empire in 1867, Canada was granted more autonomy over time and gradually became independent from the United Kingdom. Although Canadian citizens have no longer been British subjects since 1977, they continue to hold favoured status when residing in the UK.

https://en.wikipedia.org/wiki/Canadian_nationality_law 


이웃인 미국이나 모국 영국, 프랑스, 영연방 친구인 호주, 뉴질랜드, 서유럽 등지에는 대부분 무비자가 되며 미국 여권 소지자에게 까다로운 출입국 심사를 적용하는 중동이나 남미 국가에서도 캐나다 시민권자들에게는 매우 관대하게 적용하며, 입국 심사도 간단하다. 쿠바 역시 캐나다 시민권자들은 관광 목적으로도 자유롭게 갈 수 있다. 출국 전 관광비자만 받으면 되고 도착비자도 허용된다.

미국에 들어갈 경우 캐나다 시민권자들은 여권[2]만 들고 가면 된다. 즉 ESTA 발급 의무가 면제되는 것이다.[3] 

[3] 캐나다 시민권자에게 가장 중요한 혜택인게 ESTA 면제 혜택은 버뮤다, 케이먼 제도와 같은 영국령 해외영토, 팔라우, 미크로네시아 연방 시민권자 외에는 거의 없다고 봐야된다. 하물며 ESTA만 받아도 큰 혜택인데, 그것마저 없다는 건 진짜 대단한 혜택이다.

 
게다가 VWP가 아닌 별도의 협정으로 무비자 입국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제재 대상 국가[4]에 방문한 이력이 있어도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5] 국경에서는 여권 카드를 제출하면 프리패스다. 다른 국가 국민에게는 받는 지문캐나다인에게는 받지 않고 캐나다인은 I-94 입국신고서 작성 면제대상인데다, 미국인과 같은 레인에서 출입국심사를 받는다.

관광 뿐만 아니라 캐나다인들은 비이민 목적으로 미국에 올 경우 비자를 받지 않고도 입국 가능하다. 단 F-1 학생 비자의 경우 입학허가서 등을 지참해야 한다. 여권과 관련 서류를 준비해 미국에 도착하면 자동으로 비자가 나온다. 미국에서 학생 비자를 받고도 외국인이 아닌 미국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그래서 타블로스탠퍼드 대학교 재학 중 캐나다 시민권을 가졌다.[6]

캐나다 여권으로 단순 방문 및 관광목적으로 미국에 입국 시 1년에 최대 180일이 무비자 체류기간으로 보장되는데, 이 또한 출입국관리가 극도로 깐깐하기로 유명한 미국에서 외국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지위 중 최고 단계에 해당한다. 그리고 캐나다인들은 ESTA와 지문 수집, I-94 신고서 제시 면제 대상이고, 심지어 미국인과 같은 레인에서 심사한다.

파이브 아이즈에 가맹하는 미국의 1급 동맹국들인 영국, 호주, 뉴질랜드 3국 모두 영어권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무비자로 체류가능한 기간이 90일밖에 주어지지 않는 것과 ESTA 등록을 요구하는 것을 감안하면 미국으로부터 이웃 동맹국인 캐나다에게 주어지는 특혜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당히 긴 무비자 체류기간은 새로운 주거문화까지 탄생시켰는데, 캐나다인들이 추운 겨울시즌이 오면 캐나다 대신 캘리포니아, 하와이, 뉴멕시코 등 미국 남서부 지역이나 플로리다와 같은 미국 남동부 일부 지역으로 가서 장기간 미국에 체류하거나 여행하는 '스노우 버드'를 즐기게 된다.[7]

겨울 외에는 캐나다에 있다가 겨울이 되면 캘리포니아, 하와이, 플로리다미국 내 온난한 해안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 이탈리아, 튀르키예, 그리스, 키프로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에 가는 독일인, 영국인과 비슷하다.[8]

그러다 보니 미국이나 바하마, 버뮤다, 세인트 키츠 네비스, 바베이도스카리브해의 휴양지나 로스카보스나 칸쿤, 메리다멕시코 내 휴양지와 같은 곳에서는 캐나다의 다국적 은행인 TD 뱅크, RBC, 몬트리올 은행, 스코샤뱅크, CIBC의 지점이 진출하거나 해당 지역 부동산 관련 서비스들이 많다. 당연히 CBC, CTV도 해당 지역에 방송을 보낸다. 해당 지역에서도 캐나다인들은 중요한 고객이다.

미국 정부캐나다 시민권자들을 대상으로 TN 비자를 발급해주는데, 이는 미국 내에서 고용주들에게 잡 오퍼를 받는 캐나다인들에게 3년마다 갱신하는 것을 조건으로 무기한 미국에 체류하며 취업할 수 있게 해주는 특별 비자이다. 발급 기준이 까다롭고 쿼터가 부족해 추첨으로 뽑는 H1-B와 달리 TN 비자는 발급도 간단하고 쿼터가 넘쳐나기에 쉽게 승인이 된다.

미국외교공관에서만 신청이 가능한 타 비자와 달리 TN 비자는 미국 세관국경보호국이 운영하는 국경검문소에서 잡 오퍼만 있으면 바로 발급이 가능하고 갱신도 캐나다에 잠깐 갔다오다가 역시 국경검문소에서 하면 된다. TN 비자를 발급받아 미국에서 일하며 영주권으로 신분 전환도 할 수 있다.

영국의 경우도 캐나다인, 호주인, 뉴질랜드인들에게는 영연방 비자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조상 중 영국 국적자가 있는 경우에는 영국 정주권을 부여받을 수 있다. 물론 TN 비자에 비해서는 혜택이 적지만 캐나다인들은 타 국적 외국인과 달리 취업비자에서 더 유리한 조건으로 신청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데다 비자를 받으면 참정권 등 혜택도 주어진다.

영국 영주권이나 영국 시민권 취득 절차도 타 국적 외국인에 비해 간단한 편이다. 특히 브렉시트 이후 영국 내무부 측에서는 캐나다인, 호주인, 뉴질랜드인들에게도 TN 비자와 비슷한 비자를 발급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도 많은 캐나다인들이 영국에서 취업하기도 하고, 영국, 캐나다 이중국적자들도 많다.

북한에 방문할 경우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대우가 좋지 않다. 아무래도 미국에 땅을 대고 맞닿아 있어 미국의 최고 우방이라는 꼬리표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시민권자였던 임현수 목사 등이 억류된 적이 있다. 단 개개인의 억류와는 별개로 캐나다북한은 2001년 국교를 맺었다.

러시아에 방문을 하는 경우 단수 여행비자를 발급받는 데만 무려 170달러를 내야 한다. 아무래도 냉전시절 미국과 대립했던 역사 때문인지 미국의 우방국에게는 대우가 좋지 못하다. 사실 미국의 우방국임과 동시에 러시아를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는 한국 여권이 오히려 특이한 사례이다.

 

...

 

미국은 다른 나라와는 다른 방식의 비자 면제 정책을 취한다. 미국은 캐나다를 포함한 일부 영연방 국가 및 구 신탁통치령, 영국령 제도 이외에는 무비자 협정을 통한 비자 면제를 해주지 않는다. 대신 Visa Waiver Program이라는 제도를 운영하여 상호주의에 따른 비자 면제 정책을 취하고 있으며, 이 프로그램에 가입할 수 있는 국가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한 번 가입하더라도 그 나라의 치안 상태, 정치, 경제 상황 등에 따라 가입이 취소될 수 있다. 무비자 협정을 통해 비자 면제를 해주는 국가라면 어떤 방식으로 입국하든 여권만 들고 오면 되지만 미국 본토 Visa Waiver Program에 따른 비자 면제 혜택을 받는 국가는 ESTA를 사전 신청해야 한다.[9]

 
한국참여정부 시절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한국 국민의 미국 무비자 입국을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되어, 2008년부터 비자 발급 거부율이 3% 이하일 시에만 가입되었던 것이 10%로 완화되어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측과 양해각서를 체결하며 비자 면제 프로그램에 가입하였다. 당시 한국인의 미국 비자 거부율이 3%를 약간 넘어가는 수준이어서 한국을 비롯하여 체코, 에스토니아, 헝가리,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몰타, 슬로바키아의 8개 국가가 무난하게 새로운 미국 비자 면제 프로그램에 가입했다.[11]
 

다음은 미국의 무비자 협정 및 Visa Waiver Program의 대상국이다.

지역
협정
숫자
목록
CFA
3
180일
4+2
지역
VWP
숫자
목록
90일
5
2
32
1
1
칠레 국기
칠레
[32],
아르헨티나 국기
아르헨티나
(1996~2002),
우루과이 국기
우루과이
(1999~2003)

 

 

 

3.3. ESTA 면제 대상[편집]

  • 별도의 면제 협정을 적용받는 경우
    • 캐나다 국기 캐나다인(180일): 캐나다인은 여권 또는 정부발행 신분증[60]만으로, 버뮤다인은 여권만으로 180일간 자유롭게 미국을 왕래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지므로 ESTA가 필요없다. 캐나다 시민권자는 미국 비시민권자 중 가장 입국이 쉬우며 수상한 사람만 아니면 미국 시민권자 버금가게 거의 프리패스에 가까울 정도로 입국이 수월하지만, 캐나다인도 다른 비시민권자와 마찬가지로 오버스테이를 해버리면 얄짤 없다.
    • 바하마 국기 바하마 & 영국 국기 영국령 제도 국민(180일+서류): 바하마와 영국령 제도 일부는 여권과 경찰이 발급하는 무범죄증명서로 입국이 가능한 경우가 있다.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를 제외하면 모두 직항으로 제한되며 바하마는 사전입국심사대(preclearance)가 설치된 2개항만 적용된다. 케이먼 제도는 미국 공관에서 단수 면제서를 받고 수수료를 지불해야 된다.
    • 미크로네시아 연방 국기 미크로네시아 & 마셜 제도 국기 마셜제도 & 팔라우 국기 팔라우 국민(5년): 구 신탁통치령에 해당하는 COFA 협정국은 이동의 자유를 상호 보장하며 적어도 영주권 취득자격 충족에 소요되는 기간동안 체류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이들이 발급받는 I-94에는 진짜 5년 뒤 날짜가 찍혀나오며, 5년이 지나면 I-485 신분조정을 신청해 영주권자가 될 수 있다.
  • 유효한 사증을 소지한 경우
    • ESTA는 비자면제 프로그램인데 이미 다른 비이민 비자를 갖고 있다면 그 비자를 쓰면 되고 ESTA를 새로 받을 필요까지는 없다. 물론 비자가 있더라도 방문 목적에 맞도록 ESTA를 받아서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안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바람직한 일이다.
    • 한국인이 ESTA 대신에 B1/B2(상용/관광)비자를 받는 이유는, ESTA에 결격사유가 있거나 신청시 기타 사유로 거절당해 어쩔 수 없이 비자를 신청한 경우이다. ESTA 가능 국가 국민이 B1/B2 비자를 신청하면 대사관에서는 왜 굳이 ESTA 대신 B1/B2 비자를 신청하냐고 묻고, 대답을 제대로 못하면 비자발급을 거절한다. ESTA가 정상적으로 발급되는데도 B1/B2 비자를 신청하는 사람들의 십중팔구는 미국에 입국 후 신분변경을 하려는 목적을 숨기고 있기 떄문이다. 비자 발급이 거절되면 기존의 ESTA도 사용하지 못하게 뒤는 위험부담이 있다.
  • 자치권을 가진 미국 해외영토[61]에 대상 국적이 관광, 비즈니스 여행 목적으로 입국하는 경우
    • , 북마리아나 제도(사이판)에서는 관광 활성화를 위해 50개주, 워싱턴 DC, 푸에르토리코와는 별도의 무비자 제도를 실시한다. 호주, 브루나이, 중국북마리아나 한정 14일, 홍콩, 일본, 말레이시아, 나우루,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싱가포르, 한국, 대만직항·국민신분증 소지, 영국 시민에 한해 "괌-북마리아나제도연방 비자면제 프로그램(Guam-CNMI Visa Waiver Program)"을 시행하여 ESTA 대신 해당 제도를 이용하여 입국이 가능하다. 단, ESTA 없이 이 제도를 이용하여 괌 및 북마리아나 제도에 입국시 ESTA 체류기간보다 짧은 45일만 체류 가능하며, 이보다 길게 체류하려면 ESTA 또는 관광비자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해당 제도를 이용하면 하와이를 포함한 미국 본토에 입경할 수 없다.[62] 물론 ESTA를 이용하여도 괌, 북마리아나 제도에 관광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입국심사 속도가 빨라지는 장점이 있을 뿐더러 미국 본토로 나갈 수 있다.
    •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주민이 미국령 버진아일랜드를 방문하는 경우도 ESTA가 필요하지 않다.
    • 미국령 사모아는 ESTA가 면제되기보다는, ESTA가 소용없다고 보는게 정확하다. ESTA가 있어도 본토나 해외에서 미국령 사모아로 방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상 경로로 입국하거나 OK Board($20)를 48시간 전까지 취득하고 입국해야 된다. 물론 미국 본토인 호놀룰루를 경유해야 하므로 환승을 위해서라도 ESTA가 필요하긴 하다. ESTA 대상이 아닌 이스라엘 여권으로도 OK Board를 신청할 수 있지만[63]버뮤다·크로아티아·폴란드 여권으로는 OK Board를 신청할 수 없다.

      미국령 사모아는 USCIS의 관할 외이며 사증 정책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기에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미국 시민·국민의 경우 사증 정책의 제약을 받지 않으나, 미국 본토 영주권자는 미국령 사모아에 6개월 이상 거주시 영주권이 무효화될 수 있다.[64]
       
       
       

 

2.1. 총리 이전의 삶[편집]

온타리오 주 베를린(현재의 키치너)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스코틀랜드계이며, 독실한 장로교 신자들이었다.

1891년 토론토 대학교에 입학하여 학사과정을 마치고 1896년 오스굿홀 로스쿨에서 법학 학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졸업 후 아버지의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였다. 1897년에 토론토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시카고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그후 하버드 대학교에서 1898년에 정치경제학 석사과정을 마쳤고 1909년에는 하버드에서 동양인(특히 중국인)들은 서구 사회에 동화될 수 없기 때문에 받아들여선 안된다는 "동양인들의 캐나다 이민"("Oriental Immigration to Canada")을 연구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역대 캐나다 총리 중 아직까진 유일하게 박사 학위를 소유하고 있다.

1908년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이듬해인 1909년 7월 2일 노동부 장관이 되었다. 1919년 윌프리드 로리에 당대표가 사망하자 자유당 당수로 뽑혀 1921년 12월에 실시된 총선에서 승리하여 총리가 되었다.

 


2.3. 집권 2기[편집]

허나 아서 메이겐은 과반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조기총선을 치렀지만 캐나다 총독과의 갈등으로 지지표를 까먹으며 조기총선에서 패배했고, 이에 따라 매켄지 킹의 자유당은 다시 집권한다. 킹은 1926년 9월 25일에 다시 총리에 재임하여, 같은 해에 열린 대영제국 회의에서 캐나다의 자치권을 위한 싸움을 계속 하였다. 그 회의는 영국과 모든 자치령 사이에 동등한 지위를 가졌다는 성명을 채택하였다.

1927년 노인 연금의 실시와 함께 캐나다의 첫 연방 복지 계획이 시작되었다. 킹은 또한 실업 보험에 찬성하였으나, 1940년까지 모든 주들이 후원하는 데 확신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전 세계에 닥친 대공황에 의하여 캐나다에도 실업자들의 수가 늘어났다. 그 대책에 실패했고, 선거운동도 잘 먹히지 않아 1930년 총선에서 패하였고[1], 8월 7일에 다시 사임하였다.

 

3. 여담

 현재 통용되고 있는 캐나다 달러 50달러 지폐에는 그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이처럼 캐나다에서 업적을 인정받고 있는 총리지만, 한편으론 비판도 받는 굉장히 복합적인 인물이다. 일단 그는 현대 캐나다의 자주외교와 독립의 기틀을 만들었고, 2차세계대전 기간 캐나다를 미국과 함께 연합군의 전시경제를 돌리는 공업국가로 탈바꿈시켰다. 물론 이는 그만의 업적이라기보단 당시 자유당에 뛰어난 인물이 쏟아져 나온 시기와도 맞물리긴 했다. 그들 중 상당수를 발굴한게 킹이긴 하다만. 1920년대부터 40년대 초반까지 캐나다 자주외교노선을 설계한 O.D 스켈턴, 캐나다의 전시경제와 원자력, 석유산업을 구축한 C.D 하우, 전후 캐나다 외교노선을 추구한 12대 총리이자 변호사인 루이 생로랑, 평화유지군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레스터 피어슨과 60년대까지 캐나다 외무성을 진두지휘한 노먼 알렉산더르 로버트슨(Norman Alexander Robertson, 1904 ~ 1968) 등이 대표적.

허나 킹 자신의 몇몇 개인적인 성향은 오늘날 비판도 받는데, 일단 박사학위 논문부터가 아시아인, 특히 중국인 이민을 겨냥한 것이었고 총리 기간 중엔 대놓고 아시아인의 이민을 봉쇄했다. 오죽하면 스팀 창작모드에 역사적 모드로 아시아인 혐오주의자(...)라고 설명하는 모드가 올라올 정도. 유대인에 대해서도 편견이 있어서 홀로코스트를 피해 망명을 신청한 일부 유대인 난민들을 거부하기도 했다. 히틀러에 대해서도 초기엔 일종의 친근감을 표하며 면담도 했으나, 면담 이후 자기보다 더 미친 놈이라는걸 알고 비밀리에 전쟁 대비를 했다고 한다.

개인적인 취향도 상당히 특이해서, 귀신에 심취하거나[2]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자들을 자신의 집에 데려오는 등 황당한 일을 많이 감행했던 총리였다. 참고로 평생 독신으로 산 인물이다. 이러다보니 현대 캐나다에선 정신나간 이미지(...), 미국과의 경제, 군사적인 결합과 캐나다의 국력신장 등이 동시에 부각되어 굉장히 복합적인 인물평을 받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러다 보니 당시 각료들은 매켄지 킹의 기행을 국민들이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진땀을 빼야 했다고. 

 



미국보다 1개국 낮은 185개국에서 무비자가 적용이 된다. 참고로 캐나다 시민들은 대한민국에서 180일간 머무를 수 있는데, 이는 한국이 외국인들에게 부여하는 무비자 체류 일수 가운데 가장 긴 것이다.[14][15]

오히려 혈맹으로 불리는 미국보다 체류기간이 더 길다. 미국인도 대한민국에서 최장 90일만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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