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재] 시절인연의 신비에 대해

 

74세의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아내와 사별한지 4년이 지난 시점인 1823년 9월,

18세 소녀 울리케 폰 레베초를 짝사랑하게 된다.

 

차분한 성품의 울리케는 

막 소녀티를 벗고 은은한 여인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금발에 커다란 눈, 도톰한 입술을 한 인상적인 마스크에다 

호리호리한 몸매가 괴테의 마음을 훔쳤다.


결국 울리케는 괴테의 청혼을 거절하고,

괴테는 늘그막에 실연의 아픔을 겪게 되지만,

여기서 나는 한번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괴테가 만약 울리케를 1823년이 아닌

1813년에 만났다면 그녀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불가능했을 것이다.

울리케는 1813년에는 9살 코흘리개 어린아이였을 뿐이니까!



아니면 괴테가 1832년,

83세의 나이로 27세였던 울리케를 만났다면,

그녀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불가능했을 것이다.

괴테는 1832년에 사망하게 되니까!


우주의 시절인연은 1823년 9월,

이제 막 여인의 자태를 갖춘 울리케에게,

아직은 활동적이었던 노년의 괴테가 첫 눈에 반하도록,

시절인연을 조성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실연의 아픔을 바탕으로

괴테로 하여금 세계문학사에 길이 빛날 

‘마리엔바트의 비가’를 탄생시키게 한 것이다.

 

 

이번에는 루트비히 비트켄슈타인을 보자.


평생 금욕적 삶을 택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1930년에는 41살의 나이에 21살의 프란시스 스키너와,
1947년에는 58살의 나이에 19살의 벤 리처드와 사랑에 빠졌다.


프란시스 스키너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인 1941년

전쟁에서 사망했다.

 

그러니 1941년 이후라면

이 둘은 영원히 만나지 못했을 운명이었을 것이다.


또, 비트켄슈타인은 1951년 63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므로,

1947년에서 조금만 더 시기가 늦어졌다면,

그는 벤 리처드를 영영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비트켄슈타인은 죽기 4년 전에

벤 리처드를 만나 열렬히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을 두고

우주의 은총이라는 식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오다 카즈마사의 유명한 <도쿄 러브스토리>의 주제곡 가사처럼,

"그 날 그 시간 너를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들은 언제까지나 타인"이었던 운명인 것이다.

 

'그 날과 그 시간'에만 한시적으로 가능한 사랑과 만남의 신비는

신비하기 그지없다.

 

특히 사랑과 연애의 감정은 노년 시절보다는 젊은 시절에 더 중요한데,

그것은 젊은 시절에 사랑과 연애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압도적으로 더 많기 때문이다.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비슷한 시공간을 점유하며 살아가다가

같은 시공간에서 우연히 또는 필연적으로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거대한 우주의 신비이자 은총이다.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천생연분의 연인이 될 팔자라 해도,

이들이 서로 다른 시공간과 시절인연 속에서 만나게 된다면,

이를테면 한 사람은 10대에, 다른 한 사람은 80대에,

조우하게 된다면,

이들은 서로에 대한 왠지 모를 기묘한 호감과 애정을 느끼면서도

결국 맺어지지는 못할 것이다.


결론:

우주가 선사하는 이 거대하면서도 정교한 시절인연의 신비를

즐기며 살아가도록 하자.

 

앞으로 아로는 어떤 사람들과 시절인연이 맺어질까?

 

그것은 천기누설에 해당하므로 나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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