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성에 대한 탐구: 특권층이 아닌 특권자다, 상류층이 아닌 상류자다, 고학력층이 아닌 고학력자다


자연계에서 서열이 낮은 생명 종일수록

독자성은 약해지고 집단성은 강해져

집단의 본능에 맹목적으로 귀속되려는 성질이 강해진다.

 

곤충들이 특히 그렇다.

 

인간들 사이에서도 지능과 감정이 더 우월한 개체일수록

개성이 강해지고, 집단에 추종하려는 경향은 현저히 약해진다.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

"모든 지식인은 모더니스트이고, 모든 모더니스트는 개인주의자"라는

러프한 명제가 어느정도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모더니스트, 또는 지식인은, 자신의 두 눈과 두뇌만을 판단 지표로 삼아 사물을 해석할 뿐,

무리의 판단에 우왕좌왕 휘둘리는 것을 싫어한다.


독자성이 아로같이 한 극단에 이르게 되면,

일반적으로 대중들이 우월감의 표식으로 생각하는 사회학적 '구분짓기' 조차 하찮게 여기게 된다.

 

말하자면 '특권층', '상류층', '고학력층' 같은 각종 층(層) 역시 (전체 파이의 크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긴 하지만) 거대한 집단을 이루기 때문에, 자기 자신과는 일정한 거리감을 두게 되는 것이다.

 

층(層)이라는 접두사에 내포된 철학적 문제점은

그것이 단독자로서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하여, 나는 '특권층'이 아닌 '특권자'다.

'상류층'이 아닌 '상류자'다.

또한 '고학력층'이 아닌 '고학력자'다.

 

나는 80억 인류 중 단독자로서 특권자이고, 상류자이며, 고학력자 그 자체이지,

어떤 무리에 속해야만 그 독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억만장자를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억만장자라고 하면 사회경제학적으로 '상류층 중에서도 상류층'에 속하는 특권적 위치에 있는 계층이다. 대중들이 아주 선망하는 위치에 있는 계층이다.

 

그런데, 포브스지의 2022년 발표에 따르면, 전세계에는 약 2668명이나 되는 억만장자가 있다고 한다.

 

2668명이면 아로의 기준으로는 염병하게 많은 숫자다.

자기 자신이 그 수천명이나 되는 '억만장자의 계층'에 속한다는 사실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 면 그(녀)는 억만장자이기에 앞서 필시 좀 모자른 인간임이 분명하다.


정말로 위대한 인간이라면,

자기 자신이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하고,

전무후무하다는 사실에서 자부심을 느껴야지,

고작 2668명이나 되는 '계층'에 속한다는 사실로

뿌듯함을 느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물론 대중들은 그 본질상 하찮은 집단이기 때문에 결코 이렇게 생각하는 법이 없다.

억만장자는 커녕 백만장자만 되도 행복할 것이라고 말하는 병신들이 대중들 아니던가?

 

어쨌든 정명학적인 관점에서

내게 '특권층', '상류층' 또는 '고학력층' 같은 단어들은

그다지 듣기에 좋은 단어들은 아니다.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것을 지향하지 않는

모든 인간은 아로에게 있어 하찮은 인간일 뿐이다.

 

아로는 대중들이 너무 싫고, 너무 하찮기 때문에,

친구가 없다.

 

그래도 아로는 아로 자신의 독자성에 뿌듯함을 느낀다.


아로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 세상은 모두가 모두와 같은,

그러니까 비슷한 개성을 공유하는 얼간이들 뿐이었을 것 아닌가?

 

내가 존재함으로 인해서 그나마 독자적인 인간이 이 세상에 단 한명이라도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또는 인류의 집단무의식에, 끼친 가장 큰 기여는 아마 그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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