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04조 무역 적자 낸 일본, 해외 투자로 337조 벌어

 https://www.chosun.com/economy/economy_general/2023/06/15/EJ42LRGJVRBEJEY3SAHRFXRWF4/

 

 

1970~1980년대 워크맨과 도요타 자동차 등을 앞세워 전 세계 공산품 시장을 석권한 일본은 물건을 팔아 벌어들인 막대한 돈을 해외에 재투자했다. 종합상사들은 미국과 유럽, 동남아 등에 진출해 주식과 부동산을 사들이거나 공장을 짓고 해외 법인을 차리면서 경제 영토를 확장했다. 뉴욕을 상징하는 록펠러 센터가 일본 미쓰비시에 넘어가고 미국 대형 영화사인 컬럼비아 픽처스와 유니버설 픽처스가 일본 기업에 인수된 것도 이 무렵이다.

‘와타나베 부인’으로 상징되는 개인 투자자들도 여유 자금을 해외 주식에 투자하거나 외환 거래로 돈을 벌었다. 대규모 투자가 이익을 낳고, 이익을 다시 재투자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일본이 보유한 해외 자산은 1996년 2조6000억달러에서 지난해 말 9조9921억달러로 네 배가량으로 불어났다.

해외 투자 급증은 일본 경제에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영향을 동시에 남긴 ‘양날의 칼’로 작용했다. 우선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국내 제조업 공동화가 발생하고 일자리가 줄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 한몫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자동차 산업의 경우 1990년대에는 국내 생산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으나 2010년에는 해외 생산 비율이 58%에 달했다. 1999~2009년 10년간 일본 제조업체의 해외 법인 종업원이 42.6% 증가하는 동안 일본 내 종업원은 17.5% 감소했다.

반면 해외에 깔아 놓은 자산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 채무와 고령화, 장기 저성장, 낮은 노동 생산성, 에너지 수입국이라는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일본 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 독일 같은 경쟁국에 밀려 제조업 경쟁력을 상당히 상실한 데다 에너지를 거의 전량 해외 수입하는 구조여서 과거처럼 무역에서 많은 돈을 벌지 못한다. 지난해 일본은 에너지 가격 급등과 엔화 약세, 수출 감소 등이 겹쳐 사상 최대인 1600억달러(약 204조원) 무역수지 적자를 냈다. 지난해 우리나라 무역수지 적자(472억달러)의 세 배가량이다. 하지만 경상수지는 686억달러(약 88조원) 흑자를 냈다. 이자, 배당, 임금 등 명목으로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을 뜻하는 본원소득수지가 전년보다 22% 증가한 2639억달러(약 337조원)에 달한 덕분이다. 지난해 핀란드의 국내총생산(GDP·2520억달러)보다 많은 돈을 앉아서 해외 투자로 벌어들인 셈이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229억달러)의 10배가 넘는다.

제조업이 해외로 빠져나간 빈자리를 서비스업이 대체하면서 일본 경제의 내수 비율은 더욱 높아졌다. 수출입 의존도가 낮아져 글로벌 경제 위기가 발생해도 일본 경제가 받는 충격이 완화되는 효과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해외 자산 투자로 수익을 내 국민소득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상품이나 서비스 수출로도 꾸준히 돈을 벌 수 있도록 균형 있는 경제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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